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미경] 버커우 英 하원의장 사임… 230년만에 귀족 작위 못받을 수도

파리=손진석 특파원
입력 2019.09.11 03:00

의장 물러나면 귀족 작위 받아
버커우, 브렉시트 반대 입장… 보수당, 작위 안주는 방안 추진

하원의장, 정해진 임기 없어 퇴임후에도 소속당 복귀 못해

존 버커우 영국 하원 의장이 9일(현지 시각) "10월 31일 의장직을 내놓고 물러나겠다"고 선언했다. 2009년 의장에 당선된 지 10년 만이다. 버커우는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를 둘러싸고 의회가 극심한 혼란을 겪을 때 굵은 목소리로 "오더(order·질서), 오더"라고 외치는 모습으로 시선을 끌었다.

존 버커우(가운데) 영국 하원 의장이 9일(현지 시각) 런던 국회의사당에서 이미지 크게보기
존 버커우(가운데) 영국 하원 의장이 9일(현지 시각) 런던 국회의사당에서 "10월 31일 의장직을 내놓고 물러나겠다"며 사임 의사를 밝히고 있다. 2009년 의장에 당선된 지 10년 만에 물러나는 것이다. 보수당 출신인 버커우는 그동안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를 두고 의회가 혼란을 겪을 때마다 "오더(order·질서), 오더"라고 외쳐 시선을 끌었다. /신화 연합뉴스
영국 하원 의장은 당선되면 당적(黨籍)을 버려야 한다. 당파성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퇴임 이후에도 원래 몸담던 정당에 복귀할 수 없다. 하원 의장은 하원 토론 과정에서 발언권을 행사하는 의원을 지목한다. 하지만 스스로의 의견을 말하는 것은 봉쇄돼 있다. 각종 법안에 대해 의결할 때도 의장은 투표 권한이 없다. 다만 찬성과 반대표가 같을 때는 캐스팅 보트를 행사해 결정권을 갖는다. 의장이 캐스팅 보트를 행사하는 상황은 흔하지 않다. 2000년 이후로는 올해 4월 브렉시트 대안이 나올 때까지 끝장 투표를 할지 여부를 결정할 때가 유일했다. 당시 찬반이 각 310표씩 나오자 버커우는 반대표를 행사해 논의를 중단시켰다. 그러자 보수당에서는 버커우가 브렉시트에 반대한다며 비판했다. 9일 버커우가 사퇴를 발표하며 감격에 겨운 듯 울먹이자 야당 의원들은 일제히 기립 박수를 치면서 격려했지만, 버커우의 친정인 보수당에서는 브렉시트 강경파를 중심으로 상당수가 그대로 앉아 있었다.

영국 하원 의장은 정해진 임기가 없어 한번 의장이 되면 계속할 수 있다. 총선이 치러지고 의회가 개회할 때마다 의장의 연임 여부를 묻지만 반대 의사가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1801년 현대적 의회 체계가 갖춰진 이후 23명이 의장을 맡았다. 관례적으로 10년쯤 재임하면 스스로 물러나는 쪽을 선택한다.

하원 의장에서 물러나면 자동으로 크로스벤처(무당파) 상원 의원이 된다. 또한 귀족 지위를 부여받게 된다. 원래 자작 작위를 받았지만 1980년대부터는 한 단계 격하해 남작 작위를 받는다. 하지만 보수당은 버커우가 브렉시트를 반대하는 쪽으로 의사 진행을 했다며 귀족 지위를 주는 전통을 없애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영국 언론들은 "버커우가 230년 만에 처음으로 귀족 지위를 받지 못하는 하원 의장이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영국 하원 의장은 1980년대까지도 고전적인 전통 복장을 입었다. 가운을 입고 그 위로 코트식 외투와 비단 스타킹을 신고 어깨까지 내려오는 가발을 걸쳤다. 하지만 1992년 최초의 여성 의장이 된 베티 부스로이드는 처음으로 가발을 쓰지 않았다. 버커우는 평범한 정장에 검은색 얇은 가운만 걸치고 의장석에 앉았으며, 나머지 복장 전통은 모두 없앴다.


조선일보 A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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