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VIEW] '깨진 독' 놔둔채 추경만 붓겠다는 정부

최규민 기자 신수지 기자 김경필 기자
입력 2019.06.11 03:01

당정청, 정책 수정 없이 추경을 '경제 만병통치약'처럼 내세워
추경 6조7000억 다 집행해도 경제성장 효과는 0.1%p밖에 안돼

청와대와 정부·여당이 대외 경제 여건 악화로 한국 경제가 엄중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우려하면서도 정책 전환 같은 근본적 처방 대신 '추경안 통과'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4월 25일 정부가 추경안을 국회에 제출한 이후 지금까지 열린 27차례의 당 간부 회의 및 의원총회에서 한 번도 빠짐없이 추경안 처리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윤종원 청와대 경제수석은 지난 7일 브리핑에서 "추경이 조기에 추진되어야 성장률이 높아지고, 경기가 나아지고, 또 일자리가 1만~2만 개 정도 창출될 수 있다"며 "추경이 안 되는 경우에 그런 일자리 기회를 놓치는 것"이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10일 북유럽 3국 순방에 앞서 "추경이 안 돼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1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고위 확대 당정(黨政)협의회에서 청와대와 정부·여당 관계자가 얘기를 나누고 있다.이미지 크게보기
1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고위 확대 당정(黨政)협의회에서 청와대와 정부·여당 관계자가 얘기를 나누고 있다. 오른쪽부터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 이낙연 국무총리,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남강호 기자
하지만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국회에 제출한 추경안이 통과·집행되더라도 성장률에 미치는 효과는 0.1%포인트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당·정·청이 추경에만 목을 매는 것에 대해 야당은 "경제 실패의 원인을 (추경을 가로막는) 야당 탓으로 돌리기 위한 술책"으로 의심하고 있다. 전문가들도 추경의 경제적 효과에 의문을 나타내고 있다. 이번 추경안에는 실업급여 8000억원, 노인 등 단기 일자리 6000억원, 마스크·공기청정기 보급 2000억원 등 경제 활력 제고에 큰 도움이 안 되는 사업들이 상당 부분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1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고위 확대 당정(黨政)협의회에서도 '추경 타령'은 계속됐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IMF를 비롯한 국제기구들이 우리 경제를 위해 추경 편성을 제안했고 고통을 겪고 계시는 국민과 기업들이 추경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은 "미·중 무역 갈등으로 어려운 대외 여건이 더욱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 주력 제조업 및 신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이번 추경은 이런 정부의 노력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김 실장은 이날 회의에서 6조7000억원 규모 추경안 가운데 수출 지원 예산은 3000여억원이라고 밝혔다.

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는 "이른바 '경제 냉전'의 시대가 개막됐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며 "이전까지 한국 경제의 구조적 환경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근본적으로 다른 구조적 환경이 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전과 다른 구조적 환경'에 대한 대책으로 추경을 제시했다. 그는 "그런 점에서 이제 추경은 산불·지진·미세 먼지 등 재해에 대한 대책을 넘어서, 민생과 경기 침체에 대한 선제적 대응을 넘어서, 한국 경제의 미래를 좌우해 나가는 아주 소중한 마중물이 된다"고 했다.

◇추경 효과 고작 0.1%포인트

연일 계속되는 당정청의 추경 공세에 전문가들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정부가 제출한 추경안이 현재의 하강 경기 흐름을 뒤바꾸기에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기재부 추산에 따르더라도 정부가 제출한 6조7000억원 규모의 추경은 성장률을 고작 0.1%포인트 끌어올리는 효과가 있다. 수출과 투자 부진으로 올해 성장률 전망치가 2%대 초반까지 뚝 떨어진 것을 감안하면 '깨진 독에 물 붓기' 같은 형국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10조원가량 추경을 전제하고 한국이 올해 2.6%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고, LG경제연구원은 6조~7조원대 추경으로 인한 성장률 제고 효과 0.1%포인트를 감안하고도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5%에서 2.3%로 낮췄다.

그런데도 '깨진 독' 고칠 생각은 안 하고 계속 '물'만 붓겠다는 청와대와 정부를 이해하기 힘들다는 의견이 많다. 이인실 서강대 교수(한국경제학회장)는 "지금 경기는 추경 몇 조원을 쓴다고 해서 돌릴 수 있는 하강 국면이 아니다"라며 "청와대와 여당이 '추경만 하면 문제가 해결되는데 야당이 안 도와줘서 못 한다'고 하는 건 국민을 볼모로 정치하는 것"이라고 했다.

추경이 통과된다고 해도 정부가 돈을 제대로 쓸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정부가 긴급하다고 추경을 편성해 놓고 제대로 집행을 못 해 남기는 일이 해마다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2017년 11조2000억원 규모 추경을 편성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세출 예산 중 7조1000억원을 미집행해 불용액이 발생했다. 3조9000억원의 추경을 편성한 지난해에도 세출 예산 371조원 중 8조6000억원을 쓰지 못하고 불용액 처리했다. 추경 예산 자체도 제대로 못 쓸 때가 많다. 지난해엔 청년 일자리 대책과 고용·산업 위기 지역 지원 명목으로 편성했던 추경 중 3000억원 이상을 해를 넘겨서도 다 쓰지 못했다.

신세돈 숙명여대 교수는 "지금처럼 돈이 돌지 않는 구조에서는 7조원이 아니라 70조원을 퍼붓는다고 해도 성장에 미치는 효과는 미미하다"며 "정부가 추경 효과를 0.1%포인트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0.01%포인트도 안 될 것"이라고 했다.

◇"정부가 진짜 '할 일'부터 해야"

국내외 경제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가 위기에 처한 것은 정부의 재정 지출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잘못된 경제 구조와 정부 정책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여기에 대외 통상 환경이 악화되자 한국 경제의 취약성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 때문에 IMF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등은 기회가 될 때마다 최저임금 인상 속도 조절, 노동시장의 유연안정성 강화, 생산성 제고, 규제 개혁 등을 주문하고 있지만, 문재인 정부는 지난 2년간 이런 점에서 거의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다.

따라서 추경을 하더라도 보조적인 수단으로 활용하고, 성장률 높이는 데 도움이 되는 사업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김태기 단국대 교수는 "청와대와 정부가 추경 집행해 달라고 얘기할 시간에 노동시장 개혁 등 당면한 문제부터 해결할 생각을 해야 한다"며 "미·중 무역 전쟁도 정부가 우리 기업한테 알아서 하라고만 할 게 아니라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조선일보 A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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