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업계 "로마네 콩티처럼 최고급품만 콕 집어 조사?"

입력 2019.08.24 03:00

[아무튼, 주말]
식약처 '무작위 검사' 논란

프랑스 부르고뉴에서 생산되는 세계 최고가 와인 '로마네 콩티'. / 조선일보 DB
한 와인 수입사 직원이 최근 페이스북에 사진과 함께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꼴랑 6병 그것도 매그넘으로 받았는데 식약처에서 무작위 표본 검사 명목으로 1병을 들고 가버렸어요ㅠㅠ'

올린 사진에는 코르크 마개가 뽑힌 채 반쯤 비어 있는 레드와인 한 병이 보였다. 병당 60만원이 넘는 프랑스산(産) 고급 레드와인. 사진 속 레드와인은 매그넘(magnum) 사이즈였다. 매그넘은 용량이 일반 와인병(750mL)의 두 배인 데다 보관·숙성이 탁월해서 두 배 이상 가격에 팔린다.

순식간에 수십 개 댓글이 포스팅에 달렸다. '좀 심하네' '딱 집어서 빨대를 꽂아버렸네' '알고 가져간 듯' '비싸고 귀한 와인들만 걸린다는 지극히 작위적인 이 무작위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식약처 들어가고파요'….

특정 식제품을 처음 국내로 들여올 때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실시하는 정밀 검사는 물론 합의가 이뤄져 있다. 문제는 정밀 검사를 받은 뒤 재수입되는 동일 제품에 대해 실시되는 무작위 표본 검사. 법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식품 수입사들의 불만은 이 조사가 국내 업계 현실이나 세계 관행과 동떨어졌다는 점이다. 와인업계에서는 "외국에서는 첫 수입 시 실시되는 정밀 검사 이외에 무작위 검사가 대부분 없으며 와인 생산국 공인 기관에서 발행한 검사 서류만 제출받는 경우가 일반적"이라고 했다.

와인업계에서는 '과연 무작위일까'라는 의심이 끊이지 않는다. A 와인 수입사 대표는 "로마네 콩티(Romanee Conti)도 무작위 검사하는 나라는 세계에서 한국밖에 없을 것"이라며 다른 와인 수입사 직원으로 일할 때 일화를 들려줬다. 프랑스 부르고뉴에서 생산되는 로마네 콩티는 병당 1500만~2000만원을 호가하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와인. "되돌아온 로마네 콩티는 절반도 안 남았더라고요. 하긴 로마네 콩티를 검사한다는 발상 자체가 세계 와인업계에서 알면 깜짝 놀랄 일이죠."

B 와인 수입사 대표는 수입한 와인을 전량 폐기한 적이 있다. 라벨에 표기된 알코올 함량은 13도였지만, 무작위 검사 결과 1도 낮은 12도로 나와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이 와인 수입사 대표는 "반송 비용이 너무 커서 차라리 폐기했다"며 "0.5도만 달라도 부적합 판정을 내리던 과거와 비교하면 그나마 나아졌다고 위안해야 하나"라며 한숨지었다.

내추럴 와인 전문 수입사 대표는 "와인은 빈티지(생산연도)마다 알코올도수가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특히 내추럴 와인은 그야말로 모든 걸 하늘에 맡기고 만드는 와인이라 알코올도수가 해마다 들쭉날쭉입니다. 게다가 내추럴 와인 생산업체는 대부분 영세해 라벨 재활용을 많이 합니다. 작년에 찍어둔 라벨을 올해 다시 사용하는 식이죠. 그래서 내추럴 와인은 특히 무작위 검사에 걸릴 위험이 높습니다."

C 와인 수입사 대표는 3개월 전 프랑스산 스위트와인 120병을 들여오다 무작위 검사에 걸렸다. 워낙 귀한 와인이라 식약처에 검체 반환 신청을 했는데, 무작위 검사에 사용된 와인 두 병 중 한 병이 돌아오지 않았다. 겨우 돌려받은 와인은 5분의 4가량이 비어 있었다. '검사하는 데 이렇게나 많은 양의 와인이 필요할까' 의심이 든 와인 수입사 대표는 "어떤 검사에 사용됐는지 알려 달라"고 했지만, "검사 결과지가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 그는 이 사건을 감사원에 신고했다. 며칠 뒤 식약처 책임자가 와인 수입사 사무실로 찾아와 "와인에서 탄산이 발생하는지 육안으로 검사했다"고 설명했다. 와인 수입사 대표는 "객관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검사 결과지를 보여 달라"고 요구했으나 "그런 건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

식품 수입업체들은 정밀 검사 샘플을 무조건 6개 제출해야 하는 규정도 불만이다. D 치즈 수입사 대표는 "이탈리아산(産) 파르미자노 치즈를 통으로 수입하려던 계획을 식약처 검사 때문에 포기했다"고 했다.

국내에선 영어식 이름 '파마산 치즈'로 더 알려진 파르미자노는 파스타에 뿌려 먹는 가루 치즈로 흔히 알지만 원래는 무게 40㎏, 지름 40~45㎝, 높이 18~24㎝의 커다란 원통형 치즈. 가격은 개당 100만원 이상이다. 보통은 대개 1㎏, 200g 등으로 작게 쪼개고 포장해 수입한다. D 치즈 수입사 대표는 자르지 않은 통 파르미자노를 수입하려 했다. 하지만 그러려면 6개, 600만원어치를 샘플로 제출해야 했다.

"파르미자노 6개면 240㎏입니다. 제품 크기에 관계없이 샘플을 6개씩 무조건 제출해야 한다는 게 합리적인가요. 샘플로 사용된 치즈는 식약처 검사원이 손대지 않았더라도 소비자에게 판매할 수 없습니다."

부담은 소비자에게 최종 전가된다. 앞서 레드와인 사진을 페이스북에 포스팅한 와인 수입업체 직원은 "120만원짜리 한 병이 검사용으로 사라졌으니, 이걸 보전하려면 120만원의 20%인 24만원을 남은 다섯 병에 붙여서 약 150만원에 팔 수밖에 없었습니다."

식약처는 반박한다. 식약처는 "무작위 검사 대상은 국가, 제조업체, 품목별 부적합 이력 등 위해도에 따라 선정하고 있다"고 했다. 식약처는 "인지도나 가격은 고려 대상이 아니며 '비싸고 수입 물량 적은 와인만 유독 검사한다'는 오해는 무슨 근거인지 모르나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또 "알코올도수가 0.5도 이상 차이 나면 부적합 판정을 받는 것은 주세법에서 정하는 사항이라 식약처에서 답변하기 어렵다"고 했다. C 와인 수입사 대표가 "객관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검사 결과지를 보여 달라"고 요구한 것과 관련해서는 "육안 검사 등 관능 검사는 시스템에 입력하기만 하는 것이라 결과지를 발행하지 않는다"고 했다.

식약처는 "수입식품안전관리특별법 시행규칙에 따라 필요한 검체 수거량은 최소 600g 혹은 600mL이며, 표본 검사용으로 치즈는 미생물 검사용 5개, 이화학 검사용 1개 총 6개 검체가 필요하다"고 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조사에 사용된 검체는 요청하면 모두 돌려드린다"면서 "판매는 불가능하지만 수입업체에서 다른 용도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B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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