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법무장관 對 검찰총장

정권현 논설위원
입력 2019.09.11 03:16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지요"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이 나온 2003년 3월 초 '전국 평검사와의 대화'에는 강금실 법무장관이 배석하고 있었다. 당시 검찰총장보다 사법시험 기수가 한참 아래인 데다 판사 출신인 강 장관 기용은 '검찰 개혁'을 위한 파격 인사로 받아들여졌다. 법무장관에는 검찰총장보다 사법시험 기수가 높은 인사를 임명한다는 암묵적 룰이 깨진 것이 이때가 처음이다. 강 장관은 '검란(檢亂)'이라는 이름의 반발만 불렀다. 대검 중수부 폐지를 밀어붙이자 송광수 당시 검찰총장은 "중수부를 없애려거든 먼저 내 목을 치라"고 치받았다.

▶수사지휘권 문제를 놓고 장관과 총장이 맞붙은 적도 있다. 2005년 천정배 장관은 강정구 동국대 교수를 불구속 수사하라며 검찰청법8조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발동된 지휘권에 당시 김종빈 총장은 사표를 던지며 맞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도 장관·총장은 대부분 불편한 관계였다. 2013년 '국정원 댓글사건' 처리를 둘러싸고 황교안 장관과 채동욱 총장의 갈등이 대표적이다.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은 둘 다 장관급이다. 법무장관이 인사권을 갖고 검찰을 지휘 감독하는 상급자이지만 그 존재감은 검찰총장에 비해선 미미하다. 그래서 관계가 미묘하다. 장관은 구체적인 사건 수사에 대해서는 검찰총장을 통해서만 '수사지휘권'을 행사할 수 있다. 정권의 개입을 막고 검찰 업무의 독립성을 보장하자는 취지다. 법무장관이 청와대의 수사지휘권 발동 요청을 거부한 경우도 있다. 2002년 송정호 장관은 김대중 대통령 아들을 불구속 수사하도록 지휘권을 발동하라는 청와대 요청을 거절했다.

▶조국 법무장관이 취임 일성으로 "검찰 인사권 행사"를 언급하자 즉각 보복 인사설이 돌고 있다고 한다. 자신과 가족을 수사한 검사들을 좌천시키는 인사안을 만들고 있다는 소문이다. 형사 피의자가 법무장관에 취임하고 검찰이 이런 법무장관을 수사하는 일이 생길 것이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이 미묘한 관계라고는 하지만 이것은 한국 법조 역사에 남을 황당한 사태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민심(民心)이란 호랑이 등에 올라타 있고, 조국 법무장관은 대통령 등에 올라타 있다. 윤 총장은 역대 검찰총장 중에서 가장 힘이 세다. 수사팀은 전원 '윤석열 사단'이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하지만 조국만큼 대통령의 비호를 받는 사람도 없었다. '장관 대(對) 총장'의 결말을 지켜봐야 하는 국민도 피곤하다.


조선일보 A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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