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통·번역사가 없어진다고?

곽중철 한국통번역사협회장
입력 2016.04.13 03:00
곽중철 한국통번역사협회장
알파고가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을 높여 가장 먼저 없어질 직업이 거론될 때 단골손님이 된 것 중 하나가 통·번역사이다. 바둑은 경우의 수가 우주의 원자 수보다 많아 결코 기계가 인간을 이길 수 없을 것이라던 예상은 깨어졌다. 통·번역의 대상인 인간의 말은 경우의 수가 몇 개나 될까. 최근까지 기계가 통·번역사를 대신할 수 없다는 주장의 근거는 기계란 것이 문맥을 알 턱이 없고, 인간과 달리 자체 수정 능력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알파고는 인간의 영역인 직관의 능력까지 갖출 가능성마저 보여주었다. 번역은 이미 보조 기계가 크게 발전해 국내외 업체들이 개발한 초벌 번역기가 번역사의 작업을 쉽게 해주고 있으니 다음은 통역 차례라고들 한다.

기계가 인간의 말을 실시간 통역하려면 음성을 인식해 문자화하고, 이를 번역한 후, 소리로 만들어 내보내야 한다. 기술적으로 이 세 단계 모두 아직 완벽하지 못한데, 특히 번역 단계가 영원히 완벽해지지 못할 이유가 여러 가지다. 통·번역의 본질은 커뮤니케이션, 즉 소통이다. 기계 통·번역은 '통계학적 확률'로 계산하는 기계 학습이 기반이기에 인간을 대신할 수 없다. 통·번역은 전문성과 식견을 갖춘 전문가도 글쓴이나 연사의 의도와 언어 간 문화 차이를 고려해 고심하며 단어를 골라 옮기는 작업이다. 이런 절차 없이 기계적으로 단어를 맞추는 자동 통·번역은 아무리 기술이 진보해도 근본적 한계를 안게 된다.

과연 통·번역 학교가 필요 없고 통·번역이라는 직종도 사라질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통역사들은 인간적이고 정감 있는 통역을 통해 기계가 영원히 해결할 수 없는 소통의 벽을 부수면서 인공지능 시대에 적응해 갈 것이다.

24개 언어를 쓰는 유럽연합에서도 통역사들이 기계에 자리를 빼앗길지 모른다는 우려는 하고 있다. 그런데 당장 통역사의 밥줄을 위협하는 것은 따로 있다. 영어가 급속도로 세계 공용어가 되고 있는 현실이다. 이런 추세는 각국 교육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학생과 학부모 모두가 "중급 정도의 영어만 하면 사는 데 지장 없을 것"이라며 영어만 적당히 공부하면서 다른 외국어에는 신경 쓰지 않는 것이다. 세계의 통·번역사들에게는 이런 편향성이 훨씬 중대한 위협이다.
조선일보 A32면
말모이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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