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벅머리 英 총리는 '의도된' 패션 테러리스트?

최보윤 기자
입력 2019.08.26 03:00

[보리스 존슨 스타일]

욱여넣은 셔츠·늘어진 타이… 엉망진창 외모에 속지 말 것!
英 FT·美 NYT 등에서 주목 "대중과의 거리감 좁히려는 고도의 '정치적 전략'일 뿐"
우직하게 일에만 매진하는 '존슨 스타일' 노렸다는 분석도

위부터 2016년 지지자들과 만나 맥주잔을 기울이는 보리스 존슨. 2014년 권투학원에서 한방 날리는 모습. 지난 주말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앞에서 협탁에 발을 올린 존슨. /AFP 연합뉴스
헝클어진 머리, 대충 욱여넣은 셔츠, 허리 밑으로 축 늘어진 넥타이, 뒤집어 신은 양말, 짝 안 맞는 장갑…. 2008년부터 2016년까지 런던 시장을 지낸 뒤 지난 7월 영국 총리로 취임한 보리스 존슨의 스타일을 모으면 대체로 이렇다. '지저분하고, 난장판인 데다, 엉망진창'이란 수식어도 빠지지 않는다.

특히나 인근 정치 리더들과 비교하면 더욱 난감해진다. 완벽히 재단된 네이비 슈트로 '패션은 프랑스'를 다시 알리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나, 위트 있는 양말 패션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더할 나위 없는 패션 창의성을 드러내는 캐나다의 쥐스탱 트뤼도 총리 등이 대표적. 전임 테리사 메이 역시 섹시한 하이힐과 화려한 스카프 패션을 통해 '당당한 여성 파워'를 재해석하는 등 이전 영국 총리들은 영국 슈트의 산실인 새빌 로(savile row)에서 걸어나온 듯 단정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세계 유력 매체들이 이 남자에게 내리는 평가는 '패션 테러리스트'들을 향한 것들과는 사뭇 달라 보인다. 존슨의 '패션 바보' 스타일은 고도의 정치적 전략으로, 일부러 못 입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는 것이다. 예를들어 하와이안 쇼트 팬츠에 늘어진 티셔츠의 '조깅룩'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늘씬한 남성들이 판치는 세상에서 넉넉한 몸매로 대조적이고 새로운 남성상을 선보인다"고 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그의 꾀죄죄한 외모에 속지 말 것. 헝클어진 스타일로 대중을 파고드는 트로이 목마형 리더십"이라고 주장했고, 뉴욕타임스는 "바보 같아 보이는 스타일의 급부상! 리더십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보리스 존슨 스타일"이라며 그의 패션 전략을 해부했다. 전형적인 엘리트에, '노딜 브렉시트'를 고수하는 보수당의 리더로서 특히 젊은 층에 얻기 힘든 '친화력'이란 매력을 엉망진창 패션 스타일로 얻어낸다는 것이다. 덕분에 영국에선 'shambolic chic(엉망진창 시크)'란 용어까지 생겼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그의 이러한 스타일이 "성공가도를 달리는 비결"이라고도 했다.

역사학자 소니아 퍼넬의 분석에 따르면 "영국 이튼스쿨 출신의 전형적인 상류층의 길을 밟았으면서도, 완벽한 엘리트의 모습보다는 독특하고 이상해 보이는 모습으로 대중과의 거리를 좁히고 있다"는 것. 빗 한번 써보지 않았을 것 같게 언제나 바람에 날린 듯 헝클어져 있는 헤어스타일조차도 기자들 카메라에 포착되기 직전 손가락으로 일부러 흐트러뜨리는 모습이 자주 포착되곤 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2008년 영국 헤어 제품 브랜드에서 팬 투표로 선정한 '베스트 유명인 헤어스타일'에서 해리 왕자 등을 제치고 1위에 오른 뒤 자랑스러워했다는 반응이다.'의도된 엉망진창'을 모르고 있는 이들에겐 보리스 존슨 스타일은 우직하게 일에 매진하느라 패션 같은 건 신경 쓸 겨를 없는 '돌쇠형 리더'로 보일 수밖에 없다.

(사진 왼쪽)G7 정상회담에 참석한 보리스 존슨 총리. "그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다"는 헤어 스타일에 넥타이는 반쯤 돌아가 있고, 슈트는 사이즈를 잘 못 잰 듯 품이 남아 넉넉하다. 패션계에선 "이렇게 슈트 사이즈를 맞지 않게 입기도 쉽지 않다"는 평이다. (사진 오른쪽)‘자전거 시장’이라 불렸던 존슨은 소탈한 차림의 자전거 출퇴근 패션을 자주 선보였다. /AP 연합뉴스·블룸버그

'슬랩스틱 코미디'에 가까운 몸짓을 자주 선보이며 '몸 개그 정치 스타일'을 선보이기도 한다. 2012년 런던 올림픽 축하 행사로 집와이어(zip-wire·공중 케이블)을 타다 중간에 걸렸을 때 대롱대롱 매달린 채로 태연하게 영국 국기를 흔드는 모습이 화제가 됐다. 대중들은 수많은 밈(meme·패러디)을 만들어내며 재밌고 유쾌한 정치인의 이미지를 더해줬다. 지난 주말 프랑스 엘리제궁에서 마크롱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할 때 협탁에 구둣발을 올려놓은 '외교 결례' 논란은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이 또한 경직된 회담장 분위기를 기행(奇行)으로 돌파한 '매우 존슨다운' 모습이라는 반응도 만만찮다.

남성 패션 전문숍 쇼앤텔의 남훈 디렉터는 "존슨처럼 옷에 관심 없어 보이는 긱(geek·괴짜) 스타일은 실리콘밸리 CEO들이 일에 매진하면서 선보인 것으로 최근 패션계의 트렌드가 되고 있다"면서 "과거 런던 시장 당시 런던 슈트가 세계 패션의 핵심이라며 신진 디자이너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보리스 존슨이 펑크 패션 등 독특한 스타일의 영국적 정신을 누구보다도 잘 표현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A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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