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 적자 韓電 "전력원가 공개할 것"… 정부에 대놓고 반발

최현묵 기자
입력 2019.06.12 03:08

정부가 전기요금 인하 압박하자 협의없이 영업기밀 공개 방침
전기요금 인상 이어질지 주목

"정부가 원가보다 낮은 전기요금을 강요하면서 그 부담을 모두 한전에 전가할 거라면 이참에 아예 한전을 상장 폐지하라." 11일 '민관 합동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 태스크포스(TF)'가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공청회는 내내 아수라장이었다. 이달 말 누진제 개편안 확정을 앞두고 최종 의견 수렴을 위해 열린 공청회였지만 한전 소액주주들의 고성(高聲)이 난무했다. 장병천 한전 소액주주행동 대표는 현장 질의응답에서 "정부가 선거를 앞두고 전기요금을 인하하겠다는 포퓰리즘 정책을 펴고 있다"며 "이달 안에 한전 경영진을 배임죄로 고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공청회에선 한전도 폭탄 발언으로 정부를 당혹하게 했다. 한전 권기보 영업본부장(전무)은 공청회 도중 두 번에 걸쳐 전기료 원가 공개 방침을 밝혔다. 권 본부장은 "전기요금의 원가 구성 내역을, 이르면 올 하반기부터 전기료 청구서에 상세히 밝히겠다"고 했다.

한전은 그동안 전기료 원가를 철저히 비밀에 부쳐왔다. 국회 요구에도 "영업기밀이라 알려줄 수 없다"고 해왔다.

한전의 원가 공개 입장 발표는 사전(事前)에 정부와 협의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공(公)기업인 한전이 정부와 사전 협의도 없이 원가 공개 입장을 밝힌 건 문재인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으로 적자가 누적된 데 따른 절박감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한전은 산업은행이 지분 32.9%를 소유한 최대 주주이고 정부도 18.2%를 보유하고 있다. 2013년 이후 매년 1조~12조원대 흑자를 내던 한전은 탈원전 정책 이후 지난해 연간 2080억원, 올 들어 1분기에만 6299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손양훈 인천대 교수는 "상장사인 한전의 경영진이 주주들의 압박을 못 이기고 '원가 공개'라는 극한 카드를 꺼냈다"며 "계속 정부 지시만 따르기 힘든 한계점에 왔음을 토로한 것"이라고 했다.

이날 누진제 개편 공청회가 열린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는 행사 전부터 한전 소액주주들이 '한전 적자 강요하는 산업부는 무능 부처'란 피켓 시위를 벌였다. 패널 토론이 끝나고 질의응답이 이어진 공청회 후반부 40분간은 패널들이 마이크에 대고 하는 얘기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소액주주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국내외 주주들의 압박에 한전도 원가 공개라는 '최후의 카드'로 정부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탈원전 정책으로 원가가 저렴한 원자력 대신 비싼 원료인 LNG(액화천연가스),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를 구입하다 보니 한전의 실적은 곤두박질쳤다.

2013년 이후 매년 1조~12조원대의 영업이익을 내던 한전은 탈원전 정책이 시작된 2017년 4분기 1294억원의 적자를 낸 이후 지난해 3분기를 제외하고 올해 1분기까지 줄곧 적자를 이어갔다. 올 1분기에만 6299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한전이 원가를 공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실제 실현되긴 힘들다는 전망이 나온다. 공청회 직후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본지 통화에서 "원가 공개에 관해 한전과 협의된 바 없다"며 "원가 공개 시 여러 문제점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충분히 검토돼야 한다"고 했다.

우리나라의 전기요금은 주택용, 산업용, 일반용(상업용) 등 용도별로 가격이 다르다. 그동안 한전은 원가를 공개하진 않으면서도 '주택용 전기요금은 원가보다 소비자 가격이 싸고, 산업용과 일반용은 원가보다 비싸다'고 설명해왔다.

업계 관계자는 "일반용 전기료는 특히 원가보다 많이 비싼 편"이라며 "한전이 원가를 공개하면 비싼 전기를 써온 중소기업과 전국의 자영업자들이 집단 반발할 것이 뻔한데 총선을 앞둔 정부·여당이 원가 공개를 허용하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A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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