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해법을 찾는다]④ 박성수 LA 상공회의소 "美에선 배타주의자로 낙인 찍혀선 안돼...5만명 서명으로 의회 설득"

류현정 기자
입력 2019.08.25 13:10 수정 2019.08.25 14:22
"미국에선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이 자칫 남을 배척하는 그룹, 배타주의적 민족으로 오인돼 역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대신, 5만명 이상의 서명을 모아 시·주·연방 의원에게 보내자는 게 한인 단체들의 전반적인 생각입니다. 한·일 갈등의 심각성을 알리고 중재를 촉구하자는 것이지요."

박성수 로스앤젤레스(LA) 상공회의소 회장/LA 상공회의소
일본의 ‘화이트 리스트 배제’와 한국의 ‘지소미아(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파기 선언’으로 한·일 관계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해외 교민 사회도 이런 갈등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특히 미국 한인 단체들은 일본의 경제 보복을 규탄하고 한·일 관계 중재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미국 의회에서 통과시키기 위해 서명 운동을 펼치고 있다. 기자가 한인 교민들이 많이 거주하는 로스앤젤레스(LA) 상공회의소 박성수 회장에게 연락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LA 상공회의소는 LA거주 한인 상공인들의 권익 옹호와 이익 창출을 위해 1971년 한인상공인들이 발족한 단체다.

박 회장은 지난 7월 LA 상공회의소 회장에 취임했다. 그는 "현재 LA 교민 사회는 한국 정부의 대(對) 일본 강경 대응을 이해하고 지지하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한인 사회가 일본산 제품 불매 운동에 동참해야 하는 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한데, 미국 사회에서 폐쇄적인 민족, 배타적인 그룹이라는 이미지로 낙인되는 것은 정말 조심해야 할 부분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 회장은 서강대를 졸업하고 쌍용보험 부장, 동유럽 본부장(폴란드 거주) 생활을 마감하고 1998년 미국에 이민을 왔다. 서강대 남가주 동문회장, LA한인상공회의소 대회협력 위원장, 수석 부회장 등을 거쳐 LA 한인 상공회의소 회장, 한인 상공회의소 미주 총연 수석 부회장을 맡고 있다. 현재 보험 중개회사 허브 인터내셔널(HUB International)의 수석 부사장이다. 그와의 인터뷰는 전화와 이메일로 이뤄졌다.

다음은 박 회장과의 일문일답.

― 미국 교민 사회는 한·일 갈등을 어떻게 보고 있나.

"한국대법원의 강제징용공에 대한 배상 판결이 이번 갈등의 시발이었지만,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해 갈등을 키웠다고 한인 사회는 보고 있다. 아베가 한국의 화이트리스트 배제를 강행했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이 일본을 추월할 수 있다는 아베의 견제 심리가 작용했다는 분석이 한인 사회에서는 점점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21년 전 내가 막 미국에 이민 왔을 때 대형 매장 전자제품 코너 대부분을 소니, 파나소닉 등 일제가 차지했다. 15년 전부터 서서히 분위기가 달라졌다. 한국의 삼성과 LG가 치고 올라와 일본 제품의 점유율을 넘어섰다."

― 최근 한국 정부가 지소미아를 파기한다고 발표했다.

"한국 정부의 강경 대응은 필요하다. ‘한국인은 냄비 근성’이라는 편견을 깨고 아베의 정책 전환을 이끌어 내도록 꾸준히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만, 미국 내에서의 일본 제품 불매 운동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한국인에 대해 배타적 민족주의 이미지를 씌울 수 있기 때문이다."

― 왜 그런가.

"물론 미국에서도 일본산 제품 불매 운동을 한다면, 조국애를 발휘하고 한민족을 단합시키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다양한 인종이 공존하는 자유민주주의 사회다.

미국 법률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주제가 차별(discrimination)이다. 불매 운동은 차별적인 구매 행동이며 이는 미국 주류 사회에서는 받아들여지기 매우 어렵다. 미국 주류 사회에서 한인 사회가 배타주의 그룹 혹은 배타주의 민족으로 오도될 경우, 오히려 우리의 의견이나 생각을 정책에 반영할 기회를 잃게 된다.

LA만 해도 다문화 사회이며 한인 사회는 일본계 미국인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산 제품 구매 장려 운동과 같은 촉진 운동은 할 수 있어도 불매 운동은 조심스럽다."

― 최근 LA의 코리아타운에서는 ‘한일 갈등’을 주제로 한 광복절 기념 토론회가 열렸다.

"지난 8월 13일 LA JJ그랜드호텔에서 열린 광복 74주년 기념 토론회의 주제가 ‘우리에게 일본은 무엇인가’였다. 이 토론회에서도 반일(反日) 감정이 고조된 한국 사회와 달리 다민족, 다문화가 공존하는 미국 사회의 특성을 고려해 한인 사회의 역할을 찾아보자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나는 토론 패널로 참가, 무역·경제 부문을 중심으로 의견을 교환했다. 한인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로 국제 경제 질서를 깨뜨린 아베의 정책에 정치 압박을 가할 수 있도록 한인 사회의 성명을 모아 시주연방 의원에 전달하자고 주장했다."

― 대체로 어떤 논리의 의견서인가.

"국제 시장 경제 질서를 어지럽히는 일본의 행태를 바로잡도록 미국 의회에 압력을 넣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정부가 외교적 강온 정책은 적절히 구사하되, 일본에 대해 수출 규제로 맞대응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된다. 일본과 비슷한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의원들에게 청원서를 보내는 것이 왜 효과적인가.

"미국은 민주주의가 성숙한 나라다. 시민의 의견을 존중한다. 성명서 등 서명이 담긴 의견서를 모아 시, 주,연방의원들에게 전달하면, 그 의견이 정책 방향에 적용되거나 법제화하는 데 큰 참고가 된다.

현재 한인상공회의소와 한인회 등 수십 개의 한인 사회 단체들이 서명 운동을 벌이고 있다. 적어도 5만명 이상 서명을 모으자는 게 단체들의 생각이다.

선출직 정치인들은 수백 표, 수천 표 차이로 당락이 결정된다. 많은 수의 서명이 담긴 의견서가 도착하면 표를 의식해 움직인다는 뜻이다. 미국 정치인을 설득하면 미국을 통해 일본을 압박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이밖에 주류 언론인을 초청하는 세미나와 토론회 개최 등도 양국의 갈등을 알리고 이를 해소하는 해법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LA 시의원에 한국계가 있나.

"현재 LA 15명의 시의원 중 2명이 한국계 미국인(Korean -American)이다. 한인 사회에서 친한파 정치인을 만들려는 노력은 중요하다. 각 단체들이 정치인에 대한 자금 후원에 인색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 그동안 미국 한인 사회에서 한국의 외교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낸 적이 있었나.

"많았다. LA한인회는 경상북도 독도재단과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주류 사회 내 한인들의 위상 증진과 독도 홍보 강화를 위해 독도 홍보관을 운영하기도 했다."

8월 5일 21개 한인단체장들이 모여 일본의 한국 수출규제를 규탄하는 성명서 초안을 들고 한인들의 많은 참여를 당부하고 있다./LA 상공회의소
―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후 미국 사회의 분위기는.

"대통령 당선 초기와 비교하면 트럼프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보다 긍정적인 시각이 늘었다고 할 수 있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가 점차 지지를 얻고 있다는 뜻이다. 물론 캘리포니아는 다른 지역에 비해 민주당이 강한 편이다. 이 지역에서는 트럼프 지지자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 트럼프가 가져온 변화가 한국에 미칠 영향은?

"미국 우선주의는 과거와 같은 거의 무조건적인 도움은 용인하지 않는다. 그런 도움은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미국과 한국이 서로 주고받는 관계가 될 것이다. 한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는 부분을 사전에 잘 따져 미국과의 관계를 설정해야 한다고 생각된다."

―미중 무역 전쟁이 전 세계에 미칠 영향도 적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는 미국이 중국을 길들이기를 시작했다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다만, 미국의 경제적 우위를 위해 중국과의 관계를 재설정할 필요는 있지만, 이런 무역 전쟁이 소비자에게도 도움이 되냐는 부분에는 이견이 있다. 중국산 제품의 관세 인상으로 제품 가격이 상승하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 경기는 어떤가.

"미국 전반적인 경기는 좋은 편이다. 주류 사회가 좋다. LA 경기도 꽤 괜찮다. 다만, LA 한인 사회의 경기는 그다지 좋지 않다. 의류 생산기지였던 LA 다운타운의 대형 의류 시장인 자버(Jobber·Fashion district)이 온라인 쇼핑몰 활성화로 크게 위축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의류 제작에 드는 인건비 등 경비도 크게 올랐다. 자버 상인의 다수가 한인이었기 때문에 이들의 형편이 좋지 않으면, LA 한인 경제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 LA한인상공회의소 차원에서는 LA 한인 경제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미주 한인 경제인들이 실질적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시 및 주 정부와의 관계 향상, 세미나 및 전시회 주관, 우수 기업인 선정 시상 등의 장려책을 펼치고 있다. 내가 43대 LA한인상공회의소 회장인데, 43대는 지난해에 이어 북한에 경제협력단 파견을 추진하고 있다. 미주 경제인들은 북한의 저렴한 인건비, 질 높은 노동력에 관심이 많고 투자할 의시가 있다. 자바 시장의 침체를 겪고 있는 LA 경제인들의 관심은 더 크다. 트럼프 정부 이후 대북 제재가 강화돼 미국인은 북한을 방문할 수 없다.하지만, 외교 결과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LA한인상공회의소는 지난 1980년 북한의 평양에 공식적으로 다녀 온 적이 있다."

― 미국은 과연 어떤 사회인가. 20년 넘는 거주 경험을 바탕으로 얘기해 달라.

"우선, 미국은 완전 경쟁 사회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다. 정말 그 한계를 알 수 없는 경쟁 사회이기에 이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늘 변화해야 한다.

또한 참으로 다양한 사회다. 한인 사회에서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이 또다른 역풍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는 것도 다양성이 미국 사회의 근간이며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으면 미국에서 살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모든 것을 흑백 논리로 보는 경향이 있다. 한국 사회가 좀더 다양성을 포용하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모든 것에는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것이 있지, 틀린 것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 한국 정부와 한국 기업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미국 사회에 K팝 등 한국 문화를 적극적으로 알리는 것과 더불어 동포의 미국 정계 진출에도 관심을 가져 주기를 바란다. 미주 한인들의 성장과 성공은 국제 정치와 국제 경제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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