WSJ “北 불법환적 의심 사례 200여건…美 ‘최대 압박’ 전략 약화”

이선목 기자
입력 2018.11.28 11:35
"선원들은 세관신고서를 위조하고 선박에 가짜 이름을 덮어 쓴다. 해상에서는 추적 장치를 끄거나 허위 신호를 보내 다른 나라 선박처럼 보이도록 만든다."

북한이 해상에서 선박 간 불법 환적 거래를 위해 미국과 국제사회의 감시망을 뚫는 수법이다. 이런 방식으로 북한은 수십억달러어치의 유류품과 석탄 등 금수 품목 밀거래를 계속해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북한 선박의 불법 환적 거래로 의심되는 사건이 200여건에 달하지만, 실제로 얼마나 많은 사건들이 밝혀지지 않았는지 알 수 없다"고 27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WSJ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외교관을 인용해 올해 들어 지난 8월 중순까지 유조선 24척이 최소 148차례에 걸쳐 북한으로 석유를 수송했다고 전했다. 주로 해상에서 불법 환적을 통해 이뤄진 거래다. 만약 이들 유조선이 최대 용량을 채운 채 석유를 들여갔다면 유엔 제재가 허용하고 있는 상한선인 연 50만배럴의 5배에 달하는 규모가 북한에 반입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유엔 제재 대상인 북한 선박 금운산 3호가 2017년 12월 9일 공해상에서 파나마 선적 코티호로부터 석유를 옮겨 싣는 모습. / 미 재무부
이들 선박은 대만이나 토고 등에 연료 수송 목적으로 등록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유엔과 미국 관련 당국은 최소 선박 40척과 130개 기업에 대해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WSJ은 "지난 2년 동안 미국과 유엔이 북한의 대외 무역을 무력화하기 위해 가장 엄격한 제재를 가했지만 선박들은 연료와 석탄을 포함해 다른 금수품들을 북한으로 들여오고 나가는 항해를 계속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불법 환적 거래는 북한의 휘발유 가격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도록 했고, 결국 미국이 주도하는 ‘최대 압박’ 캠페인을 약화시켰다고 주장했다.

이런 상황을 증명하듯, 최근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북한이 6월 미·북 정상회담 이후에도 비밀리에 탄도미사일 발사기지를 유지해 온 사실을 밝혀냈다.

미들버리 국제학연구소의 북한 전문가 안드레아 버거 연구원은 "최대 압박은 희망사항일 뿐 현실은 아니다. 북한은 모든 속임수를 동원하고 있고 속임수는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끈질기게 공해상에서 불법 거래를 계속했다. WSJ는 지난해 홍콩에 설립된 ‘장안해운기술유한공사’ 소속 북한 선박 ‘장안호’ 사례를 상세히 소개했다. 여권이 있어야 전 세계를 여행할 수 있듯, 선박은 국적기와 개별 국가 등록이 인정돼야 공해를 항해할 수 있다. 장안호는 지난 2년 간 4개 국적의 깃발을 달고 항해했다.

2018년 3월 14일 촬영된 북한 남포항 일대 위성사진. 부두에 접안한 길이 170m 선박의 화물칸 중 덮개가 열린 곳에 검은 석탄이 가득 차 있다. /VOA
장안해운은 탄자니아 항구도시인 잔지바르에 장안호를 비롯한 선박 수십척을 등록하고 수십만달러 규모의 북한산 석탄을 실어날랐다. 등록국가와 운영국가를 다르게 하는 ‘편의치적’ 방식을 활용한 것이다. 잔지바르에 장안해운 선박이 급속하게 늘어나자 탄자니아 당국은 이들 선박이 북한과 관련 있다는 의혹을 갖게 됐고, 장안호를 포함한 선박 45척의 등록을 취소했다.

장안해운은 이후 장안호 이름을 ‘후하푸(Hua Fu)’로 바꾸고 배에 피지 깃발을 달았다. 피지에 등록한 선박으로 보이기 위해서다. 장안해운의 다른 선박들도 피지 깃발을 단 채 항해를 계속했다.

그러나 피지 당국은 후아푸호가 자국에 등록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에 따라 피지 당국은 지난해 다른 국가들에 장안해운의 위장 선박 등록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이후 후아푸호는 북한에 선박 등록을 했지만, 항해 중에는 계속해서 피지에 등록된 선박이라는 신호를 보냈다. 두달 후에는 파나마에 선박을 등록했다.

유엔은 지난해 북한의 석탄 수출을 전면 금지했다. 올해 3월에는 후아푸호를 대북제재 대상 목록에 올렸다. 전 세계 항구 입항이 금지된 것이다. 얼마 후 홍콩의 장안해운 본사는 문을 닫았고, 회사 소유주는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췄다고 WSJ는 전했다.

그러나 후아푸호는 지난 8~9월 북한 석탄을 중국산인 것처럼 속여 거래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 배는 2주 간 중국 해안에 머무른 후 5일간 위치를 알리는 장치를 끈 채 북한 남포항으로 들어가 석탄을 실었다. 다시 공해로 나온 선박은 위치 장치를 켜고 베트남으로 들어갔다. 당시 후아푸호는 배에 실린 석탄을 중국산으로 서류를 위조해 80만달러어치의 북한산 석탄을 실어나른 것으로 알려졌다.

후아푸호는 이후에도 같은 방식으로 베트남에 석탄을 운송하려 했다. 그러나 베트남 당국은 관련 정보를 입수하고 선박의 입국을 거부했다고 한다. 유엔에 따르면, 이후 후아푸호는 북한 나진항에서 석탄을 싣고 먼 바다로 나와 해상에서 다른 배로 석탄을 실어나르는 환적 방식으로 제재 위반 행위를 계속한 것으로 전해졌다.

WSJ는 북한이 불법 환적 방식으로 제재를 위반한 또다른 사례도 공개했다. 올해 2월 미국은 북한 선박 ‘천마산호’가 불법 석유 거래를 했다며 제재 대상으로 지정했다. 이 선박은 지난해 6월 대만에서 출항한 후 선박 추적 장치를 끄고 자취를 감췄다. 일본 방위성은 얼마 후 동중국해에서 자정 시각 한 유조선이 몰디브 깃발을 단 ‘신유안 18’이라는 선박으로부터 석유를 옮겨싣고 있는 모습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몰디브 당국은 신유안 18호가 자국에 등록된 선박이 아니라고 밝혔다. 신유안 18호와 북한의 관련성도 찾을 수 없었다.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천마산호는 승무원들의 신분증과 선박 등록 시 부여받는 고유 등록 번호를 위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배는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7월까지 최소 6차례 북한에 유류품을 수송한 것으로 추정됐다.

WSJ은 미국 호주, 일본 등 5개국이 아시아 해역에서 북한 선박을 탐지하기 위해 항공 정찰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항공기들은 해상에서 의심스러운 행위를 포착하면 이를 촬영해 각국 정보기관에 전달한다. 북한의 제재 위반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전 세계 바다에서 북한의 불법 선적 활동을 제재하는 건 쉽지 않다. WSJ는 군 관계자를 인용해 항공기 정찰만으로는 감시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감시 작전 합동 사령관인 호주 공군 소속 멜 허펠드 중장은 이를 "건초더미에서 바늘 찾기"라고 표현했다.

일본 방위성이 2018년 8월 3일 홈페이지에 올린 북한 선적 유조선의 불법 환적 현장 사진. / 일본 방위성
항공기가 선박에 다가갈 수 있는 거리 등에 법적 제약이 있어 불법적, 합법적 거래를 구분하기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와 관련, 미 국무부는 태평양과 아프리카 20여개국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북한 불법 환적 감시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교육 훈련을 시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WSJ는 전문가들을 인용해 선박 등록이 쉬운 점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선박을 등록하는 절차가 간소화돼 있고 비용도 저렴해 해외 선박들이 합법적으로 선박을 등록하고 활동하기 용이하다는 것이다. 피지 당국은 지난해 9월 주변 국가에 서한을 보내 허위로 피지 깃발을 달고 다니는 선박이 91척에 이른다고 밝혔다. 미 안보 싱크탱크 국방문제연구센터(C4ADS)는 이들 선박 중 3분의 1이 북한과 관련이 있다고 추정했다.

WSJ는 북한이 이런 속임수를 통해 수년 간 불법 교역을 해왔다고 전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국제사회의 제재가 대폭 강화된 이후에도 선박들을 계속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북한 선박들은 2016년 합법적으로 28억달러 규모의 석탄과 해산물 등 상품을 합법적으로 수출하고 석유를 수입했다. 또 마약과 가짜 담배 등을 해상에서 불법적으로 거래했다. 2013년 쿠바에서 북한으로 향하는 무기 수송선이 적발된 이후 북한은 급격하게 북한 회사 소유 선박들을 외국 회사 소유로 바꿨다. WSJ에 따르면, 북한은 한 회사 당 북한 선박 하나만 소유하도록 해 적발시에도 피해를 최소화했다.

아울러 지난해 대북제재가 더 강화되자 북한 선박들은 더 자주 선박 자동식별장치(AIS)를 끄고 운행하고 있다고 WSJ는 지적했다. 국제 해상 지침은 해적을 피하기 위한 경우 AIS를 끌 수 있도록 하고 있다. C4ADS에 따르면, 2015년 AIS 신호를 발신하는 북한 선박은 한 달에 100척 정도였지만, 최근 몇 달 간에는 10여척으로 급감했다. WSJ은 북한이 화물 운송을 위해 항구를 뚫는 대신 해상에서 선박 간 환적 방식을 주로 활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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