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달나라와 이렇게 또 멀어졌다

유지한 기자
입력 2019.11.22 03:13

[달 탐사 계획, NASA 제동에 백지화]

- NASA는 왜 우리 궤도선 반대했나
두달 前 기형적으로 궤도 바꾸며 정부 "NASA 이견 없을 것" 자신
NASA 카메라, 변경된 궤도에선 북극 촬영 불가능해지자 반대

- 정권따라 춤추다… 4년 허송세월
文정부 궤도선 발사 일정 늦춰 "달 탐사도 적폐로 보나" 지적도
조직 잦은 변경에 연구원 20명뿐… 정부 무관심 속에 방치되다 망신

지난 9월 한국 정부가 발표한 달 탐사 사업 계획이 두 달 만에 백지화됐다. 사업 파트너인 미 항공우주국(NASA)이 한국이 제시한 달 궤도로는 달 탐사를 제대로 할 수 없다고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NASA도 이견이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던 한국 정부는 국제적으로 망신을 당하게 됐다. 2016년 NASA와 협약 이후 진행돼온 달 탐사 계획도 원점으로 돌아왔다. 설계 실력도 국제 협력도 낙제점인 한국 우주탐사 사업의 민낯이 드러난 것이다.

사업 계획 변경 두 달 만에 번복

한국 항공우주연구원과 미 NASA는 지난 19일부터 21일까지 미 휴스턴 존슨 우주센터에서 한국의 달 탐사 사업 관련 회의를 열었다. 이 회의에서 항우연은 '타원+원' 형태의 달 궤도선 계획을 철회하고, 3년 전 NASA와 합의했던 당초의 원궤도를 수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는 지난 9월 2020년 말 예정이던 달 궤도선 발사를 2022년 7월로 늦추고, NASA와 합의했던 1년짜리 원궤도를 타원궤도(9개월)와 원궤도(3개월)를 병행하는 '하이브리드 궤도'로 바꾼다고 발표했다. 무게가 늘어난 달 궤도선의 연료 부족 위험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는 게 변경 이유였다.

/그래픽=김성규

그러나 하이브리드 궤도는 앞서 달 탐사를 했던 어떤 나라도 시도하지 않은 기형적 궤도였다. 특히 달 탐사선에 장착될 NASA 카메라가 무용지물이 된다는 점에서 치명적이었다. NASA는 우리의 달 궤도선에 햇빛이 비치지 않는 극지도 촬영할 수 있는 카메라를 장착하기로 했다. 한국이 제시한 타원궤도가 되면 달 북극을 지날 때 궤도선의 고도가 원궤도보다 3배나 높아 촬영이 불가능해진다. 그런데도 과기부는 "NASA도 큰 이견이 없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하지만 이번 회의로 한국의 계획은 휴지 조각이 된 것이다. 이번 달 탐사 사업은 우주 분야에서 한국과 미국 간 사상 첫 협력 사업이었다. 향후 우주 협력의 첫 단추가 될 사업에서 한국은 신뢰 실추를 자초한 셈이다.

청사진 없이 정권 따라 오락가락

한국의 달 탐사 계획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춤을 춰왔다. 한국은 2007년 노무현 정부 때 정부 차원에서 달 탐사 계획을 처음 세웠다. 달 궤도선은 2020년, 착륙선은 2025년 각각 발사한다는 게 당시 목표였다. 2013년 박근혜 정부는 '대선 공약' 차원에서 궤도선은 2018년까지, 착륙선은 2020년까지로 발사 일정을 당겼다. 그리고 2016년 탄핵 소용돌이 속에서도 항우연은 미 NASA와 달 탐사 협약을 맺고, 역대 정부 중 처음으로 달 탐사를 향한 실질적인 발걸음을 내디뎠다.

하지만 2017년 집권한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궤도선 발사 2020년, 착륙선 발사 2030년으로 바꿨다. 중국, 인도, 이스라엘 등 우주 선진국들이 달을 향해 나가는 시점에서 사업 일정을 다시 10년 늦춘 것이다. '달 탐사를 지난 정부의 적폐로 본다'는 이야기와 함께 달 탐사를 포기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실제로 현 정부는 달 탐사에 관한 한 무관심으로 일관했고, 정부의 무관심 속에 달 탐사 프로젝트는 사실상 방치됐다. 항우연 내부 달 탐사 사업단은 조직이 네 번이나 바뀌었고 원장들은 핵심 인력을 달 탐사에 투입하지 않았다. 한국형 발사체와 지구 저궤도 위성 개발에는 연구원이 수백 명씩 투입됐지만 달 궤도선은 20여명이 전부였다.

인공위성 기술에 바탕을 둔 달 궤도선은 위성 전문가들과 협업이 필수지만, 달 탐사 사업단은 지난해에야 위성연구본부 산하로 들어왔다. 달 탐사 사업이 지지부진하다는 비판에 정부는 지난 1월 외부 점검 평가단을 뒤늦게 꾸렸다. 세계 달 탐사 역사상 유례없는 하이브리드 궤도는 이런 혼란과 주먹구구식 사업 추진의 결과물이었다.

달은 화성 등 심우주 탐사의 중간 기지 역할을 하면서, 수많은 자원이 매장된 것으로 알려져 안보·경제적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과거 미국과 소련의 체제 경쟁 시절과 달리 최근엔 마치 신대륙 탐사 때처럼 민간 기업들이 주도적으로 경쟁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태식 한양대 교수는 "정부가 우주개발의 필요성을 국민에게 납득시킬 만한 청사진도 능력도 없는 우리 사회에서 '우주개발 무용론'이 고개를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B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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