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사법은 끈질기고 철저했다… 23년 만에 옴진리교 7명 사형

도쿄=이하원 특파원 도쿄=최은경 특파원 김수혜 기자
입력 2018.07.07 03:00 수정 2018.07.08 06:41

1995년 출근 시간 사린가스 살포, 13명 숨지고 6300여명 병원行

1995년 그때 1995년 3월 20일 도쿄 지하철 쓰키지역 인근에서 구조대원들이 사린 가스를 마신 시민들에게 응급 조치를 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출근시간 지하철에 무색무취의 죽음이 조용히 스며들었다. 1995년 3월 20일 오전 8시 도쿄 도심. 마루노우치(丸の內)선·히비야(日比谷)선·지요다(千代田)선 열차와 역사에서 갑자기 승객들이 하나둘 쓰러졌다. 몇몇은 눈과 코에서 피가 나왔다. 사력을 다해 출입구로 기어나온 승객들이 아스팔트 위에 비틀대며 엎어졌다. 13명이 죽고 6300여명이 병원에 실려갔다. 일본 국민은 집과 직장에서 뉴스를 보며 공포에 질렸다.

23년 전 도쿄 지하철에 사린 가스를 풀어 일본 열도를 지옥에 빠뜨린 사교 교주 일당 13명 중 7명이 6일 오전 일제히 교수대에 매달렸다. 빈곤 가정에서 태어나 요가 스쿨 운영하다 사교 교주로 변신한 아사하라 쇼코(麻原彰晃·63), 아사하라가 퍼뜨리는 종말론에 젖어 살인 명령을 수행한 신도들이다. 나머지도 곧 집행될 전망이다.

법무성은 이번 집행을 예고하지 않았다. 비밀리에 전격 집행한 뒤, 간략히 사후 발표했다. 모든 방송사가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특집 방송에 들어갔다. 마이니치신문 등 주요 신문이 호외를 뿌렸다. 가미카와 요코(上川陽子) 법무상은 기자회견에서 "(사형 집행을) 매우 신중하게 검토했다"고 했다.

종말론 사교집단의 도심 테러

옴진리교는 힌두교와 불교에 노스트라다무스 종말론이 뒤섞인 신흥종교다. 교주 아사하라는 일본 남부 구마모토현 출신으로, 도쿄대 입시에 세 차례 실패한 뒤 침구원을 운영하다 신비체험을 했다. 32세에 '옴진리교'를 만들고, 40세에 지하철에 사린 가스를 뿌렸다.

그는 신도들에게 신(神)인 양 행세했다. 옴진리교 지도부는 사린 테러를 하기 몇 년 전부터 탈퇴자를 납치·감금·고문했다. 도쿄도청에 폭탄 소포를 보내 공무원 손가락을 날린 일도 있다. 옴진리교 부지 내에 사린 가스 제조공장도 세웠다. 사린 가스는 치명적인 독가스다.

첫 공판에 방청객 1만2000명이 몰렸다. 재판 과정에서 종범들은 "경찰 수사가 시작되자 교주가 '이판사판'이라 판단해 '종교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자기예언을 실현시키기 위해 테러 명령을 내린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들은 "교주에게 마인드컨트롤 당했을 뿐"이라고 감형을 호소했다. 아사하라는 반대로 "전부 제자들이 저지른 짓"이라며 무죄를 주장했다.

일본인 심장에 '공포'를 각인하다

일본에서 30년 산 로이터 기자가 "1995년은 모든 게 무너지는 듯한 해였다"고 했다. 거품경제가 깨진 지 3년째였다. 불황이 20년 갈 줄이야 아무도 몰랐지만, 경제가 심상치 않다는 건 다들 느꼈다. 새해 벽두에 고베 대지진이 터져 6000여명이 죽었다. 두 달 뒤인 그해 3월 아사하라 일당의 사린 테러가 났다. 도쿄 복판 가스미가세키역이 가장 피해가 컸다. 총리관저·국회·자민당 본부와 뛰면 5분, 걸으면 10분 거리다. 우리로 치면 광화문역 같은 곳에서 희대의 살인극이 벌어지며 '안전한 일본'의 신화와 자부심이 무너졌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피해자 60여 명을 인터뷰한 책 '언더그라운드'를 냈다. 날벼락처럼 테러에 휘말린 보통 사람들이 자기가 겪은 일을 담담하게 털어놓는데, 700페이지 읽고 독자가 느끼는 건 '당연하게 여긴 모든 게 무너지는 공포'다.

집요하고 철저한 일본 사법

일본 경시청은 사건 직후부터 484명을 체포해 그중 189명을 기소했다. 마지막 공범은 17년간 추적 끝에 붙잡았다. 일찍 체포된 아사하라 등 주범 13명은 16년 재판 끝에 2011년 11월 사형이 확정됐다.

1997년을 끝으로 사형집행을 중단한 우리와 달리, 일본은 지금도 석 달에 한 번꼴로 사형을 집행한다. 그런 일본이 아사하라 일당을 사형 확정 판결 후 7년이나 살려둔 이유가 뭘까.

일본 경시청은 아직 남은 옴진리교 신자가 1000명 정도라고 추정한다. 한때 세간에 "신자들이 해코지할까봐 역대 법무상들이 몸을 사린다"는 말이 돌았다. 진상은 달랐다. 일본 언론은 "일본 정부가 최후의 도망자까지 모두 붙잡아 사건 전체가 명확하게 정리되길 기다렸다"고 분석했다.

1995년 3월 13명의 사망자와 6300여 명의 부상자를 낸 ‘옴진리교 사린 가스 사건’의 주범인 옴진리교 교주 아사하라 쇼코(왼쪽 큰 사진)에 대한 사형이 6일 집행됐다. 사건 발생 후 23년 4개월 만이다. 작은 사진은 아사하라와 함께 사린 가스 테러를 저지른 6명의 옴진리교 간부로, 이노우에 요시히로, 니미 도모미쓰, 쓰치야 마사미, 하야카와 기요히데, 나카가와 도모마사, 엔도 세이치(작은 사진 왼쪽 위에서 시계방향). 이들도 이날 사형이 집행됐다. /AFP 연합뉴스
주범을 포함한 관련자 대부분이 사건 발생 반년 안에 붙잡히고, 나머지도 2년 안에 수갑을 찼다. 끝까지 도망 다닌 두 사람이 2012년 6월에 12일 간격으로 붙잡힌 기쿠치 나오코(菊地直子·47)와 다카하시 가쓰야(高橋克也·60)였다.

이 둘을 잡기 위해 일본 정부는 도망 기간 17년간 수시로 전단을 뿌렸다. 일본 경시청 간부는 "이런 사건은 국민 참여 없이 못 잡는다. 전단을 뿌린 건, 범인을 잡는 한편 국민의 관심을 붙들어놓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수배 기간 마지막 보름간, 두 사람 얼굴이 잡힌 감시카메라 화면을 캡처해 전국에 뿌린 것만 100만장이 넘는다. 이 중 기쿠치는 뭐 하는지 모르고 심부름만 한 종범이라 작년 12월 무죄 판결을 받았다. 다카하시는 뻔히 알고 현장을 뛴 실행범이라 올해 1월 무기징역형이 확정됐다. 기쿠치가 잡힌 뒤, 다카하시 하나만 얼굴이 찍힌 수배 전단 포스터가 일본 전역 지하철에 붙었다. 다카하시를 잡은 뒤 이 전단을 떼는 장면을 일본 언론이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17년 한을 풀었다는 메시지였다.

다카하시를 끝으로 관련 재판이 드디어 모두 끝났다. 23년이 걸렸다. 일본 법무성은 그제야 사형수 13명을 사형 집행 시설이 있는 전국 5개 구치소로 이동시키고 이날 7명을 사형시켰다.

마지막 참회

수갑 차고 포토라인에 선 범인들이 패배자도, 미친 사람도 아니라는 게 일본 사회에 또 다른 충격을 줬다. 명석한 의사, 성실한 은행원, 평범한 회사원이 옴진리교에 사로잡혀 전후 최악의 살인극을 저질렀다. 사교(邪敎)가 그들을 무감각한 살인마로 만든 것이다.

눈여겨봐야 할 게 나카가와 도모마사(中川智正·56)다. 그는 교토부립의대를 졸업한 의사였다. 체포된 뒤 속죄의 뜻으로 스스로 의사 면허를 반납했다. 일본 의사 중 최초다. 사형 선고를 받고 수감돼 있던 그는 올초 미국 학자와 함께 사린 가스에 대한 논문을 써서 세계적 과학잡지 네이처지(誌)에 실었다.

마지막 도망자 다카하시 재판 때 증인으로 출석해 "네가 반성하지 않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는다"며 관련 범행을 증언한 사람도 나카가와였다. 수사와 재판에 적극 협조하면서 참회했다. 하지만 일본의 사법체계는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6일 그를 교수대에 매달았다. 이제부터 일본 사회의 관심사는 남은 주범 6명이 언제 교수대에 매달리냐 하는 점이다.



조선일보 A16면
3일의 약속

오늘의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