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욱 공정위 후보자 “대기업은 ‘가난한 집 맏아들’ 의무 다해야”

세종=조귀동 기자
입력 2019.08.11 10:00
과거 논문서 "재벌 불법행위 처벌 적고 과징금 낮아"
"대기업 때문에 기회 받지 못한 기업에 보상해야"

지난 9일 신임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로 지면된 조성욱 서울대 교수가 과거 대기업에 대해 "가난한 집 맏아들"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기회조차 받지 못한 기업 및 경제주체들에게 보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또 조 후보자는 "대기업의 입찰담합, 가격담합, 경쟁제한 또는 불공정한 행위에 대한 엄정한 법 집행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조 후보자는 지난 1994년 미국 하버드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 뉴욕주립대(SUNY), 한국개발연구원(KDI), 고려대를 거쳐 2005년부터 서울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2000년대 후반까지는 기업지배구조 연구에 주력했다. 조 교수가 해외 1급 학술지에 게재한 논문은 모두 기업 지배구조에 관한 것이다. 하지만 2010년 이후에는 금융이나 재무구조, 주가와 기업 특성 간의 관계 등에 주력해 대기업문제에 대한 논문이 거의 없다.


조성욱 신임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가 지난 9일 서울 소공동 공정거래조정원에 설치된 후보자 사무실에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재벌 성장은 우리 경제 구성원 희생 덕분"

조 후보자의 대기업관(觀)을 엿볼 수 있는 가장 최근 논문은 지난 2012년 공정경쟁연합회가 발간하는 ‘경쟁저널’에 게재한 ‘대규모 기업집단 정책의 새로운 모색’이다. 이 논문에서 조 후보자는 "수출 대기업이 괄목할만한 성공을 거두고 있는 가운데, 국내 중소기업 간의 탈동조화 현상도 심화되고 있다"며 "재벌과 중소기업의 탈동조화 또는 양극화를 완화시키면서 균형성장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지속적으로 창의적인 기업이 생성되고 이들이 성장할 수 있는 기업 생태계를 마련해야 하며, 이를 위해 불필요한 규제를 완화하는 작업을 할 필요가 있다"고 썼다.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공정경제’와 ‘혁신성장’ 기조와 일치하는 내용이다.

조 후보자는 "‘가난한 집 맏아들’을 위해 동생들이 희생한 것처럼, 재벌의 높은 성과가 있기까지 국민경제 발전을 위해 이들이 성장하도록 인적·물적 자원을 몰아준 우리 경제 구성원들의 희생이 있었다"며 "그들(재벌) 때문에 기회조차 받지 못한 기업 및 경제주체들에게 보상해야 하는 이유가 존재한다"고 썼다.

또 조 후보자는 대기업집단에 대한 엄격한 법 집행을 강조했다. 그는 "(재벌은) 개별 시장에서의 높은 점유율과 다수의 시장에서 막대한 영향력이 있다"며 "이들이 시장지배적 사업자로서의 지위를 남용하거나 불공정행위를 하는 것은 단순한 경쟁법의 위반을 넘어 많은 기업들의 생존에 영향을 미치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지고 올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재벌의 불법행위는 신고건수에 비해 실제 적발돼 처벌을 받는 경우가 적을 뿐만 아니라, 적발되더라도 과징금이 낮아 불법행위를 방지하지 못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는 한다"고 덧붙였다.


조성욱 신임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는 지난 2012년 ‘경쟁저널’에 기고한 글에서 대기업을 ‘가난한 집 맏아들’로 지칭하면서 대기업에 밀려 지원을 받지 못한 기업과 경제주체들에 대한 보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경쟁저널
◇"규모 작은 재벌도 규제해야"

조 후보자는 과거 논문에서 규모가 작은 대기업 집단에도 규제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은 총자산 5조원이 넘으면 대기업집단으로 분류하고 2조~5조원은 중견 그룹으로 분류한다.

조 후보자는 지난 1999년 KDI에서 발간한 ‘한국기업의 수익성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서 1992~1997년 6년간 연평균 5022개 기업의 수익성을 분석한 결과 1~70대 재벌 소속 기업의 수익성이 더 낮았다는 결과를 내놨다. 5대 재벌 계열사는 다른 조건이 동일한 타사보다 경상이익률이 2.5%포인트(P) 낮았다.

6~30대 재벌 계열사의 경상이익률은 3.4%P, 31~70대 재벌 계열사는 2.1%P 낮았다. 또 70대 재벌에 속하는 지에 상관없이 관계회사 투자 비중이 높은 회사는 경상이익률이 4.1%P가량 낮다고 조 후보자는 분석했다.

이 보고서는 조 후보자의 대표 논문으로 지난 2003년 금융경제학회보(Journal of Financial Economics)에 게재된 ‘기업 지배구조와 기업 이윤’의 원형(原形)이다. 2003년 논문에서 조 후보자는 시기를 1993~1997년으로 좁히고, 70대 재벌 계열사를 한데 뭉뚱그려 분석했다.


조성욱 신임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는 전임자인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과 마찬가지로 중견그룹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어야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연합뉴스
KDI 보고서 결론으로 조 후보자는 "본 연구는 재벌정책의 대상, 범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하고 있다"고 썼다. 6~30대 재벌의 수익성이 5대 재벌보다 더 낮은 상황에서, 최상위 재벌 위주였던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조 후보자는 "70대 재벌보다 작은 기업집단에서도 집단 내의 상호출자는 기업의 수익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중견 그룹에도 규제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2019년 현재 공정위의 대기업집단 규제 대상은 총자산 10조 이상인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34곳과 총자산 5조~10조원인 공시대상 기업집단은 25곳이다. 전임자인 김상조 정책실장은 지난 3월 "올해 공정위는 총자산 2조~5조원인 중견 그룹의 사익편취 행위를 중점적으로 조사할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공정위 감시의 사각 지대에 있으면서도 소유 및 지분 구조가 복잡한 기업 집단을 살피겠다는 얘기였다. 조 후보자가 공정위원장 업무를 수행하면, 김 실장의 노선을 따라서 중견 그룹에 대한 관리 감독을 크게 강화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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