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청년 울리는 '직고용' 떼쓰기

최원우 사회정책부 기자
입력 2019.09.10 03:14
최원우 사회정책부 기자
지난 5일 서울 김포공항 국제선에서 항공산업 채용 박람회가 열렸다. 정부 지원으로 한국공항공사와 인천공항공사, 8개 국적항공사 등 81개 항공 관련 기업이 참여해 1500명 청년 채용을 돕는 행사였다. 아침부터 취업 정보를 알아보러 온 학생과 취준생 수백명이 몰렸다. 그런데 행사 시작과 거의 동시에 '자회사 해체·직고용 쟁취'라고 적힌 빨간 조끼를 입은 사람 40여명이 우르르 몰려왔다. 이들은 청년들 보는 앞에서 '공항 이윤 창출은 자회사와 비정규직! 성과급은 공항공사!' '성과급 차등 중단하고 똑같이 배분하라!'고 적힌 현수막을 펼쳤다.

김포공항 등에서 청소·경비 업무를 담당하는 한국공항공사 자회사 KAC 공항서비스 노조원들이었다. 정부의 '비정규직 제로(0)화' 정책으로 자회사 정규직으로 전환된 이들이다. 이들은 공항에서 일하고 싶다고 찾아온 청년들 앞에서 "처우를 더 개선해 달라" "아예 공항공사 정규직으로 채용해 달라"고 주장했다. 공항공사는 공기업 중에서도 인기가 높아 경쟁이 치열하다. 경쟁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싶어 먼 길 행사장을 찾은 청년들이다. 그 앞에서 정부 정책에 힘입어 사실상 '무혈입성'한 비정규직 출신들이 "우리도 직고용 해달라"고 한 것이다. 이들은 최근 96%에 달하는 찬성률로 파업을 결의하기까지 했다.

이번 정부에선 이런 일이 곳곳에서 벌어진다. 자회사 소속인 고속열차 KTX와 SRT 객실 승무원들은 "본사가 직고용 해달라"면서 추석 연휴 기간 파업을 예고했다. 귀성길 국민을 볼모 삼았다는 지적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인천공항에서는 비정규 노조가 공항 한복판에 천막을 쳐놓고 "조건 없이 정규직 전환해 달라"고 농성하고 있다. 서울교통공사에선 처음부터 정규직 전환을 노린 임직원 지인들이 꼼수로 비정규직으로 들어갔다는 채용 비리 의혹이 제기됐다.

청년들은 분노를 넘어 체념하고 있었다. 경기 남양주에서 올라왔다는 청년은 "거스를 수 없는 정부 정책인데 어쩌겠나"며 씁쓸해했고, 다른 청년은 "처음부터 경쟁을 통해 온 것도 아닌데 정규직 처우를 요구하다니 너무하다"며 "댓글로 신세 한탄하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

일자리 정부를 표방했던 문재인 정부다. 청년 일자리도 늘리고, 비정규직 문제도 해결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비정규직들은 정규직 전환에 만족하지 않고 처우나 복지를 자꾸 더 올려달라고 한다. 그 요구를 들어주는 만큼 기업 재정 부담은 커진다. 당장 적자가 급증하는데, 위에서 윽박지른다고 무턱대고 일자리를 늘릴 순 없는 법이다. 결국 이미 고용된 비정규직은 기득권층으로 편입됐고, 대신 청년들을 받아들이는 취업의 문은 더 좁아졌다. 청년들 한숨만 커지고 있다.


조선일보 A26면
헬스조선 상례서비스

오늘의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