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성장쇼크]① 사라지는 주방 이모들…일자리 잃어도 기댈 곳이 없다

세종=이현승 기자
입력 2016.12.22 05:53
우리 경제가 1년째 분기에 0%대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작년 4분기에 0.7% 성장한 이후 올해 1분기 0.5%, 2분기 0.8%, 3분기 0.6%로 게 걸음을 했다. 조만간 발표될 4분기 성장률은 0%에 가깝고 내년은 더 어려울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나오고 있다. 대내외 경제 불확성이 커지며 정부와 기업이 투자·지출 계획을 미루는 동안, 경기 변동에 취약한 저소득층과 자영업자 등 취약계층이 겪는 어려움이 경제지표에 하나 둘 나타나고 있다. [편집자주]

윤정옥(57)씨는 요즘 일자리가 났다는 연락이 올까봐 하루에도 몇 번씩 휴대전화를 확인한다. 2주 전까지 서울 청량리역 앞에 있는 미주상가의 한 백반집 주방에서 1년 넘게 일했는데 가게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해고됐다.

며칠 전 일자리를 구해주는 중개업소에 등록을 했는데 통 연락이 없다. 월급을 적어도 170만원은 받아야 한다고 했는데, 담당 팀장이 “요즘 연변동포가 늘어나서 인건비가 많이 내려갔다”고 말했다. 혹시 도움이 될까 해서 팀장에게 중개 수수료를 좀 더 얹어줬는데, 이제 월급을 더 낮춰서 불러야 하나 고민이다.

조선 해운 구조조정 여파로 손님이 뚝 끊긴 거제의 한 횟집. / 연합뉴스
주방 이모들이 사라지고 있다. 경기 부진이 장기화되면서 기업, 가계 등 경제주체들이 너도나도 허리띠를 졸라매자 식당 매출이 내리막을 걷고 있는 탓이다. 매출 감소로 종업원을 불가피하게 해고하는 곳이 하나둘 늘며 일자리 시장엔 한겨울보다 더 한 한파가 불어닥치고 있다.

일자리 한파는 당장 먹고 살 일이 빠듯한 저소득층에게 더욱 큰 타격을 준다. 그렇잖아도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저렴한 연변 교포 등 외국인들이 늘면서 저임금 일자리는 줄어드는 추세였다. 일시적인 실직 상태에 처한 이들의 소득이 급감하고 있지만, 기댈 곳이 없어 소득 격차는 계속 벌어지고 있다.

◆ 불황에 김영란법까지…음식점·주점업 고용 급감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10월 음식점·주점업 종사자 수는 93만879명으로 1년 전보다 약 3만명 줄었다. 감소 폭은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컸던 2010년 10월(-3만921명) 이후 6년 만에 가장 컸다.

음식점·주점업 종사자는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증가하다가 작년부터 감소하기 시작해 올해 감소 폭이 확대됐다. 10월에 큰 폭으로 줄어든 것은 9월 28일부터 시행된 청탁금지법(김영란법) 영향이 컸던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세종청사 인근에서 한우 전문점을 운영하는 A씨는 “김영란법이 시행된 첫 주에는 단체 손님이 한 테이블도 없어서 텅 빈 식당을 보면서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면서 “이달 들어서도 연말이 맞나 싶을 정도로 매출이 많이 줄어서 공무원들이 선호하는 도시락 메뉴를 개발해야 하나 고민중이다”라고 전했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금지법(김영란법) 시행 첫날인 9월 28일 정부세종청사 인근 한 식당이 점심시간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 연합뉴스
경기 불황에 종업원을 고용하지 못하는 1인 자영업자가 급증하고 있는 것도 고용 한파에 영향을 주고 있다. 1인 자영업자는 2013년 1분기 이후 계속 줄어들기만 하다가 올해 3분기에 408만8000명으로 처음으로 증가했다.

체감경기도 꽁꽁 얼어붙었다. 통계청이 발표하는 음식점업의 서비스업 생산지수는 9월 85.2로 2011년 9월(83.9) 이후 5년 만에 가장 낮았다. 서비스업 생산지수는 매출액 등 서비스업의 생산활동을 지수화한 것으로 100보다 낮으면 생산활동이 둔화됐음을 의미한다.

◆ 정부 복지혜택서 소외된 ‘단기 저임금 일자리’ 종사자들

서울 관악구에 사는 김아영(25)씨는 이달 초 구청의 긴급복지지원을 통해 40만원 남짓 되는 돈을 받아 고시원 방 값을 겨우 냈다. 세 달 전에 아르바이르를 하던 호프집에서 장사가 안된다며 시급을 깎겠다고 해서 그만둔 이후 새로운 일자리를 못 구해 월세가 밀리기 직전이었다. 이혼한 부모님과는 고등학교 졸업 이후 연락이 끊겼다.

그런데 월세를 내고 나니 남는 돈이 겨우 5~6만원이어서 하루 세 끼 먹기도 빠듯 했다. 더 큰 문제는 다음달이다. 정부의 긴급복지지원은 생계비를 최대 6개월 간 지원하도록 돼 있지만 처음 한 달이 지나고 나면 심사를 통해 연장 지원 여부를 결정한다.

구청의 담당 사회복지사는 “심한 질병을 앓고 있거나 화재가 나는 등 위중한 상황이 아니고, 근로 능력이 있는 젊은 층인 경우 연장 지원을 받기가 어렵다”고 조언했다.

지난 8월 전주시 덕진구 전북대학교 구정문 앞에서 알바노조 전주지부 등이 아르바이트생 최저임금 보장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용 불안이 심해지면서 저소득층 지갑은 더욱 얇아지고 있다. 주방, 서빙 등 저임금 일자리에 주로 종사하던 이들이 해고 당하면서 소득이 급감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3분기 소득 하위 20%에 해당하는 1분위의 가계소득은 141만6900원으로 1년 전보다 5.9% 감소했다. 임시 일용직 일자리가 감소하면서 근로소득이 12.4%나 줄어든 여파가 컸다. 소득에서 세금을 뺀 가처분소득은 7.1%나 감소했다.

반면 소득 상위 20%인 5분위는 가계소득이 오히려 2.4% 늘어 854만3000원으로 집계됐다. 가처분소득은 2.8% 증가했다.

월 평균 100만원도 못 쓰는 가구 비율은 7년 만에 최대인 13.01%로 치솟았다. 이 비율은 글로벌 금융위기 전후 13~14%까지 치솟았다가 다시 8~11% 수준으로 내려갔지만 지난해 2분기부터 상승하기 시작했다.

기존 복지제도는 근로 능력이 없는 대상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근로 능력은 있지만 갑자기 실직 상태가 돼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은 기댈 곳이 별로 없다. 실업수당은 고용보험에 가입한 사람만 받을 수 있는데, 음식점이나 편의점 등에서 최저임금 보다 낮은 돈을 받으며 일하던 사람들에게는 먼나라 일이다.

정부에선 ‘긴급 복지 지원’을 하고 있지만 예산은 한정돼 있고 신청자는 많다보니 자격요건이 까다로운 편이다. 긴급 복지지원을 신청하려면 ▲중위소득의 75% 이하이고 ▲재산이 1억3500만원 이하이고 ▲예금 적금 등 금융자산이 500만원 이하여야 한다.

이런 요건을 충족해도 ▲주 소득자가 사망, 가출, 행방불명, 구금시설 수용으로 소득 상실 ▲중한 질병 또는 부상 ▲가구 구성원으로부터 방임 또는 유기, 학대 ▲화재로 인해 주택이나 건물에서 생활 곤란 등 정부가 정한 7가지 요건 중 하나에 해당해야 한다.

자격요건을 충족해도 받을 수 있는 생계비는 1인가구는 40만원이 조금 넘는다. 2인은 71만원 정도다. 월세를 내고 나면 사실상 생활비로 쓸 수 있는 돈은 거의 남지 않는다. 조금의 생활비라도 벌기 위해 일자리를 구하는 순간 긴급지원 자격이 박탈된다.

문제는 내년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취업자 수 증가 폭이 올해 30만명대에서 내년 20만명대로 줄고 실업률도 올해(3.8%)보다 높은 3.9%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도 "내년 고용 절벽이 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말모이100

오늘의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