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석 칼럼] 가계부채, 환부가 곪고 있다

이종석 논설주간
입력 2015.02.10 04:01
이종석 논설주간
급성질환과 만성질환이 있다. 급성질환은 갑작스럽게 증세가 나타나다보니 환자가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대처한다. 반면 만성질환은 '그러려니' 하다가 치료적기를 놓치곤 한다.

만성(慢性)의 사전적 의미는 '버릇이 되다시피 하여 쉽게 고쳐지지 아니하는 상태나 성질'을 뜻한다. 반복적으로 병환이 나타나는만큼 환자나 보호자 모두 경계심을 늦추게 되고, 결정적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 만성이 급성보다 위험한 이유다.

가계부채가 한국 경제의 '시한폭탄'으로 지목된 지 수년이 지났다. 정부는 여전히 '관리가능한 수준'이라며 걱정하지 말라고 하고, 국민들은 "뭔 일 있겠어"라며 경계심을 늦추고 있다. 만성질환의 위험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문제는 만성질환의 환부가 곪기 시작하면 급성질환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으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가계부채도 마찬가지다. 가계부채의 뇌관은 상환능력이 취약한 저소득층 대출에 있다. 정부는 상환능력 있는 중산층 이상 고소득층에 부채가 몰려 있다며 걱정할 필요없다고 하지만 정작 뇌관인 저소득층 대출에서 환부가 심하게 곪아가고 있다.

최근 한국은행이 국회에 제출한 '가계부채 한계가구 분석보고서'의 내용은 의미심장하다. 가처분 소득에서 원리금상환비율이 40%를 넘는 가계부채 '고위험군'이 지난해말 234만가구를 넘어섰다. 2012년 156만가구에서 2년새 78만가구가 늘었다. 금융자산을 모두 처분해도 빚을 갚을 수 없는 ‘한계가구’는 137만 가구로 같은 기간 26만가구나 급증했다.

대구시 인구와 맞먹는 사람들이 수입의 40% 이상을 빚갚는데 쓰느라 헉헉대고 있고, 대전시와 맞먹는 인구가 금융자산을 처분해도 빚을 못갚는 '깡통'대출자로 전락했다는 얘기다. 이들 중 상당수가 소득 3분위 이하 저소득층과 실패한 자영업자들이다. 이들은 이미 빚을 내서 빚을 갚아야 하는 악순환 구조에 들어섰다. 시간의 문제일 뿐 결국 가계파산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측면에서 지난해 하반기 정부가 취한 LTV DTI 규제완화 조치는 가계부채의 질적 구조를 악화시키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금융완화 조치가 단행된 8월 이후 연말까지 5개월 사이 금융권 주택담보대출은 총 28조원 급증했다. 지난해 1년간 전체 주택담보대출 증가액이 37조3000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마지막 5개월 동안 대출의 75%가 집중적으로 이뤄진 셈이다.

문제는 이 대출의 절반 가까이가 생계형 자금으로 소요됐다는 점이다. 빚을 갚거나 생활비를 쓰는데 절반 가까운 돈이 들어가고, 정작 부동산 시장에 투입된 돈은 절반에 미치지 못한다는게 금융권 분석이다. 빚을 내 빚을 갚아야 하는 고위험군 한계가구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대출여건 완화는 생계형 대출을 늘리고 가계부채의 뇌관을 격동시키는 계기가 됐을 뿐이다.

가계부채는 가랑비에 옷 젖듯 소리없이 현실화 할 가능성이 크다. 한계에 직면한 가구부터 하나씩 개인파산하고, 파산가구 숫자가 임계치를 넘어서면 사회문제로 부각될 것이다. 파장이 금융회사로 전이되면 상황은 위기로 확산된다.

은행들은 이미 심각성을 간파했다. 앞으로 추가적인 대출에 신중하게 대응하겠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번번이 만기연장을 통해 원금상환 압박을 넘겨온 대출자들에게 가혹한 현실이 다가오고 있다. 하반기로 예정된 미국 금리인상 여부도 변수다. 금리가 조금이라도 높아지면 가계 파산 속도는 빨라질 수 밖에 없다.

정부로서도 ‘아직은 괜찮다’며 멀찍이서 지켜보고만 있을 계제가 아니다. 대출구조 변경 등 근원적 처방과 함께 환부에 직접 칼을 대는 대응이 필요하다. 저소득층의 소득불평등 구조를 개선해 스스로 부채 절대규모를 줄일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지금은 일단 곪고 있는 환부 처리에 집중할 때다.
말모이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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