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ch & BIZ] "싸이월드·밴드서 쌓은 노하우로 벤처 육성"

강동철 기자
입력 2019.10.10 03:07 수정 2019.10.14 17:06

[창업의 밑거름, 벤처투자자] [6] 이람 TBT 대표
설립 1년 만에 스타트업 10곳 투자… 해외서 통할 한국式 아이템 발굴
단순히 돈만 투자하는 것 아닌 대기업·스타트업간 협업 이끌어

/김연정 객원기자
한국 최초의 미니홈피 '싸이월드', 정보와 교류의 장(場)인 네이버 '블로그', 40·50대 이상 중장년층의 인기 소셜 미디어 '밴드'.

누구나 한 번쯤은 써봤을 이런 인터넷 서비스는 모두 한 사람의 아이디어에서 시작했다. 벤처투자 업체 TBT의 이람(46·사진) 대표다. 이 대표는 1999년 창업한 싸이월드의 초기 멤버다. 이후 네이버로 옮겨 소셜서비스기획그룹장을 맡았고, 이후 자(子)회사인 캠프모바일 대표를 지냈다. 3년 전 갑자기 캠프모바일 대표를 그만두고 미국 유학을 갔다가 작년에 돌아왔다.

지난달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사무실에서 만난 이 대표는 "아무래도 한국 벤처투자 업체 대표 중에 제로(0)부터 시작해 인터넷 서비스를 키워본 사람은 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했다. "벤처투자자로서 갓 시작하는 스타트업 대표들에게 싸이월드와 네이버에서 겪은 온갖 고생과 경험을 모두 전수해주고 싶다"고도 했다.

바꿔 말하면 직접 숱한 사업계획서를 써본 만큼, 좋은 스타트업을 찾는 선구안(選球眼)을 갖춘 셈이다. TBT는 설립한 지 1년도 안 돼 교육 업체인 에스티유니타스, 유기농 생리대 업체 라엘, 어린이 화장품 업체 슈슈코스메틱 등 벌써 10곳 이상의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1년 새 교육·화장품·콘텐츠 등 스타트업 10여곳 투자

TBT의 운영 자금은 1100억원이다. 네이버가 990억원을 출자했다. 이 대표에 대한 네이버의 신뢰와 기대를 방증한 금액이다. 아모레퍼시픽 등 다른 대기업도 일부 출자에 참여했다.

이 대표는 "한국에서 태어나, 세계로 갈 수 있는 기업인지가 투자 대상을 고를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요소"라고 말했다. 그는 "글로벌 경쟁력을 보는데, 그 밑바탕에는 철저히 한국적인 아이템이 있는 기업에 투자한다"고 했다. 작년 투자한 에스티유니타스가 그런 사례다. 에스티유니타스는 영단기·공단기로 영어 공부와 공무원 시험 준비생 시장을 석권한 곳이다. 하지만 이 회사는 재작년과 작년에 실적 성장세가 둔화되면서 상장 시점을 잡지 못하는 상황에 처했다.
이 대표는 "다른 투자자들이 선뜻 투자 결정을 못 내릴 때 이 회사 창업자와 그 조직의 글로벌 진출 의지와 경쟁력을 봤다"고 말했다. 그는 "이 회사는 한국 시장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과감하게 2017년 미국 교육 업체인 프린스틴 리뷰를 인수했다"고 말했다.

한국식(式) 콘텐츠·화장품 시장에도 주목하고 있다. 인기 유튜버들이 대거 소속된 MCN(멀티 채널 네트워크) 기업인 샌드박스나 어린이 화장품·피부 관리 제품을 만드는 슈슈코스메틱이 대표적이다. 이 대표는 "한류는 중국, 일본 등 아시아를 넘어 미국, 유럽 등 전 세계를 강타하는 거대 트렌드"라며 "한국 유튜버의 콘텐츠와 화장품 산업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기업들을 선별해 투자했다"고 말했다.

또 하나의 키워드는 '여성'이다. 그는 "여성으로 오랫동안 일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여성 인재, 창업자에 대한 애정이 커졌다"며 "분명히 여성이 잘할 수 있는 사업 영역이 존재한다"고 했다. 실제로 TBT는 상당수 여성 창업자의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있다. 분야 역시 생리대와 같이 남성보다는 여성이 이해도가 높고 혁신을 주도할 수 있는 분야다.

◇"100% 이해하는 분야에만 투자한다"

이 대표는 벤처 투자가 단순히 돈만 버는 게 아니라, 대기업과 스타트업 간 연결 고리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본다. 그는 "네이버와 아모레퍼시픽이 TBT에 출자한 것은 결국 스타트업의 혁신 유전자(DNA)를 대기업에 이식하고 싶다는 욕구 때문"이라며 "단순히 대기업의 자금을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것뿐만 아니라 서로 시너지를 낼 분야를 찾아 연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네이버와 아모레퍼시픽 임원들과 정기적으로 만나 스타트업 업계 동향과 협업 모델을 논의한다.

그에게 "투자하지 않는 분야가 있느냐"고 물었다. 이 대표는 "남들이 보기에 나의 주특기인 소셜 미디어 분야"라고 했다. 그는 "스마트폰의 등장과 함께 급성장했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성장기가) 끝났다"고 했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분야에도 투자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이 대표는 "서비스 기획자는 기본적으로 관찰력과 이해력이 필수"라며 "시장을 관찰·이해해야 새 서비스를 만들 수 있는 것처럼 투자 역시 내가 100% 이해하는 분야, 시장에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바이오나 난도가 높은 기술 기업에는 잘 투자하지 않는 이유"라고 했다.



조선일보 B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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