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25년간 원전 홍보해온 단체마저, 이름 바꾸고 '탈원전 나팔수'로

김형원 기자
입력 2019.06.12 03:08

[탈원전 2년의 늪] [7] 탈원전으로 전향 압박받는 기관들

정부 출연금으로 운영되는 한국원자력문화재단이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 존폐 위기에 몰리자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으로 이름을 바꾸고 원자력 홍보라는 원래 존재 목적과 달리 반(反)원전 활동에 나선 것으로 11일 나타났다. 재단 이사들은 내부 회의에서 "(정권의) 견제를 안 받기 위해 재단 이름과 업무 내용도 바꾸자"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권 차원에서 전방위 '탈원전' 압박이 작용했기 때문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 재단은 1992년 '원자력 문화의 진흥'을 목적으로 설립된 이래 주로 원전 홍보 활동을 해 왔다.

한국원자력문화재단 '개명 회의록'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이철원
이종배 자유한국당 의원이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이사회 회의록에 따르면, 2017년 11월 재단 이사들은 25년간 유지해 온 기관명(名)을 바꾸는 안건을 상정했다. 개명(改名) 이유에 대해 "'원전(原電)'이란 말이 갑자기 기피 용어가 돼 버렸다"고 했다. 당시 이사장은 "기관에 대한 존폐 문제도 심각하게 거론됐었고 곡절이 많이 있었다는 것을 굳이 이제 와서 말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자 A이사는 "(이름을 바꾸면) 재단이 견제를 안 받으니까 이 정권 내에서는 편하겠다"고 했다. B이사는 "현 정부의 방침이 저렇기 때문에, 없어지는 것보다는 그래도 존속되어서 이대로 가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전기에너지관의 정원을 9명 줄이는 안건도 논의됐다. 한 이사는 "문재인 정부에서 일자리 창출한다면서 공무원도 증원하는데 도리어 인원을 줄이면 어떻게 하느냐"고 반발했다. 그러자 이사장은 "지금까진 '원자력' 때문에 곤란했지만 에너지 홍보로 전환하면 훨씬 수월해지고 잘 풀려나갈 것"이라면서 "(이렇게 해서라도) 모든 고생과 곡절이 끝나길 희망한다"고 답했다. 정부의 압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개명하고 조직·업무도 개편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그러나 당시 개명을 결정한 이사들은 지난해부터 대거 교체됐다. 재단 대표인 상임이사엔 탈(脫)원전을 주장해 왔던 시민단체 녹색연합 활동가 윤기돈씨, 비상임 이사장에는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가 임명됐다. 신임이사는 '한국 푸드트럭지원 협동조합' '모두를 위한 환경교육연구소' '코리아메디케어' 출신 등으로 채워졌다. 개명 이후 재단의 역할은 '신재생에너지 전도사'로 완전히 뒤바뀌었다. 재단은 지난달 "국민의 84.2%가 에너지 전환 정책에 공감하고 있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설문은 독일·영국·프랑스·중국·일본·인도의 신재생에너지정책을 나열한 뒤 '에너지 전환 정책은 세계적인 추세라고 볼 수 있다는 데 어느 정도 동의하느냐'고 묻는 식으로 진행됐다. 신재생에너지에 긍정적인 답변을 유도하는 것이었다.

원자력과 관련된 다른 공공기관들도 사실상 원전 포기를 강요받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한국원자력안전재단, 원자력안전위원회, 한국수력원자력 등 원자력 기관에는 탈원전을 주장해온 시민단체 출신들이 대거 '낙하산'으로 내려온 것으로 알려졌다. 자유한국당은 "11개 원전 기관에 모두 13명의 친문(親文) 낙하산 인사가 포진한 것으로 파악된다"고 했다. 원자력 관련 기관에 근무하는 연구원은 "에너지 분야의 석·박사치고 문재인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정책이 허황됐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과학적으로 설명하면 잘린다'는 두려움에 침묵한다"고 했다.

이종배 의원은 "문 정권은 에너지 기관들에 '재생에너지냐 아니냐'의 양자택일식(式) 사상 검증을 강요하고 있다"며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볼 법한 미신적인 '원전 공포'를 걷어내고 에너지 전문가들의 합리적인 조언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A3면
말모이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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