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 선언, 10·4의 확대 증보판"

김진명 기자 안준용 기자
입력 2018.04.30 03:00 수정 2018.04.30 08:02

['판문점 선언' 이후]

유사한 규정에 문구도 판박이… 핵문제만 완전 비핵화로 바뀌어

4·27 판문점 선언은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간 10·4 선언의 '확대 증보판'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은 2007년 당시 남북 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이었다.

두 선언문은 모두 '남북 관계 개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판문점 선언에선 '남북이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과 공동 번영을 이룩하기 위해 10·4 선언에서 합의된 사업들을 적극 추진해 나간다'고 10·4 선언을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

판문점 선언과 10·4 선언은 모두 2000년 6·15 남북 공동선언의 정신을 강조했다. 판문점 선언은 '6·15 등을 계기로 각계각층이 참가하는 민족공동행사를 적극 추진한다'고 했고, 10·4 선언도 '6·15를 기념하는 방안을 강구한다'고 했다. 전쟁 반대와 상호 불가침 의무를 명시한 규정이 유사하고, '종전 선언' 문구도 판박이다. 10·4 선언은 '3자 또는 4자 정상이 종전 선언 추진을 위해 협력한다'고 했다. 판문점 선언은 '올해 종전을 선언하고,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또는 남·북·미·중 회담을 추진한다'고 했다. 종전 선언 시기를 '연내'로 규정하고 다자 회담 주체를 구체화했지만 큰 틀은 같다.

서해 평화수역도 닮았다. 판문점 선언은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만들어 우발적 군사 충돌을 방지하고 안전한 어로 활동을 보장한다'고 했다. '서해에서의 우발적 충돌 방지를 위해 공동 어로수역을 지정하고 평화수역으로 만들기 위한 방안 등을 협의한다'는 10·4 선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정상회담 직후 남북 군사회담을 개최하기로 한 것도 같다.

10·4 선언문의 상당 부분은 남북 경제협력 사업들로 채워졌다.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는 물론 경제특구 건설, 한강하구 공동 이용, 개성-신의주 철도 개·보수, 개성공업지구 개발 등 19개 의제가 망라됐다. 판문점 선언은 대북 제재를 의식해 '동해선·경의선 철도와 도로 연결'만 직접 거론했다. 하지만 '10·4 선언에서 합의된 사업들을 적극 추진해나간다'고 포괄적으로 규정했다. 또 이산가족 상봉과 체육 행사(2008 베이징올림픽·2018 자카르타 아시안게임)를 통한 교류 활성화도 두 선언문에서 모두 언급됐다.

두 선언이 다른 것은 비핵화 부분이다. 10·4 선언은 "한반도 핵 문제 해결을 위해 6자 회담, 9·19 공동성명과 2·13 합의가 이행되도록 노력한다'고 했다. 하지만 판문점 선언엔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했다'는 문구가 들어갔다. 문 대통령이 평양 방문을 예고한 것도 다른 점이다.


조선일보 A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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