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民心 꺾은 정권, 국민 조롱하며 자축

입력 2019.09.11 03:20
10일 국무회의에 처음 출석하는 조국 법무부 장관을 청와대 비서관들이 응원 구호를 외치면서 맞았다고 한다. 이날 국무회의 장소는 조 장관 딸이 허위로 인턴 증명서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었다. 조 장관의 임명 강행에 분노한 민심을 조롱하는 행태다. 일본 수출 규제에 맞서 소재·부품 기술을 지원하기 위해 장소를 선택했다는 변명을 곧이곧대로 들을 국민이 몇이나 되겠나. 동양대가 조 장관 딸 표창장 위조 의혹에 대한 진상조사 결과 발표를 조 장관 임명 직후 취소한 것도 이런 막무가내 정권을 두려워하기 때문일 것이다.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이 조 장관 임명을 강행한 이유가 "굉장한 원리원칙자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조 장관 아내는 이미 기소됐고 장관 본인도 증거 인멸 혐의가 확인됐으며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의혹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그런데도 위법 여부가 확인되지 않아 임명할 수밖에 없었고, 그게 원리원칙에 맞는다는 것이다. 2000년 인사청문회법이 제정된 이후 낙마한 수십명의 공직 후보자 중 위법 여부가 확인된 경우는 극소수다. 역대 대통령들이 성난 민심을 수용해 후보들을 사퇴시킨 것이 무원칙한 결정이었다는 얘기인가. 문 정부 들어 임명 과정에서 낙마한 후보들도 제법 되는데 이들은 모두 위법이 확인됐나. 조 장관은 이미 거짓말한 것이 드러났다. 법을 지키는 법무장관이 거짓말하는 사람이라는 이 어이없는 경우가 원리원칙인가. 국민을 바보로 알고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민주당 원내대표는 "내가 아는 조 장관은 대의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품성을 가진 사람"이라며 "개인적 모욕과 모멸을 견뎌낸 것은 (검찰 개혁이라는) 국민의 명령을 감당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이번 검증 과정에서 조 장관은 남의 잘못은 가혹하게 비난하고서 자신은 뒤에서 그와 똑같은 잘못을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저지르는 사람이란 사실이 드러났다. 이것은 '대의를 위해 헌신하는 품성'이 아니라 '양심 마비'다. 원내대표는 또 "조 장관이 법무장관 업무를 잘 수행하고 그다음 총선에 출마했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반드시 그렇게 해서 가짜 여론조사 아닌 진짜 민심을 확인해 보기 바란다.

'정치검찰 퇴장'을 외치며 조 장관 옹호에 나섰던 소설가는 "검찰 좋은 시절 다 지나갔다"와 같은 임명 축하 글을 수십개 공유했고, 친여 방송인은 "검찰이 쏜 네이팜탄 뚫고 법무장관 취임한 조국 위해 폭탄주 한 잔 말겠다"고 했다. 이른바 개념 연예인을 비롯한 정권 응원단의 승전가가 여기저기서 들려올 모양이다.

민심을 정면으로 거스른 대통령 결정에 국민이 화나고 상심했는데 정권 주변 분위기는 딴판이다. 대통령과 지지 세력들만 똘똘 뭉쳐 정권 마음대로 밀어붙인 것이 그렇게 자랑스럽나. 적을 꺾고 승리해 기쁘고 즐거운가. 이제 선거법만 강제로 바꾸면 자신들 세상이라고 믿을 것이다.


조선일보 A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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