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입양천사 부부'는 신장이 하나씩 밖에 없다

김민정 기자
입력 2016.12.26 03:04 수정 2017.01.05 09:56

[우리 곁의 산타] 국내 최다 10명 입양한 김상훈·윤정희씨

장애아 함께 돌보며 부부의 인연
아내 윤씨 네번 유산후 입양 시작… 버림 받고 장애 있는 아이 데려와
병원서 시한부 판정받았던 둘째, 수술로 기적적 회복에 목사의 길
부부가 함께 감사의 신장 기증도

지난 24일 밤 강원 강릉시 죽헌저수지 인근 산기슭에 있는 낡은 비닐하우스 앞. 목사 김상훈(56)·윤정희(51)씨 가족이 캐럴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불렀다. 비닐하우스에 살면서 암 투병 중인 60대 여성 송모씨를 위한 공연이었다. 지난 6년간 김씨 가족은 크리스마스이브마다 소외된 가정을 찾아가 성탄 공연을 해왔다. 독거노인 등 10개 가정을 찾아 미역국 등 반찬을 나누고 집 청소도 했다. 아픈 아내 대신 집 밖에 나온 송씨 남편은 "천사가 따로 없다. 고맙다"며 눈물을 흘렸다.

김씨 부부는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말을 자주 한다. 말 그대로 자녀가 정말 10명이기 때문이다. 딸 셋, 아들 일곱 가운데 김씨가 낳은 아이는 없다. 하은(18)·하선(17)·하민(14)·요한(13)·사랑(12)·햇살(12)·다니엘(12)·한결(11)·하나(6)·행복(4) 모두 입양해 '마음으로 낳은' 자녀들이다. 윤씨는 1992년 결혼 후 "딱 한 명이라도 내 아이 낳아보고 싶다"고 기도했지만 네 번의 유산(流産)을 겪었다. 출산을 포기하고 2000년 첫아이를 입양한 부부는 2014년까지 총 열 명의 아이를 입양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아이를 입양한 가정이 됐다. 부부는 "상처받은 아이들이 집에 와 밝게 변해가는 걸 보며 부모 없는 아이가 한 명이라도 줄었으면 하는 마음에 입양을 하다 보니 10명이 됐다"고 말했다.

25일 강원도 강릉아산병원 앞에서 이 병원 목사 김상훈(56)씨와 아내 윤정희(51)씨가 자녀들과 ‘행진’하고 있다. 10여 년에 걸쳐 7남 3녀를 입양한 김씨는 “우리 가족 12명이 함께 손을 잡고 걸으면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이미지 크게보기
25일 강원도 강릉아산병원 앞에서 이 병원 목사 김상훈(56)씨와 아내 윤정희(51)씨가 자녀들과 ‘행진’하고 있다. 10여 년에 걸쳐 7남 3녀를 입양한 김씨는 “우리 가족 12명이 함께 손을 잡고 걸으면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김지호 기자

윤씨의 어머니는 생전에 딱해 보이는 장애인들을 집으로 데려와 마당에서 씻기고 아버지의 옷을 입혀 보내곤 했다. 이런 어머니의 영향을 받은 윤씨도 20대 때 중증 장애 아동 보호시설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었다. 그러나 윤씨에게 반한 남편 김씨가 평생 결혼하지 않겠다는 윤씨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장애 아동을 함께 돌보며 구애해 결혼에 성공했다.

열 명의 아이는 친부모에게 버려진 것 말고도 각자 다른 상처를 하나씩 더 갖고 있던 '아픈 손가락'이었다. 병으로 살 가망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던 하선이, 구순구개열 수술로 언어장애가 있었던 하민이, 파양의 상처를 가진 요한이와 한결이, 안짱다리로 태어나 수술 후 보조 기구를 껴야 했던 사랑이 등 어느 한 명도 부부의 마음을 아프지 않게 한 아이가 없었다. 윤씨는 "아이들 키우며 눈물 콧물 쏙 뺐던 일들을 얘기하려면 며칠 밤을 새워도 모자란다"고 했다.

부부는 모두 신장이 하나씩밖에 없다. 둘째 하선이가 입양한 지 얼마 안 돼 폐쇄성 모세기관지염으로 살 가망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을 때 부부는 "제발 하선이를 살려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고 한다. 하선이가 수술을 받고 기적적으로 회복하자 부부는 "다른 환자들에게도 생명을 주고 싶다"며 차례로 신장을 기증했다. 김씨는 이때 일을 계기로 토목 엔지니어 일을 그만두고 목사의 길을 걷게 됐다.

크리스마스 천사가 된 강릉 입양 10남매 - 친부모에게 버림받은 상처가 깊게 파였던 아이 10명이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에게 희망과 웃음을 주는 천사로 훌쩍 성장했다. 강릉아산병원 김상훈(뒷줄 오른쪽) 목사와 윤정희(뒷줄 왼쪽)씨 부부가 마음으로 낳은 7남 3녀 자녀와 25일 병원에 세워진 크리스마스트리 앞에서 활짝 웃고 있다. 김씨 부부는 유산(流産)의 아픔을 네 차례 겪은 뒤 2000년부터 2014년까지 10명을 입양했다. 김씨 부부와 입양 10남매는 24일 밤 어려운 이웃들이 살고 있는 비닐하우스를 돌며 직접 만든 미역국과 반찬을 전달하고, 성탄절을 알리는 캐럴을 불렀다. /김지호 기자
파양을 겪었던 요한이는 윤씨를 엄마로 부르기까지 3년이 걸렸다. 요한이가 유치원 재롱 잔치에서 "난 엄마 없어요. 안 사랑해요"라고 외쳤던 날, 윤씨는 집에 돌아와 "지금까지 내가 뭘 했나"라며 바닥을 치고 울었다. 유치원에서 돌아온 요한이를 '미안하다'며 끌어안고 함께 운 이후로 요한이의 상태는 급속히 좋아졌다. 입양 당시 IQ 60으로 지적장애 3급 판정을 받았던 요한이는 열심히 공부해 현재 IQ가 130을 넘고 학교 시험에서 거의 올백(전 과목 100점)을 맞는다고 한다.

서로 같은 상처를 가진 아이들이 서로를 보듬길 10여 년. 엄마 윤씨는 "이제는 방 세 개짜리 교회 사택에서 복작복작 엉겨 사는 '진짜' 가족이 됐다"고 했다. 이제 12명의 가족은 자신들이 느끼는 행복을 남에게 나누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난 2011년부터 강릉아산병원 원목(院牧·병원교회 목사)으로 일하는 김씨는 교회에서 주는 월급 200만원 중 100만원을 환자들을 위해 기부한다. 남은 100만원 중 50만원도 매주 독거노인들에게 전달하는 반찬 재료 구입과 겨울철 연탄 봉사 비용으로 쓴다. 가족 생활비는 나머지 50만원이 전부다. 자녀 1명당 월 15만원씩 나오는 입양 아동 양육 수당은 전액 아이들 각자 명의로 저축하고 있다. 윤씨는 "옷은 이웃에게 얻어 입히고, 아이들이 휴대폰도 쓰지 않으니 절약하면 50만원으로 살 수 있더라"고 했다. 돈 많이 버는 것은 애당초 이 가족과 동떨어진 얘기다. 윤씨는 지난 10월 발간한 가족 이야기를 담은 책 '사랑은 여전히 사랑이어서' 인세도 전액 기부할 계획이다.

윤씨는 "다들 어떻게 그 돈으로 아이들을 다 키우냐고 묻지만, 우리는 아이들을 돈이 아닌 사랑으로 키운다"며 "한 번 더 업어주고 안아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면 된다"고 했다.

요즘 부부의 큰 기쁨은 아이들이 자라 봉사하는 삶을 택한 것이다. 강릉영동대 유아교육과에 다니는 맏딸 하은이는 "소외된 청소년들을 돌보고 싶다"며 아프리카에 선교사로 나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둘째 딸 하선이는 "아빠처럼 병원에서 아프고 힘든 사람을 돌보는 사람이 되겠다"며 간호학과에 진학했다.


 

조선일보 A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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