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남의 시로 가꾸는 정원] [79] 아침 이슬

장석남 시인·한양여대 교수
입력 2019.09.09 03:08

아침 이슬

지난밤 무슨 생각을 굴리고 굴려
아침 풀잎 위에
이렇듯 영롱한 한 방울의 은유로 태어났을까
고뇌였을까, 별빛 같은
슬픔의 살이며 뼈인 생명 한 알
누가 이리도 둥근 것을 낳았을까
고통은 원래 부드럽고 차가운 것은 아닐까
사랑은
짧은 절정, 숨소리 하나 스미지 못하는
순간의 보석
밤새 홀로 걸어와
무슨 말을 전하려고
아침 풀잎 위에
이렇듯 맑고 위태한 시간을 머금고 있는가

문정희(1948~ )

초가을의 등굣길에서는 고무신의 발과 발목이 다 젖어 찌걱찌걱 소리가 났습니다. 오솔길가의 풀잎 이슬 때문이었습니다만 굳이 까닭을 더 대자면 가난 때문이기도 했지요. 그렇긴 했어도 눈높이 저편 언덕 위 풀잎들은 '밤새 홀로' '걸어온' 이슬방울의 무게로 둥그렇게 반원으로 휘어서 한껏 맑고 예뻤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그것은 질문이기도 했지요. 답을 요구하지는 않는 질문, 답을 추궁하지 않는 질문이었습니다. 그 어여쁨과 그에 어린 안타까움에 대하여 무슨 말을 덧붙일 수 있을까요. 고통스럽게 견딘 여름의 '은유'일지 모릅니다.

'영롱한' '순간의 보석' 안에 제 이름자를 적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알곡을 익히려 내리는 햇빛 한 자락이 한눈 한번 파는 것만으로도 슬며시 집어 갈 이름자들. 하나 현현(顯現)만으로도 제 몫을 다한 '아침 이슬'입니다. 오는 추석 아침 성묘길의 이슬방울에 눈이슬 보태 선고(先考)의 모습을 얹어보겠습니다.



조선일보 A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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