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석하의 런던이야기] [7] 아무리 작고, 아무리 외진 섬이라도…

권석하 재영 칼럼니스트
입력 2019.09.11 03:10
아무리 작고 외진 곳이라도 절대 소홀히 하지 않는 영국의 영토 수호 의지와 단호한 행동을 보여준 사례는 1982년 4월 2일 일어난 포클랜드전쟁이다. 영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영토를 침범한 아르헨티나군에 맞서기 위해 단 3일 만에 전광석화 같은 속도로 정책검토·결정·출병까지 해냈다. 그러고는 1만2000㎞ 바다를 밤낮을 쉬지 않고 달려 18일 만에 도착, 71일 만에 아르헨티나의 무조건 항복을 받아냈다.

포클랜드전쟁 기념비. /Alex Petrenko/위키피디아
전쟁 전 영국은 '영국병(病)'의 한가운데 있었다. 대처 총리는 전임 노동당 집권 5년 동안 깊어진 영국병을 치유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경제는 거대 국유기업들의 계속되는 천문학적인 적자와 함께 통제 불능 상태로 급격히 늘어나던 사회보장제도 부담으로 난파 직전이었다. 전쟁은 그런 상황에서 결정됐다. 북대서양과 남대서양을 모두 종단해야 갈 수 있는, 크기는 제주도 6.5배인 곳에 겨우 1847명이 사는, 영국 언론 표현에 의하면 '부는 바람밖에 없는(only windswept)' 작은 섬을 되찾기 위해….

아르헨티나의 레오폴도 갈티에리 장군의 군사독재 정권은 인기 하락의 궁지를 벗어날 묘수로 영국과 오랜 영유권 분쟁을 겪고 있는 '말비나스 군도(Islas Malvinas·포클랜드의 다른 이름)'를 되찾고자 전군을 동원해 정말 죽자 살자 매달렸다.

영국에선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전쟁이라는 패배 분위기가 널리 퍼졌다. 언론들도 여러 조건을 봤을 때 대처가 절대 파병을 못 하고 파병하더라도 절대 이기지 못한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결과는 우리가 아는 대로다. 모든 면에서 절대적으로 열세라던 영국군의 일방적인 승리였다. 영국이 이긴 이유와 조건, 변수 등에 대해선 많은 얘기가 있을 것이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이 전쟁을 통해 영국은 나라를 하나로 묶을 수 있었고, 국가적 위기를 반전시킬 기회를 잡았다는 점이다. 대처의 신속하고 단호한 결단은 현대 영국 역사상 가장 현명하고 위대한 결단으로 일컬어진다.

최근 한국 언론에 서해 함박도가 북한 땅이냐 남한 땅이냐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대처였으면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 정말 궁금하다.


조선일보 A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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