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원금 손실 공포 데자뷔

정경화 경제부 기자
입력 2019.08.24 03:14
정경화 경제부 기자
최근 독일 국채 금리 연계형 DLS(파생결합증권) 원금 손실률이 95%에 이른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이 상품에 가입한 4000명 외에도 좌불안석인 투자자들이 또 있다. 또 다른 금융 파생 상품인 홍콩 H지수 연계 ELS(주가연계증권)에 투자한 재테크족이다. DLS는 금리·환율·원자재 등의 기초 자산이 가입 기간에 정해진 구간을 벗어나지 않으면 약속한 이자를 지급하는 상품이고, ELS는 상품 구조는 DLS와 비슷한데 기초 자산이 주가지수나 특정 종목이라는 점에서 다르다.

일부 은행은 이번에 DLS 상품을 고객들에게 팔면서 "독일 국채 금리가 -0.2% 아래로 떨어진 적은 역사상 한 번도 없었다"며 안심시켰다고 한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느낌이다. "중국이 망하지 않는 한 홍콩 H지수가 반 토막 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됩니다." 불과 4년 전에도 은행들은 홍콩 H지수를 기초 자산으로 삼는 ELS를 불티나게 팔면서 투자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이 말은 곧 거짓으로 드러났다. 2015년 사상 최고치인 1만4000선을 뚫고 올라갔던 H지수는 불과 몇 달 만에 7000선으로 반 토막 났다. 기대 수익률 연 4~8%를 제시해 '국민 재테크' 상품 소리를 들으며 인기를 모았던 홍콩 ELS도 평가 손실이 최고 50%에 이르렀다.

당시 투자자들은 홍콩 ELS가 시장 상황이 급변하면 원금도 크게 잃을 수 있는 상품이라는 사실을 경험했다. 하지만 저금리가 이어지고 마땅한 대안 투자처를 찾지 못하자 또다시 같은 상품으로 몰려갔다. H지수는 지금도 국내에서 팔리는 ELS의 주요 기초 자산 가운데 하나다. 현재 국내에 발행된 H지수 연계 ELS에 투자된 돈은 43조원에 달한다.

요즘 홍콩의 반정부 시위가 두 달 넘게 장기화하면서, 4년 전 홍콩 ELS의 손실 공포가 되살아나고 있다. H지수가 올해 고점(1만1848) 대비 15%나 떨어졌기 때문이다. 지난 4월 H지수가 1만1800선일 때 가입했다면, H지수가 6000선 아래로 내려가면 원금 손실 구간에 진입하게 된다.

금융감독원은 최근 "홍콩 H지수 ELS는 투자자들이 원금 손실 구간에 이르기까지 아직 여유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4년 전에 경험한 것처럼 주가가 한번 하락세를 타면 걷잡을 수 없다. 시장 전문가들은 "중국 정부가 홍콩에서 무력 진압을 시도할 경우, 홍콩 금융시장 전체가 크게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우리는 이번 DLS 사태를 통해 '원금 손실 가능성이 낮다'는 은행 직원 말만 믿고 노후 자산을 맡기는 투자자가 여전히 많음을 새삼 확인했다. 개인 투자자들에게 원금 손실의 공포는 악몽과 같다. 이번에는 금융 당국과 은행들이 사후약방문을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선제적으로 홍콩 금융시장의 불안 정도를 정확히 점검하고 상황을 제대로 알려야 ELS 투자자들이 발 뻗고 잘 수 있을 것이다.


조선일보 A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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