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은 기자의 깨알클래식] 브람스를 잘 연주하려면 솥뚜껑 같은 손이 필요해

김경은 기자
입력 2019.09.11 03:00
"30대가 되면 브람스를 연주하고 싶어요. 브람스를 치려면 지금보단 몸무게가 더 나가야 할 것 같지만요."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지난해 첫 전국 리사이틀 투어를 앞두고 팬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 말이다. 피아노를 치는데 그걸 연주하는 사람의 몸무게가 57㎏이든 63㎏이든 무슨 상관일까. 그러나 피아니스트 김대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상관이 있다"고 했다. 김선욱과 손열음·문지영을 어릴 때부터 가르친 그는 "마흔 살까지 내 몸무게는 51㎏이었고 별명은 '젓가락'이었다. 그러나 가느다란 손가락이 아쉬워 열심히 살을 찌웠더니 손도 굵어졌다. 덩달아 소리도 바뀌더라"고 했다.

피아노를 칠 때 연주자의 몸무게가 '조건'이 되는 까닭은 피아노가 온몸으로 치는 악기여서다. 손끝으로 건반을 두드리기만 해도 쉽게 소리 낼 수 있지만, 연주자들이 원하는 아름다운 소리를 제대로 내려면 어깻죽지부터 손가락 끝까지 팔 전체의 힘으로 속도와 깊이를 면밀히 고려해 건반을 눌러야 한다. 가늘고 길게 뻗은 손가락을 문학 작품에서 흔히 '피아니스트의 손'이라 묘사하지만, 실제 연주자들 손이 솥뚜껑이나 스테이크처럼 두툼하고 손가락은 망치를 단 것처럼 딴딴한 건 그 때문이다.

굵고 두툼한 손이 인상적인 예프게니 키신. 열 손가락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 파워와 음표 하나도 허투루 넘기지 않는 정확성을 두루 갖췄다. /시드니 심포니
밴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선우예권도 "살이 찌면 소리의 질이 달라진다. 소리가 진동하는 폭이 커져 깊이감이 달라진다"고 했다. "연주만 들어도 그 사람 체격이 어떤지 금세 유추할 수 있어요." 중요한 건 손의 크기보다는 손바닥과 손등 사이 두께다. 그 폭이 유독 두꺼운 사람이 백건우다. 러시아의 천재 피아니스트 예프게니 키신도, 불곰을 닮은 당당한 체구의 데니스 마추예프도 건반을 덮을 듯 굵고 두꺼운 손을 가졌다. 그만큼 파워가 세다. 자그마한 몸집만큼 손도 작은 포르투갈 피아니스트 마리아 조앙 피레스는 오밀조밀한 표현이 필요한 모차르트 곡에서 정교한 아름다움을 뽐낸다.

천성이 여리고 섬세했던 쇼팽은 음악도 귀족들이 살롱에서 즐기던 작고 맑은 선율을 주로 썼다. 반면 체구 자체가 육중했던 브람스는 대개 화음이 꽉 차고 확장돼 있다. 브람스 음악을 들을 때 무게감이 느껴지는 이유다. "그래서 가늘고 섬세한 부분은 그에 맞는 몸으로, 웅장한 부분은 거대한 몸으로 때마다 바꿀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보 같은 생각도 해본다"고 김 교수는 말했다.


조선일보 A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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