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포괄근저당에 시달리는 제2금융권 대출者

이신영 기자 김지섭 기자
입력 2015.04.20 03:03

[2013년 전면 금지했지만 대출자들에 부당 요구 정황]

- 금융당국 전수조사 착수
형식적 절차라며 보증 요구, 소득 없는 기초수급자를 연대보증인으로 세우기도
금융회사 내규로만 금지… 法 제정해 피해 막아야

지난 2013년 10월, 대구에 사는 주부 김정순(가명·45)씨는 지인 임모씨에 대한 연대보증을 섰다. 축협 직원은 "대출에 필요한 형식적인 절차다. 걱정할 것 없다"고 했다. 그런데 2014년 초 임씨가 수입이 끊겨 빚을 못 갚게 되자, 축협은 담보로 잡았던 임씨의 땅과 건물을 경매 절차에 따라 8억7000만원에 매각한 뒤, 나머지 빚과 연체이자 8억3000만원을 김씨에게 갚으라고 독촉했다. 김씨가 영문을 알아보니 황당했다. "대출금 일부에 대해서만 보증을 선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임씨의 빚 전부를 갚아야 하는 '포괄근저당' 계약이었다"는 것이다.

정부는 대출자가 빚을 갚지 못하면 보증인이 대출자의 모든 빚을 대신 떠안는 이른바 '포괄근저당' 제도의 폐해가 심각하다고 보고, 은행권에 이어 2013년 7월부터 제2금융권 회사들도 포괄근저당 설정을 전면금지했다. 그러나 금지조치 이후에도 2금융권의 포괄근저당 설정 관행이 없어지지 않아 김씨와 같은 피해자가 끊이지 않고 있다. 금융감독원도 이런 문제점을 인지하고, 내달부터 2금융권의 포괄근저당 실태에 대해 대대적인 조사에 나설 방침이다.

◇포괄근저당제도, 개인파산 재촉

금융 당국은 포괄근저당 제도를 금지하면서 2013년 7월 이전에 맺어진 포괄근저당 계약은 향후 5년 동안 대출 만기·계약연장 시 연대보증 조건을 없애거나, 특정 채무만 책임지는 식으로 전환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이 같은 지침이 제대로 실행되지 않고 있다. 포괄근저당 제도가 법이 아니라 금융회사 내규로만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농협 등 상호금융사들의 포괄근저당 설정액은 28조2000억원으로 보증인 숫자가 40만여명에 이른다(2013년 7월 기준).

2금융권 대출자는 대개 신용등급 6~7등급, 연소득 2000만~3000만원인 자영업자·일용직 근로자·농민 등이라 빚을 못 갚는 비율도 높다. 이들의 대출에 연대보증을 선 사람 중엔 포괄근저당 보증을 선 경우가 많다. 기초수급자인 안모(77)씨도 피해자 중 한 사람이다. 그는 1999년 친구의 부탁으로 한 저축은행 대출의 포괄근저당 보증을 섰다가, 친구의 사업 실패로 5억5200만원의 빚을 떠안게 됐고, 채권추심에 시달리다 못해 신용회복위원회를 찾았다. 신복위 관계자는 "안씨의 경우 빚을 나눠 갚을 능력이 전혀 없어 법원에 가서 개인파산을 신청하라고 안내했다"고 말했다.

또 2금융권을 이용하는 서민 대출자 중에서는 대출을 받을 때 처음부터 포괄근저당 형태로 담보를 잡히는 경우가 많다. 지방 단위 농협의 고객 한모(70)씨는 1997년 주택 담보로 1억2000만원을 대출받고, 2005년에 신용대출 5000만원을 받았다. 최근 한씨가 주택대출금을 갚고 근저당을 해지하려 하자, 단위농협 직원은 "포괄근저당 대출로 취급했기 때문에 신용대출을 다 갚아야 근저당이 해지된다"면서 근저당 해지를 거절했다.

2금융권 회사들의 횡포는 신협·단위농협·산림조합 등의 조합 수가 전국적으로 3700개에 달해 금융 감독의 손길이 잘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지방의 2금융권 회사는 '밑져야 본전이다'는 식으로 포괄근저당을 설정하는 관행이 남아 있다"며 "서민들이 더 이상 피해를 보지 않도록 포괄근저당을 법으로 차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포괄근저당 제도


대출자가 금융 회사에 진 빚(대출·카드 빚·어음 등)을 못 갚으면 모든 빚을 대신 끌어안겠다고 보증인이 약속하는 것을 말한다. 만약 대출자가 사업자금 조달을 목적으로 보증을 받았는데, 사업자금뿐 아니라 카드 빚, 마이너스 통장 빚을 못 갚은 경우 이런 빚도 보증인이 책임져야 한다. 2금융권의 경우 개인에 대한 연대보증과 포괄근저당 설정이 2013년 7월부터 금지됐다.


 

조선일보 B2면
3일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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