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의 경고 "한국경제 상황은 국가 비상사태"

케임브리지=김아진 특파원
입력 2018.12.10 03:08

"투자·신산업 개발 부족으로 주력 산업들 붕괴되고 있다
文정부의 소득주도 성장은 영양제 주사 한번 놔주는 것"

장하준〈사진〉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경제학과 교수는 현재의 한국 경제 상황을 "국가 비상사태"라면서 "문재인 정부가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받아들이는 게 첫 해결 방안"이라고 말했다.

장 교수는 지난달 29일(현지 시각) 케임브리지대학 강의실에서 인터뷰를 갖고, 현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전략에 대해 "한마디로 몸이 약해져 있으니 영양제 주사 한번 놔준 것"이라며 "나쁜 건 아니지만 대증요법에 불과하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영양제 맞았으면 운동도 하고 식생활도 개선해야 몸이 튼튼해지는데 소득주도성장에는 체질 개선 얘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지금 경제 상황은 분배가 잘못되고 재벌이 너무 많이 가져가서 생긴 것도 아니고, 정부 규제가 많아 생긴 것도 아니다"라며 "그동안 투자와 신산업 개발이 부족했기 때문에 주력 산업들이 붕괴되면서 어려워진 것"이라고 말했다.

장 교수는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 "우리 경제 구조를 제대로 모르고 시행한 정책"이라고 했다. 그는 "자영업자 비율이 6%인 미국 상황을 25%에 달하는 한국에 그대로 적용하는 건 문제가 있다"면서 "한국은 최저임금을 올리면 자영업자들이 그것을 흡수할 여력이 없다"고 했다.

장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 케임브리지대에서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했다. 최근 청와대 정책실장에서 물러난 장하성 전 실장의 사촌 동생이다. 그러나 그는 "우린 생각이 다르다"며 "(장 전 실장이) 나이도 나보다 열 살 위라 친한 사이도 아니어서 물러난 뒤에도 통화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재벌에 대한 현 집권 세력의 인식과 전략이 달라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한국의 권력 구조상 대통령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대통령과 여권이) 재벌 규제에만 갇혀 있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정부가) 좌우 이념에만 치우쳐 재벌을 적으로 여기고 무조건 잡아넣겠다는 식으로 간다면 경제가 살아날 길이 없다"며 "갈등만 하다 잘못된 부정부패 사건이 생기고 외국 투기 자본이 들어와서 (우리 기업을) 다 잡아먹어 경제가 와해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업 집단이 붕괴하면 새로운 산업을 키울 수 있는 힘이 약화된다. 그런 다음에는 아무리 혁신을 해봐야 소용이 없다"고도 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삼성 이건희 회장까지 돌아가시면 사달이 난다"고 말했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달 29일(현지 시각) 본지 인터뷰에서 한국 경제 상황에 대해“국가 비상사태”라면서“문재인 정부가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받아들이는 게 첫 해결 방안”이라고 말했다. /김아진 특파원
장 교수는 우리 경제의 체질 강화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1997년 외환 위기 이전 투자 비율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35%였는데 그 이후 29%로 떨어졌고, 그중에서도 국민 경제 생산성과 맞닿아 있는 설비투자 등은 반 토막이 났다는 것이다. 그는 "매년 정부는 10개가 넘는 신산업을 만들겠다고 하는데 이는 혁신을 안 하겠다는 것"이라며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실리콘밸리가 천재 몇 명 때문에 혁신에 성공한 게 아니다"라면서 "혁신은 온 국민이 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돈 생각 하지 않고 기업의 기초 연구에 예산을 대줘야 하고, 기업도 진짜 상용화할 수 있는 연구에 매진해야 한다는 주문도 했다.

장 교수는 중국에 대한 경계심을 더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나라 산업은 휴대전화 말고 반도체, 조선 등이 모두 1970~1980년대에 만들어졌다"면서 "지금 중국에 확실히 앞서 있는 건 반도체 정도인데 이마저 시진핑이 나서서 국책사업으로 공장 17개를 지으라고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중국이 한국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과 유럽도 따라잡는다는 말이 나온다"면서 "기본 경제 체질이 약한 우리 입장에서 성장, 복지 논쟁을 하는 건 변죽 두드리는 것"이라고 했다.

장 교수는 경제 정책과 관련, 좌·우파의 진영 논리를 비판했다. "좌파는 좌파대로 최저임금에 집착하고, 우파도 규제 완화에 집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중국에 따라잡히는 게 규제 때문이 아니라고 진단했다. "한쪽에선 내가 투자와 신개발 등을 강조한다고 군부독재 때나 쓰던 말 아니냐며 비판하는데 우리나라 경제는 그렇게 접근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현 정부의 복지정책에 대해서도 "단순히 평등하게 돈을 나눠 쓰자는 식이 돼선 안 된다"며 비판적인 입장을 밝혔다. 정부와 기업, 노동자가 함께 먼 미래를 보고 장기적인 전략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장 교수 인터뷰가 끝날 때쯤 인터뷰 장소에 도착한 장 교수 동생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과학철학 석좌교수는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총장이 지난달 물러났는데 그분은 혁신하고 싶은 생각에 수십 년간 몸담았던 미국 메릴랜드대 교수직을 그만두고 한국에 왔는데 황당하게 그렇게 됐다"며 "이분이 하면 '과학교육이 잘될 수 있겠다' 생각했는데 박근혜 전 대통령 지역구에 있는 학교의 총장이란 이유로 이렇게 됐다"고 말했다. 작년 2월 임명된 손상혁 전 DGIST 총장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연구비 부당 집행 등의 이유로 두 차례 감사를 받고 지난달 사표를 냈다.


조선일보 A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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