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구 "이러면 선거 못 치러"… 최경환, 난색 표하다 수용

정녹용 기자
입력 2015.01.22 03:00 수정 2015.01.22 10:34

[연말정산 소급 환급 결정, 黨·政간에 무슨일이…]

- 이틀 연속 대책 회의
주호영 "나도 900만원 낼 판… 국민들이 받아들이겠나"
이정현 "증세 아니다" 발언에 김무성 "국민은 증세로 생각"
정부선 4가지 보완책 마련, 소급 적용은 黨이 밀어붙여

연말정산 논란과 관련해 당정(黨政)이 21일 올해 환급분까지 소급(遡及) 적용하기로 결정한 것은 새누리당이 정부를 압박한 결과다. 정부는 당초 소급 적용이 어렵다는 입장이었지만 민심 이반을 우려한 새누리당은 이를 개의치 않고 밀어붙였다.

연말정산 논란이 처음 불거졌을 때만 해도 새누리당은 '보완책을 마련하되 내년부터 적용한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20일 아침 열린 원내 대책 비공개회의에서 "표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지역구에 가면 불만이 너무 크다"는 등 의원들의 우려가 제기됐다. 한 회의 참석자는 당 지도부를 겨냥해 "선거에 지면 책임질 거냐"고도 했다.

이번 논란이 심각한 민심 이반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판단한 당 지도부는 이날 오후 4시 긴급 비공개회의를 열었다. 김무성 대표, 이완구 원내대표, 주호영 정책위의장 등이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 모였고, 기획재정부 조세정책관도 불렀다. 이 자리에서 김 대표는 소급 적용 필요성을 거론했다. 참석한 한 관계자는 "기재부에서는 소급 적용에 난색을 보였지만 당에서는 '일부 보완책으로는 부족하다. 전향적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고 전했다. 회의에서는 기재부 측에 21일 당정 협의 때까지 구체적 방안을 마련해올 것을 주문했다.

당이 정부를 압박하는 모양새는 21일 오전 열린 최고위원·중진 연석회의와 오후에 열린 당정 협의 자리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김 대표는 친박(親朴) 핵심인 이정현 최고위원이 연말정산 논란에 대해 "증세가 아니다"고 하자 "국민은 증세로 받아들인다"며 공개 반박했다. 이완구 원내대표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오후 1시 30분 열린 당정 협의 때는 이 원내대표가 강하게 정부를 질타했다. 비공개회의 때 이 원내대표는 기획재정부 문창용 세제실장에게 "이런 사태를 예측했느냐"고 물었고, 문 실장은 "이 정도 심각할 줄은 예측 못 했다"고 했다. 이에 이 원내대표는 "우리 정치인들은 현장에 가면 삿대질을 받고 있다. 이렇게 하면 선거를 어떻게 치르란 말인가"라며 "이 문제에 정확하게 대처하지 않으면 문책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고 한다. 한 참석자는 "이 원내대표가 최경환 경제부총리와 충돌한 것은 아니지만 정부에 상당히 화를 냈다"고 전했다.

주호영 정책위의장은 "내 주변만 해도 10년 근무한 사람이 급여가 7000만원 되지 않는데 (세금을) 200만~300만원 더 낸다고 했고, 나도 800만~900만원을 더 낼 것 같다"며 "이걸 국민이 받아들일 수 있나"라고 했다.

최 부총리는 "법을 집행하는 정부로서는 소급 적용해 환급하는 부분은 난점이 있다"고 난색을 표했다. 하지만 당이 강하게 주장하자 "국회가 입법 조치를 하면 정부가 동의하는 형태로 하겠다"고 물러섰다. 정부는 이 날 네 가지 보완 대책만 준비해 가져 왔지만 당이 "소급 적용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밀어붙인 것으로 전해졌다.

여권(與圈)에선 이번 일이 청와대가 우위에 있었던 당·청(黨·靑) 관계에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청와대와 정부가 난색을 보였지만 김 대표 등 당이 '민심'을 이유로 강하게 밀어붙여 소급 적용을 관철한 구도 때문이다. 또 여권 관계자들은 "최근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보다 새누리당 지지율이 더 높게 나오고 있는 것도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하고 있다. 당직을 맡고 있는 한 의원은 "내년에 총선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정부와 청와대가 잘못할 경우 시간이 갈수록 민심에 민감한 당의 목소리가 점점 커질 가능성은 많다"고 했다.



조선일보 A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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