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10년 전 금융위기와 정부 해명자료

김기성 조선비즈 경제부장
입력 2018.09.15 06:00
‘한국의 외채가 4000억달러를 넘어 외환위기 대비 2배 수준이다. 한국은행이 원화가치 하락을 막기 위해 외환시장에 개입하는 상황은 1997년과 유사하다.’(파이낸셜 타임스 2008년 8월 13일자 ‘Korea: 1997 rewind’ 중)

‘외채규모가 1997년 당시의 두배 수준이지만 조선업계 선물환 등 미래수익에 기반한 일시차입 성격이어서 외채의 증가 원인과 성격이 과거와 다르다.(기획재정부 2008년 8월 14일 보도참고자료 중)

‘한국의 단기외채가 외환보유액에 육박해 단기외채 문제는 아직 안심하기 이르다. 외환보유액도 회사채, 기관채 비중 및 동유럽 위기 전염 가능성을 감안하면 충분하지 않다’(파이낸셜 타임스 2009년 3월2일자 ‘The Lex Column-Korea’s debt 중)

‘유동외채 중 상환부담 없는 환헤지용 차입금을 제외하면 외환보유액 대비 유동외채비율은 대폭 하락한다. 외환보유액 규모도 세계 6위로 단기외채 상환에 충분한 수준이다’(기획재정부 2009년 3월2일 보도해명자료 중)

불과 10년 전의 일이다. 한국의 대외건전성을 놓고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던 해외 언론의 보도에 대응하느라 당시 정부는 번번이 진땀을 흘려야 했다. 꼭 10년 전인 2008년 9월 15일 미국 대형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는 1997년 외환위기를 겪었던 한국을 또다시 겨냥했다.

전세계 금융시장이 극심한 신용경색으로 패닉 상태에 빠지자 그해 초만 해도 900원대 중반에 머물던 원달러 환율은 순식간에 1500원대로 직행했다. 국가부도 위험 지표인 한국의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도 치솟았고 주식시장에선 외국인 투자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정부는 환율 방어에 총력을 다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그 사이 1월말 2618억달러였던 외환보유액은 10월말엔 2000억달러마저 간당간당했다. 10월말 한미 통화스와프(300억달러)가 체결되지 않았다면 한국은 또한번의 외환위기 불구덩이에 들어갈 처지였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자의반타의반 구세주로 나서면서 한국은 간신히 최악의 상황을 모면했다.

다행히도 한국의 대외건전성은 그 후 10년 사이 몰라보게 좋아졌다. 다시는 이런 수모를 겪지 않겠다는 각오로 대외신뢰도를 차곡차곡 쌓아올린 결과다. 그 수단은 달러로 짓는 외환방파제의 원천인 경상수지 흑자와 나라 곳간을 지키는 재정건전성 유지였다.

운도 따랐다. 급부상하던 중국 경제의 등에 올라탄 덕에 자동차 전기전자 등 주력 산업의 수출이 호조를 보이면서 위기 극복의 버팀목이 됐다.

그 결과 해외 언론이 주기적으로 물고 늘어졌던 단기외채 비중은 절반도 안되는 20%대로 뚝 떨어져 6년째 유지되고 있다. 외환보유액은 두배 수준인 4000억달러를 돌파했다. 경상수지는 74개월 연속 흑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은 재정건전성을 인정받아 선진국에 버금가는 수준에 올라섰다.

이런 성적표는 지난 2013년 5월 미국이 위기 극복을 위해 무차별 살포한 유동성을 거둬들이는 테이퍼링(양적완화의 점진적 축소)을 선언했을 때 빛을 발했다. 다른 신흥국들의 금융시장이 요동쳤을 때 한국으로는 오히려 자금이 유입되는 달라진 위상을 과시했다. 현재 진행 중인 미국 금리인상발 신흥국 위기 국면에서 한국이 빗겨나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렇다고 한국이 외환위기 안전지대에 있는 건 결코 아니다. 기축통화국도 아니고 변변한 천연자원도 없는 소규모 개방경제 체제인 한국은 외환방파제와 재정건전성 기제에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 또다시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

이런 차원에서 문재인 정부가 고용은 물론 소득분배에서조차 부작용을 낳는 소득주도성장을 밀어붙이기 위해 급격한 복지성 재정 지출 확대에 나선 것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018년~2022년 국가재정운용계획상 5년간 총지출 증가율은 평균 7.3%로 총수입 증가율인 평균 5.2%를 크게 웃돈다.

지출 증가 속도도 문제지만 더 우려되는 것은 지출 내용이다. 기본적으로 재정의 역할은 저소득층 사회안전망 확충과 경기활성화 마중물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별다른 효과도 내지 못하는 정부 주도의 일자리 창출에 무턱대고 재정을 쏟아붓고, 한번 늘리면 줄일 수 없는 현금성 복지 예산을 대폭 증액했다. 한국 경제의 성장과 양극화 해소를 위해선 재정의 역할이 어느정도 필요하지만 무분별한 재정 확대는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 문재인 정부의 사전에는 재정효율성은 없는듯 하다.

이에 비해 저성장 고착화, 빠른 고령화 등을 고려하면 향후 세수는 한계점을 드러낼 가능성이 높다. 정부도 세수 호황세가 내년에 정점을 찍은 뒤 2020년부터 둔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가뜩이나 대내외 상황은 악화일로를 달리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잘나갔던 조선 자동차 등 주력산업은 장기 불황에 빠져있다. 반도체가 홀로 선전하고 있지만 고점 논란이 끊임없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산업정책은 보이지 않고 규제혁파 혁신성장은 구호에 그치고 있다. 전세계에서 가장 빠른 저출산 고령화라는 인구통계학적 핸디캡은 점점 도드라진다. 한계상황으로 내몰리는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도 급증했다.

여기에 미국발 금리인상, 신흥국 위기, 미중 무역전쟁, 유로존 붕괴 가능성, 중국 부채 위기 가능성 등 대외 위험 요인들이 곳곳에 깔려있다.

문재인 정부가 성장과 고용의 주체인 기업들을 뛰게 하는 친시장 성장전략 없이 ‘기-승-전-돈풀기’에만 몰두하다간 성장잠재력을 높이기는커녕 재정건전성만 축낼 수 있다. 이 정부 임기내는 괜찮을지 몰라도 이런 식으로 하다간 다음 정부와 미래 세대에 큰 짐을 지우게 된다. 더군다나 한국경제의 잠재성장률은 2020년 연 2%대 초반, 2030년대에는 연 1%대로 추락할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이다.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남북경협 문제도 재정에 큰 변수다.

자본주의 속성상 글로벌 금융위기는 어떤 형태로든 재현된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견해다. 외부 충격에 취약한 소규모 개방경제인 한국으로선 건전한 재정과 흑자 경상수지만이 위기 예방의 보루다. 그러나 반기업 친노동 돈풀기에 기반을 둔 소득주도성장 실험의 방향은 반대쪽을 향하고 있다. 더 늦기 전에 방향을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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