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함께한 선생님, 이젠 가족같아요"

유석재 기자
입력 2016.03.25 03:00

[늘휘무용단 창단 20주년 공연 여는 무용가 김명숙·가야금 명인 황병기]

황병기 산조를 무용 작품으로 "상임 음악감독 아니냐고? 아직 발령 못받았어요, 허허"

1995년, 가야금 명인인 이화여대 음악대학 황병기 교수는 갓 부임한 무용과 교수가 지도하는 무용 연습 광경을 봤다. "깊이가 있고 무거운 춤이었다"고 그는 회고했다. "사라지는 것들의 여백을 섬세하게 살려내는 몸말"이었다는 것이다. 그 신임 교수는 무용가 김명숙이었다.

오는 주말 열리는 '김명숙 늘휘무용단'의 창단 20주년 기념공연은 황병기(80)와 김명숙(62)이라는 두 예술가의 합작(合作)이기도 하다. 음악감독으로 참여하는 황병기 이화여대 명예교수는 26일 제자인 지애리씨와 함께 무대에 올라 무용 '想·想'의 연주를 맡는다. 이 작품은 황 교수의 70분 분량 산조 작품을 23분으로 축약해 무용으로 표현한 것으로, 중중모리·엇모리·자진모리·휘모리를 거쳐 점점 빨라지는 곡조와 더불어 몸짓이 절정에 이른다.

늘휘무용단 20주년 기념 공연을 여는 김명숙(왼쪽) 이화여대 무용과 교수와 음악감독으로 참여하는 황병기 이화여대 명예교수. /고운호 객원기자
황 교수는 늘휘무용단의 지난 20년 내내 함께 있었다. 무용단 30여개 작품 중 절반 이상에 그가 참여했던 것이다. 김 교수는 "선생님 창작곡을 써서 새 안무를 해도 되겠느냐"고 자주 부탁했고, 그때마다 황 교수는 흔쾌히 연주자로 나서기도 했다. 자기 작품뿐 아니라 바로크음악과 현대음악까지도 선곡해 줬다.

황 교수의 실험적 작품 '미궁'을 2013년 무용으로 만든 사람도 김 교수였다. 초연 때 한 여성 관객이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간 이후 많은 이가 '귀신 소리 같다'고 무서워했던 작품이었다. "선생님은 '무섭기만 한 음악이 아니라 불교적인 색채가 담겨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마지막에 반야심경 주문과 함께 피안(彼岸)의 세계로 인도하는 이 음악을 '생의 순환'을 표현하는 무용으로 풀어냈다.

'그쯤 되면 이미 늘휘무용단 상임 음악감독 아니냐'는 질문에 황 교수는 "허허, 아직 발령을 못 받아서…"라며 웃었다. 김 교수는 "혹시 선생님께 누가 될까 봐 '발령'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김 교수는 황 교수에 대해 "과묵하신데 유머러스하고, 종종 정곡을 찌르는 말씀을 해 주신다"며 "이젠 단원들도 다들 선생님을 가족처럼 좋아하게 됐다"고 말했다. '무대에 오르려면 철학적 소양이 중요하다'는 황 교수는 자신의 저서 '논어 백 가락'을 단원들에게 일일이 나눠주기도 했다.

'회오리의 절정'이라는 우리말 '늘휘'로 이름을 지은 늘휘무용단은 유려하고 색채감이 뛰어난 춤으로 명성을 얻었다. 27일 선보이는 신작 '모래·그림'에선 음양오행을 몸으로 표현한다.

▷'김명숙 늘휘무용단 창단 20주년 기념 공연' 26~27일 오후 5시 LG아트센터, (02)3277-2590

가야금 명인 황병기 교수는 누구?
조선일보 A18면
3일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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