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철의 아웃룩] 일본 우익단체에 망신당한 가짜 사진

김기철 문화부 학술전문기자
입력 2019.09.11 03:14

[부산 일제강제동원역사관 가보니…]
일본인 사진과 연출한 낙서를 조선인 징용 피해 사례로 잘못 써
미디어의 허술한 취재, 연구자의 게으름, 활동가의 욕심이 克日 방해
일본만 때리면 눈감아주는 침묵의 카르텔이 '우리 안의 敵'

김기철 문화부 학술전문기자
지난 5일 부산 대연동 언덕에 있는 국립 일제강제동원역사관을 찾았다. 유엔 기념공원과 남구 일대가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곳이다. 2만3000평 터에 7층 규모 역사관은 2015년12월 세금 522억원을 들여 문을 열었다.

이 역사관은 2017년 말 일본의 한 민간단체가 올린 영상 때문에 구설수에 올랐다. 조선인 강제 동원 피해자라고 전시한 사진이 알고 보니 일본인 사진이었다는 것이다. 영상에 출연한 일본인 사진작가는 1961년 규슈 치쿠호(筑豊) 탄광에서 한 가난한 일본인 광부가 드러누워 석탄 캐는 장면을 찍었다며 필름 원본까지 보여줬다.

야외 추모탑에 새겨진 뼈만 남은 노동자들 사진도 문제가 됐다. 조선인 징용 피해자가 아니라 1926년 홋카이도 개척 과정에서 '노예노동'에 시달린 일본인들이었기 때문이다. 이 사진이 실린 1926년 9월 9일자 아사히가와신문까지 제시했다.

역사관은 부랴부랴 전시물을 교체했다. 역사관 주영민 학예연구부장은 "추모탑 돌판에 새겨진 사진은 예산을 마련하는 데 시간이 걸려 작년에야 교체했다"고 했다. 2015년 7월 군함도 등 '메이지 산업혁명유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올리는 데 앞장섰던 이 우익단체가 만든 영상 제목은 '누가 역사를 날조하는가'. 국립박물관이 개관 2년이 되도록 '가짜 사진'을 가려내지 못해 '날조범'으로 망신당한 것이다.

◇정부 KTV도 '강제 동원 가짜 사진' 망신

문제는 이 '가짜 사진'들이 정부가 만든 영상에서 일제 만행을 보여주는 대표적 증거로 계속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달 말 문화체육관광부 소속 'KTV 국민방송'은 '일본에 의해 자행된 강제징용'이란 제목의 4분짜리 영상을 내보냈다. 영어 자막까지 넣은 이 영상엔 강제동원역사관에 전시했다 철거한 '가짜 사진'들이 나온다. 1926년 아사히가와신문에 실린 일본인 노동자 사진은 올해 초등학교 6학년 사회과 국정교과서에 조선인 피해자 사진으로 실렸다.

사진1~3이미지 크게보기
①문체부 소속 KTV가 최근 내보낸 '강제 동원' 영상. 조선인 강제 동원 피해자로 소개됐으나 1926년 홋카이도에서 노예 노동에 시달린 일본인으로 드러났다. ②한 TV 다큐멘터리에서 조선인 징용 피해자가 썼다고 소개한 낙서. 1965년 조총련 산하단체가 영화 촬영 도중 조작한 낙서로 확인됐다. ③일본 우익 단체 '산업유산국민회의'가 올린 영상에 나온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 추모탑. 아래 징용 피해자로 소개한 사진은 일본인들로 드러나 지난해 교체됐다.
강제 동원 사례로 잘못 알려진 자료는 또 있다. 징용 피해자가 탄광 합숙소 벽에 썼다는 '어머니 보고 싶어' '배가 고파요' 벽 사진이다. 이 낙서는 일제 만행과는 무관한 '조작' 사진이다. 조총련 산하단체가 1965년 영화 '을사년의 매국노'를 촬영하면서 연출한 것이다. 후쿠오카 호슈(豊州) 탄광촌 합숙소 촬영 중 한 스태프가 벽에 낙서를 새겼다고 한다. 이 사실도 일본 니시닛폰(西日本)신문이 2000년 취재를 통해 밝혀냈다. 이 사진이 조작됐다는 사실은 국내에도 10여년 전 알려졌으나 여전히 자주 눈에 띈다. 미디어의 허술한 취재와 검증도 가짜 사진 범람을 조장한다. 보도·다큐멘터리 등 방송은 물론 본지를 포함, 각종 미디어에 '가짜 사진'이 실렸다.

◇근거 부족한 '마구잡이'주장까지

'가짜 사진'만이 문제가 아니다. 정부와 학계는 '일제 만행을 비판한다'며 근거가 부족하거나 무리한 주장을 내놓는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지난주 국사편찬위원회·한국학중앙연구원과 함께 '일제 식민지 피해 실태와 과제' 심포지엄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일제가 강제 동원 조선인의 성욕을 억제하기 위해 주사를 놓았다고 한다'는 발표가 나왔다. 발표자에게 근거를 물었더니 2006년 발간된 강제 동원 피해자 증언집 가운데 한 명이 그런 증언을 남긴 게 전부였다. '성욕 억제 주사설'은 교차 확인을 꼼꼼하게 거쳐야 할 민감한 사안이다. 정부 주관 심포지엄에서 어떻게 이런 주장이 검증 없이 거론될 수 있나.

부산의 일제강제동원역사관도 마찬가지다. 역사관은 올해 야외 계단을 정비하면서 안내문을 붙였다. '일본 제국주의는 강제로 동원된 조선인 남자들을 상대로 신체검사를 벌이고, 일본 해군 특경대가 일본군 성 노예 조달 책임을 맡아 거리에서 마구잡이로 여성을 체포…위안소에 넣었다.' 조선인 위안부 피해자들이 군인에게 거리에서 사냥 당하듯 붙잡혀간 것으로 오인할 만하다. 하지만 해군 특경대가 '거리 사냥'을 했다는 곳은 일본군 점령 지역이던 네덜란드령 서(西)보르네오다. 식민지 조선에서 군인이 위안부를 끌어갔다는 자료는 거의 없다. 물론 군·경찰이 끌고 가지 않았다는 게 강제 동원을 부정하는 증거가 될 순 없다. 학계에선 인신매매든 취업 사기든 피해자들의 의지에 반해 끌려갔다면 강제 동원으로 본다.

일제강제동원역사관은 또 '식민지의 젊은 여성을 위안소에 감금하고…동원된 인원은 40만명 이상으로 추정된다'고 썼다. 학계에선 위안부 피해자를 최대 '20만명'으로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동북아역사재단은 한국어·영어 홈페이지에서 위안부 숫자를 8만~20만명으로 소개하고 있다. 일본인과 중국인·동남아인까지 합한 숫자다. 그런데 강제동원역사관은 조선인 위안부 피해자가 40만명 이상인 것처럼 오인(誤認)할 수 있게 썼다.

총리 산하 강제동원피해조사위원회에서 11년간 조사과장으로 일한 정혜경 박사는 최근 낸 책 '일본의 아시아·태평양 전쟁과 조선인 강제 동원'에서 이렇게 비판했다. '해외 학계에선 한국 학자들이 연구자인지 운동가인지 구분이 어렵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다. 한국 학자들이 균형감 있는 연구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는 "사실을 꼼꼼하게 확인하지 않는 연구자의 게으름과 일제 만행만 부각하는 활동가들의 의욕이 맞물리면서 '가짜 사진'과 '통계 부풀리기'가 사라지지 않는다"고 했다.

일제 피해만 부각하면 그만이라는 안이한 자세는 일본의 과거사 부정론자들에게 역이용당하기 좋다. 역사를 검증할 때는 사소한 것이라도 허위(虛僞)를 용납해선 안 된다. 일본만 때리면 눈감아주는 침묵의 카르텔은 극일(克日)을 가로막는 '우리 안의 적(敵)'이다.


조선일보 A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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