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십 한평생… 빚만 남았네

양은경 기자
입력 2016.03.26 03:00

[OECD 노인빈곤율 1위 한국, 노후파산 급증… 최근 파산선고 4명중 1명이 60대 이상]

카드빚·사업실패·질병… 불황까지 겹쳐 결국 항복선언
자녀들도 취업 안돼 '이중고'

안모(여·70)씨는 1998년 남편과 사별한 뒤 건물 청소를 하면서 장애인인 큰아들과 둘이서 살았다. 그런데 결혼한 딸이 사위의 실직으로 신용카드 빚에 몰리게 됐다. 이를 보다 못한 안씨는 딸이 제2금융권에서 돈을 빌릴 때 빚보증을 섰다. 그러나 딸은 빚을 갚을 길이 없었고, 안씨 역시 다리 골절과 당뇨 등으로 더 이상 청소일을 못하게 되면서 자신과 아들의 생활비 조달마저 막막해졌다. 안씨는 결국 최근 서울중앙지법 파산부에 파산신청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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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의균 기자
강모(76)씨는 지방에 있는 한 기계부품업체 공장장으로 근무했던 엔지니어 출신이다. 1995년 독립해 사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처음엔 여기저기서 일감을 따내며 사업이 잘 풀리는 듯했다. 그러나 몇 년 못 가서 찾아온 IMF 외환위기가 강씨의 발목을 잡았다. 원청업체의 채무까지 연대보증을 섰던 그는 평생 모은 부동산 6필지를 비롯한 전 재산을 날리게 됐다. 2억원이나 되는 빚도 졌다. 주차 관리원 등을 하며 겨우 생계를 유지하는 그는 20년 가까이 빚 독촉 때문에 고통받다 서울중앙지법에 파산신청을 내 최근 파산선고를 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파산부에서 올해 1월과 2월 두 달간 파산선고를 받은 1727명의 연령을 분석한 결과, 이들처럼 60대 이상 노인 파산자들이 428명, 24.8%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50대(37.17%)보다는 적지만 40대(28.2%)와 비슷하고 30대(8.86%)의 두 배를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60대 이상 파산자들을 세분해 보면 60대가 352명(20.38%)으로 가장 많았지만, 70대(67명·3.88%)와 80대(9명·0.52%)도 적지 않았다. 법원이 파산자의 연령별 통계를 내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중앙지법 관계자는 "통상 30대 파산층이 가장 두터웠던 10년 전에 비하면 노인 파산이 급속히 늘어난 것"이라고 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2015년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49.6%로 OECD국가 중 1위다. 노인 파산이 늘어나는 이유는 생활비와 병원비 때문이라고 한다. 서울중앙지법 파산관재인인 김용수 변호사는 "파산자의 70%가량이 노후 자금이 없는 취약계층"이라며 "수입이 있더라도 월 100만원 미만인 경우가 많고 카드빚을 지거나 몸이 아프기라도 하면 금세 회복 불가능한 빚더미에 앉게 된다"고 했다.

과거의 사업 실패 영향이 이어지다가 노령(老齡)으로 인해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워지면서 한계에 다다른 경우도 적지 않다. 중장비 도매업을 하던 한모(76)씨는 한때 호황을 누렸지만 2002년 부도를 맞았다. 한씨는 대출을 받아 몇 차례 재기를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해 빚만 안게 됐다. 기초생활수급비 64만원과 노령연금 20만원으로 살아가고 있는 그는 당뇨와 치매 증세가 겹치면서 일자리를 구하는 게 불가능해지자 결국 법원 문을 두드렸다. 파산관재인인 서도화 변호사는 "1998년 외환위기, 2002년 카드대란, 2008년 금융위기 등 경제 위기와 불황 국면에서 실패를 본 자영업자들이 안간힘을 쓰다가 노년에 들어 결국 항복 선언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노년 파산의 경우 자녀들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거꾸로 자녀 때문에 파산에 이르게 되는 경우도 많다. 정모(여·78)씨는 강원도에서 다방을 운영하는 딸이 사채업자에게 시달리는 것을 보다 못해 빚보증을 섰다가 3000만원 넘는 빚에 시달리다가 파산신청을 했다.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못한 젊은 세대가 부모 세대에게 의존하다가 결국 양쪽 모두 생계의 곤란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조선일보 A10면
말모이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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