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고전 속 설렘 재발견···연극 '오만과 편견'

뉴시스
입력 2019.09.10 16:41
연극 '오만과 편견'
고전의 향기와 현대적 위트 그리고 설렘까지, 10월20일까지 충무아트센터 중극장블랙에서 국내 초연하는 연극 '오만과 편견'은 3박자를 고루 갖춘 작품이다.

'로맨틱 코미디의 원형'을 만들었다는 평을 듣는 작가 제인 오스틴(1775~1817)의 19세기 영국 배경 원작을 빛나는 아이디어와 각색으로 재발견, 2019년 대한민국과 접점을 만들어 놓는다.

고전 부활은 앙상블을 이뤄야 가능하다. 특히 소설 출판 200주년을 기념, 배우 겸 작가 조애너 틴시가 각색해 2014년 9월 영국의 솔즈베리 극장에서 첫 선을 보인 이번 연극은 나무 두 그루로 숲을 만드는 마법 같은 순간을 선사한다.

2인극으로, 단 두 명의 배우가 모든 배역을 빚어낸다. '엘리자베스'(리지)와 '다아시'를 중심으로 베넷 가문 식구들, 다아시의 친구와 어린 여동생, 군인 등 성별과 연령, 직업 등 각기 다른 21개 캐릭터를 소화한다. 편견에 사로잡힌 엘리자베스와 사랑 때문에 야반도주를 하고 집안을 발칵 뒤집어놓는 엘리자베스의 철부지 여동생 리디아 등을 연기하는 'A1'(김지현·정운선), 잘생기고 부유한 상류층 신사지만, 첫 만남에서 오만하고 무례한 태도 때문에 엘리자베스에게 거절당하는 주인공 다아시, 리디아와 야반도주를 하는 군인 '위컴' 등을 연기하는 'A2'(이동하·윤나무·이형훈)를 맡은 배우들은 대학로에서 다진 내공으로, 시시각각 얼굴이 변하는 변검술 같은 캐릭터 연기를 선보인다.

이번 '오만과 편견' 국내 초연은 오리지널 프로덕션의 연출 애비게일 앤더슨과 박소영 연출이 협업했다. 박 연출은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계셔' '키다리 아저씨', 연극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음악극 '태일' 등으로 주목 받았다. 과장되지 않은 담백한 감성으로 감동을 안기는 연출가다.

다양한 캐릭터 연기를 위해 쉬지 않고 움직이는 배우들을 위해 공연장 내 온도는 낮은 편인데도, 배우들은 연신 땀을 흘린다. 관객들 눈에서는 땀 대신 눈물이 흐른다. 빤할 수 있지만, 사랑의 시작에 가슴 벅찼던 기억을 안고 있는 이들이라면 공유할 방울들이다.

이야기는 반복되지만, 감정은 새롭다. 경험치, 감각,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저마다 가져가고 공유하는 부분이 다르니, 감동은 저마다 다른 모양으로 만들어진다.

또 특기할 만한 점은 연극이 의도했든 안 했든 19세기 영국의 결혼관, 사회상을 풍자한 원작 소설처럼 21세기 결혼관, 사회상도 풍자한다는 것이다.

과묵하지만 다정한 아버지와 억척스러운 어머니 사이에서 다섯 자매들과 부대끼며 살아온 엘리자베스는 결혼을 부와 신분의 계단을 올라가는 수단으로 삼을 수 있음에도,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는다.

여전히 돈이 결혼 이유의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하는 사회에서, 이 이야기는 신데렐라 스토리의 표본이 아니다. 수동적 낭만이 아닌, 능동적 감상과 깨달음을 통한 사랑의 결실이 얼마나 단단해질 수 있는지 보여준다.

사랑을 열망하는 두 남녀가 티격태격 하다가 사랑에 빠지는 스크루볼 코미디를 넘어, 자신이 성숙해졌을 때 상대방을 진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인생서이기도 하다.

때론 어떤 작품은 원작을 읽지 않고 온 것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게 한다. 연극 '오만과 편견'은 아우라에 휘둘리지 않고 원작의 정수를 보여주는 동시에, 호기심으로 읽고 싶게 만드는 기분 좋은 의무감을 선사한다.
공시지가

오늘의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