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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동물원]엄마사랑을 일깨워주는 낙타

사회 정지섭 기자
입력 2020.07.04 16:00

메르스 감염원으로 눈총받다 모성애 상징으로
징기스칸 무덤찾는데 새끼 희생됐다는 얘기도
쌍봉-단봉-혹없는 낙타까지 크기도 다양해
털가죽, 고기, 젖 인간에 내어주고 요즘은 반려동물로 인기

때와 장소는 인간 뿐 아니라 동물의 운명도 결정한다. 암수의 만남으로 잉태된 생명체가 언제 어디서 태어나느냐에 따라 삶의 뱡항이 결정된다. 요즘 서울대공원 동물원 사람들의 지극정성 돌봄을 받는 낙타 모녀는 그런 면에서 보면 썩 운이 좋다고 할 수 있다. 전국 부모들의 가슴에 빨간 카네이션이 꽂히던 5월 8일 어버이날, 서울대공원의 암컷 단봉낙타 ‘주스’도 엄마가 됐다. 남편인 ‘포도’와 사이에서 생긴 첫딸 ‘거봉’을 열 석 달 동안 고이 품다 세상 밖으로 내보낸 것이다.

/서울대공원 제공 지난 5월 8일. 단봉낙타 '주스'가 출산뒤 새끼와 몸을 맞대고 교감하고 있다.


‘주스’는 막 태어난 ‘거봉’이 일어날 수 있도록 꼬리를 물어주고, 젖도 물렸다. 초보답지 않은 엄마로서의 모습을 동물원 관계자들은 일거수 일투족 꼼꼼하게 기록해 보도자료로 배포했고, 유튜브 영상까지 올렸다. 코로나 사태로 생명의 의미가 남다르게 다가오는 시절인만큼 아기 낙타의 탄생은 뜻깊고 자랑스러운 경사였다. 하지만, 낙타의 출산이 꼭 5년전 이뤄졌다면? 분위기는 전혀 딴판이었을지도 모른다.

Barry Lewis/Flickr 중동과 아프리카 일대에 주로 살고 있는 단봉낙타


그 때도 지금처럼 전대미문의 역병 창궐로 전국은 패닉에 빠져있었다. 중동산(産) 감염병 메르스였다. 방역당국에 대한 불신과 나도 걸릴지 모른다른 두려움의 감정이 복합적으로 투사되면서 수난을 겪었던 동물은 메르스 감염원으로 지목된 낙타였다. 서울대공원의 낙타들도 당시 격리돼 메르스 검사를 받고 음성 판정을 받은 뒤에야 격리에서 해제되는 등 곤욕을 치렀다. 그런 상황에서 낙타가 또 한마리 출생했다면, 경축은커녕 메르스가 한풀 꺾일 때까지 출생 사실을 꼭꼭 숨겨야 했을지도 모른다.

모래바람을 묵묵히 견디며 사막을 걷는 이국적인 모습이 먼저 떠오르는 낙타는 ‘모성애’로도 기억돼야 하는 동물이다. 낙타 모녀를 돌보는 서울대공원 서완범 사육사가 전하는 목격담. 첫 출산한 초보엄마인데도 ‘주스’는 극성스러울 정도의 모성애를 보여준다. 천적이라곤 없는 동물원인데도 조금이라도 딸아이가 다칠까 자칫하면 몸으로 막아주고 품어주는 일이 다반사다. 갓 태어났을 때보다 새끼 옆에 바짝 붙어있는 빈도는 조금 줄어들었지만, 그 큼지막한 눈은 거의 하루종일 새끼만 주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미의 이런 헌신적인 모습은 제 새끼를 본체만체하며 ‘옆집 아저씨’보다도 못한 모습을 보이는 아비 ‘포도’와 선명하게 대비된다.

Ted/Flickr 몽골 고비 사막과 중앙아시아 초원 지대에 주로 사는 쌍봉낙타.


역사도 낙타의 헌신적인 모성애를 전한다. 몽골제국을 세운 징키스칸과 관련한 전승. 징기스칸이 죽은 뒤 후계자들은 무덤의 위치를 철저히 비밀에 부치기로 했다. 그래서 장례행렬을 목격한 사람들은 가차없이 살해했다. 장례식에 동원된 군인과 하인들도 모두 현장에서 죽였다. 하지만 훗날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 어느 누군가는 무덤의 위치를 알아야 했다. 그 ‘누군가’로 선택된 존재는 마침 새끼와 함께 있던 어미낙타였다. 어미 곁에 있던 새끼가 순식간에 사람들에게 끌려나와 잔혹하게 살해됐고, 사체가 징기스칸 옆에 묻혔다. 그 모든 일이 어미의 눈앞에서 벌어졌다.

Joseph L. Hartman 페루 마추픽추 근처에서 촬영한 라마.


그 뒤 징기스칸의 후계자들은 해마다 선왕에게 제사를 지내러 올 때 이 어미낙타를 끌고 왔다. 새끼를 잃은 장소에 다다른 어미 낙타가 기억을 떠올리며 구슬프게 울부짖기 시작했다. 이 어미 낙타의 울음이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내비게이션 안내 음성이었다. 이 어미낙타가 늙어죽으면서 징기스칸 무덤가로 가는 길도 영영 미스터리로 남게 됐다는 얘기. 한국외대 중앙아시아연구소 이평래 교수는 “몽골인들의 역사와 생활상을 감안하면 이 이야기는 사실(史實)일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왕릉의 위치 공개를 꺼리던 유목 민족의 성향, 낙타가 유목민 생활에서 차지하는 위상 등을 감안하면 충분히 존재했을 수 있는 얘기라는 것이다.

Paul Asman and Jill Lenoble/Flickr 남미 낙타중 하나인 과나코 무리가 이동하고 있다.


몽골 유목민들에게는 산고(産苦)에 지쳐 새끼를 돌보려 하지 않는 어미에게 전통 현악기인 마두금(馬頭琴)을 연주해 애잔한 선율로 모성본능을 일깨우는 풍습이 있다. 이평래 교수는 “몽골에서 예로부터 사람을 위해 짐을 실어나르고 가죽과 고기, 젖까지도 내어줘 인내와 희생의 상징으로 알려진 동물이 낙타”라고 했다. 11~13개월 임신기간을 거쳐, 통상 한 배에 한 마리, 간혹 쌍둥이·세쌍둥이를 낳는 낙타의 출산습관은 사람과도 빼닮았다.

Nestor Rojas/Flickr 혹이 없는 남미산 낙타 중의 하나인 비쿠나.


낙타과에는 크게 여섯 종이 있다. 징기스칸 무덤 얘기에 전해지는 낙타는 혹이 두 개인 쌍봉낙타로 몽골 고비사막과 중앙아시아 초원에 주로 산다. 서울대공원의 귀하신 몸이 된 낙타 모녀는 혹이 한 개인 단봉낙타로 북아프리카와 중동 일대에 산다. 오랫동안 아랍 상인들의 짐 운송수단으로 묵묵히 일해왔고, 코로나 창궐 때까지 중동 국가에선 사막 사파리를 나온 관광객들을 실어나르며 외화벌이 수단으로 활약했다. 이슬람권의 중요 축제일 중 하나인 이둘 아드하(희생제) 때는 양이나 소만큼은 아니지만, 제법 많이 도축된다.

/평창 마추픽추 홈페이지 강원도 평창군의 알파카 테마카페 '마추픽추'에서 볼 수 있는 귀여운 알파카들.


바다 건너 남아메리카 대륙으로 가면, 쌍봉·단봉낙타보다 덩치는 훨씬 작고 혹도 없어, 상대적으로 깜찍해보이는 4총사(라마·알파카·과나코·비쿠나)가 안데스 고원 등지에서 살고 있다. 이들 역시 오랜기간 인간에게 털과 고기, 젖을 내어주며 인류의 번성에 일조해왔다. 동물로부터 털과 가죽, 젖과 고기를 얻었던 인간들이 이제 동물을 반려대상으로 삼아 힐링을 얻는다. 낙타도 이 영역으로 빠르게 들어서고 있다.

복슬복슬한 털과 아담한 몸집, 만화캐릭터 같은 생김새를 지닌 알파카는 동물 테마 카페를 통해 제법 친숙해진 대표적인 ‘관상용 낙타’다. 강원도 평창의 알파카 테마카페 ‘마추픽추’의 전남표 대표의 얘기를 들어보면, ‘눈물겨운 모성애, 없다시피한 부성애’는 이 족속 전반적 특징인 것 같다. “새끼를 낳으면 어미가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돌봐요. 그런데 아비들은 어째 하나같이 거들떠보지도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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