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시간 50분 사투 끝에… 나달, 메이저대회 19번째 키스

양지혜 기자
입력 2019.09.10 03:00

10살 젊은 메드베데프 상대… 3대2로 꺾고 US오픈 우승
메이저 대회 우승 기록 페더러와 1회 차이로 추격
악착같은 플레이로 온몸 통증… "부상으로 끝날것" 우려에도 생존

라파엘 나달(33·스페인·세계2위)의 테니스는 처절하다. 공을 놓치면 세상이 무너지기라도 할 것처럼 악착같이 쫓아간다. 그래서 아프다. 무릎과 어깨, 팔꿈치와 팔뚝, 발바닥과 발꿈치, 허벅지와 고관절에 통증을 달고 산다. 10여년 전부터 "나달은 부상으로 곧 사그라들 것"이라는 우려가 끊임없이 나왔다. 그럼에도 나달의 테니스는 현재 진행형이다.

짜릿하고 달콤한 우승의 맛은 변함이 없다. 라파엘 나달이 9일(한국 시각) US오픈 남자 단식 우승 트로피에 입맞추는 모습. 손가락마다 감은 테이핑이 처절했던 경기를 보여준다. 10월에 결혼하는 나달은 개인 통산 19번째 메이저 대회 우승 고지에 올랐다. /AFP연합뉴스
그는 9일(한국 시각) 미국 뉴욕에서 열린 US오픈 남자 단식 결승에서 다닐 메드베데프(23·러시아·5위)를 3대2(7-5 6-3 5-7 4-6 6-4)로 꺾고 우승했다. 상금은 385만달러(약 46억원). 개인 통산 4번째 US오픈 우승이자 19번째 메이저 대회 트로피다.

19번째 메이저 우승한 나달

두 남자는 칼 대신 라켓을 들고 4시간 50분을 싸웠다. 나달이 1·2세트를 연달아 따내며 쉽게 끝내는 듯했지만, 3세트부터 '모 아니면 도' 전략을 들고 나온 메드베데프로 인해 분위기가 바뀌었다. 메드베데프는 큰 키(198㎝)를 활용한 강서브와 코트라인 경계를 아찔하게 오가는 샷으로 나달을 흔든 끝에 승부를 5세트까지 끌고 갔다.

메드베데프는 메이저 대회 결승을 처음 겪는 선수답지 않게 노련하고 과감했다. 여름 하드코트 시즌 투어 4연속 결승을 뛰느라 체력이 바닥났고 왼쪽 허벅지를 절뚝이면서도 눈에선 독기가 번뜩였다. 1990년대생 최초로 그랜드슬램 우승을 해내겠다는 의지가 불탔다.

하지만 스페인 남자가 더 지독했다. 상대보다 열 살이 많은 나달은 신음하고 울부짖으면서 공을 때렸다. 경기장을 메운 관중 2만4000여명은 "라파"를 연호했다. 결국 메드베데프가 친 리턴샷이 아웃 라인을 넘어가면서 경기가 끝났고, 나달은 그대로 코트에 드러누워 흐느꼈다.

나달은 "오늘은 내 테니스 인생에서 가장 감정이 북받치는 날이다.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 경기를 했다"면서 "오늘 받은 트로피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고 기뻐했다. 대회 기간 거친 태도를 보여 관중의 야유를 받았던 메드베데프는 "세트 스코어 0―2로 밀렸을 땐 경기 소감을 뭐라고 말할지 고민했다"고 농담하면서 "저도 사람이라 실수를 했다"고 솔직하게 사과해 격려 박수를 받았다.

새신랑의 피땀 어린 프러포즈

이날 우승으로 나달은 남자 테니스 사상 최다 메이저 우승 신기록 수립에 성큼 다가섰다. 현재 최다 기록은 로저 페더러(38·스위스·3위)가 세운 20회. 2010년 초만 해도 페더러가 16회, 나달은 6회였는데 격차를 급격히 줄였다. '흙신' 나달이 프랑스오픈에서 최소 2~3회 더 우승한다면 페더러의 기록을 넘어서게 된다.

라파엘 나달의 여자 친구 마리아 프란시스카 페렐로(오른쪽)와 여동생이 영광의 순간을 함께했다. /AFP연합뉴스
나달은 2001년 프로에 데뷔했다. 투어 우승을 84번 했고 테니스 상금으로만 1억1517만8858달러(약 1375억원)을 벌었다. 이룰 것 다 이뤘지만 그는 여전히 절박하게 테니스를 친다. 흥 많고 즉흥적인 스페인 사람 이미지와 다르게 나달은 상대를 철저하게 분석해 훈련하기로 유명하다. 이번 US오픈 3회전을 통과한 뒤 상대였던 정현(23)의 최근 성적과 부상 경력 등을 인터뷰에서 술술 열거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그는 상대 세계 랭킹이 몇 위든, 국적이 어디이든 집요하게 연구한다. 패배한 날엔 고향 마요르카에 직접 세운 테니스 아카데미 영상 분석실에 틀어박혀 경기를 수십 번 복기한다. 그 결과 초창기 약점으로 꼽히던 서브와 백핸드, 발리 실력이 30대 들어 훌쩍 늘었다.

"테니스를 하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승리의 쾌감을 위해 라켓을 잡는다. 패배하면 죽고 싶을 만큼 괴롭고, 이기면 미칠 듯이 짜릿하다.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 승리하는 그 순간을 위해 나는 코트 위에 내 모든 것을 바친다." 황소의 에너지를 닮은 나달은 다음 달 고향에서 결혼한다. 페더러와 노바크 조코비치는 이미 결혼해 아버지가 됐지만 부모의 이혼으로 상처가 컸던 나달은 결혼에 신중했다. 그는 피땀으로 쟁취한 US오픈 우승컵으로 14년간 곁을 지킨 여자 친구에게 프러포즈했다.


조선일보 A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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