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엔 송가인 같은 사람 쌔부렀어"… 깨어나는 예술의 섬

진도=조홍복 기자
입력 2019.08.23 03:40

[뜬 곳, 뜨는 곳] '예술의 본향' 전남 진도

미술관 10곳, 대형 공연장 3곳 - 23년째 이어진 '토요민속여행'
송가인 인기 힘입어 만석 행렬… 작년 '한국관광의 별' 뽑히기도

문화·예술사업에 年 60억 투자
수·금·토·일, 주 4회 민속 공연… 명인·명창·名舞들의 무대 이어져

지난 17일 전남 진도군 진도읍 진도향토문화회관에서 진도씻김굿 한판이 벌어졌다. '진도토요민속여행' 공연 중 한 대목이다. 끊어질 듯 이어질 듯 애절한 곡조에 1~2층을 메운 관객 600여명이 동시에 숨을 멈췄다 내쉬었다. 진도씻김굿은 진도 출신 트로트 가수 송가인의 모친 송순단씨가 유명세를 타며 더욱 널리 알려졌다. 모친 송씨는 무형문화재인 진도씻김굿 전수교육조교다. 김오현 토요민속여행 예술감독은 "송가인 효과가 대단하다"며 "여름철 만석 행렬은 처음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날 무대에는 진도씻김굿을 포함해 강강술래·남도들노래·진도북놀이 등이 올랐다. 매주 토요일 오후 2시 이같은 공연이 펼쳐진다. 누적 관람객은 36만명을 넘는다. 오귀석 진도군 홍보팀장은 "세월호 참사 직격탄을 맞았던 관광업이 후유증에서 벗어났고, 대형 관광 리조트가 문을 열면서 관광객이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남종화(南宗畵)의 성지로 불리는 진도 운림산방(雲林山房) 방문객은 지난해 이맘때 하루 평균 300여명이었으나 최근 1500여명으로 5배나 증가했다.

진도 출신 트로트 가수 송가인(오른쪽)과 모친 송순단씨. /이진한·이태경 기자
'예술의 본향(本鄕)' 진도가 다시 뜨고 있다. 내로라하는 명창이 쏟아지고 전국 최다 10종의 무형문화재를 보유한 진도는 남도 문화의 정수(精髓)를 간직한 곳이다. "진도 사람이 붓을 들면 명필(名筆)이 되고, 그림을 그리면 명화(名畵)요, 소리를 하면 명창(名唱) 반열에 오른다." 예부터 진도에서 회자하는 말이다. 평범한 가정집, 백반집, 찻집 벽면에 고풍스러운 시서화(詩書畵) 작품 하나쯤 흔하게 걸려 있는 곳이 진도다. 진도에 가면 북 치는 법을 논하지 말고, 안동에 가면 제사법을 가지고 따지지 말라고 했다. 명창을 다수 배출한 지산면 주민들은 "아따 진도에선 송가인처럼 노래하는 사람이 쌔부렀다(많다)"고 말한다. 진도는 기초 지자체로는 가장 먼저 상설 민속 공연을 시작하며 우리나라 국악 공연 문화를 이끌었다. 군 단위로는 미술관이 10곳으로 가장 많다. 대형 상설 민속 공연장 3곳이 있다. 2013년 8월 정부로부터 전국 유일의 '민속문화예술특구'로 지정된 것도 이런 향토 문화 자산이 배경이 됐다.

하지만 이듬해 4월 발생한 세월호 참사로 진도 전체가 '빙하기 시대'를 맞았다. 5년 넘게 얼어붙었던 진도에 훈풍이 분 데에는 송가인의 인기가 큰 힘이 됐다. 지난달 19일 대형 리조트가 의신면 초사리 해안가에 문을 연 것도 호재였다. 진도의 문화·예술 관광 인프라를 눈여겨보던 대명그룹이 2100억원을 투자했다. 객실 576개로 진도 최대 규모다.

진도강강술래 보존회 소속 회원들이 전남 진도 망금산 강강술래 터에서 강강술래를 선보이고 있다. 지난 2015년 10월 모습. 국가 지정 중요무형문화재인 강강술래는 10종의 무형문화재를 보유한 진도의 대표적인 전통문화 중 하나다. 바다에서는 명량대첩을 재현하는 어선들이 진도의 상징인 거센 울돌목 물살을 가르고 있다.이미지 크게보기
진도강강술래 보존회 소속 회원들이 전남 진도 망금산 강강술래 터에서 강강술래를 선보이고 있다. 지난 2015년 10월 모습. 국가 지정 중요무형문화재인 강강술래는 10종의 무형문화재를 보유한 진도의 대표적인 전통문화 중 하나다. 바다에서는 명량대첩을 재현하는 어선들이 진도의 상징인 거센 울돌목 물살을 가르고 있다. /전남도
토요민속여행은 무료 공연이지만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진도군이 한 해 10억원 이상을 투자하고, 1993년 군 지자체에서 최초로 창단한 진도군립민속예술단의 상임 전문 단원 24명이 무대를 책임진다. 진도 무형문화재 보존회 소속 회원과 서울에서 활동하는 유명 국악인도 수시로 관객을 맞이한다. 노력은 결실을 얻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는 지난해 12월 토요민속여행 공연을 '한국관광의 별'로 선정했다.

진도는 섬 전체가 예술촌이나 다름없다. 최정자 진도군 예술진흥담당은 "진도 어딜 가나 지역마다 독특한 문화·예술의 전통이 살아 있다"고 말했다. 전통을 이어가기 위한 진도군의 꾸준한 노력도 주효했다. 진도군은 지역의 문화·예술 진흥 사업에 해마다 60억원을 투자한다. 군 단위 사업으로는 적지 않은 예산이다. 핵심은 주 4회(수·금·토·일) 민속 공연이다. 23년간 '토요민속여행'에 이어 수요일 상설 민속 공연을 지난달 31일부터 무대에 처음 올리기 시작했다. '수요상설공연 진수성찬'이다. 매주 수요일 오후 7시 30분 진도읍 무형문화재전수관에서 연다. 공연장은 토요민속여행 공연 무대인 향토문화회관 바로 옆에 있다. 최근 리조트 개장과 함께 평일 관광객이 늘자 기존 '금·토·일' 전통 민속 공연 진용에 '수요일'을 추가했다.

금요일 무대는 국립남도국악원이 맡는다. 2004년 7월 개원한 진도 임회면 상만리 국립남도국악원은 매주 금요일 오후 7시 '금요국악공감' 무료 공연을 연다. 민속예술 명인·명무(名舞)·명창과 국악원 연주단의 무대가 관람객을 사로잡는다. 국립국악원은 서울·전북 남원·진도·부산 등 네 곳에 있다. 진도국악원은 세 번째로 문을 연 국립국악원이다. 일요 공연은 진도 무형문화재 예능 보유자가 소속된 '진도민속문화예술단' 차례다. 진도읍 해창민속전수관에서 매주 일요일 오후 2시 엿타령·강강술래·북놀이 등의 전통예술 공연을 연다. 이동진 진도군수는 "진도 주민들 내면에는 유배를 왔던 선비들의 학문적·예술적 소양이 잠재돼 면면히 흐르고 있다"며 "보배로운 예술의 섬을 문화와 예술의 힘으로 다시 한번 일으켜 세우겠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A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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