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같이 출발한 文대통령과 마크롱의 중간 성적표

장일현 여론독자부 차장
입력 2019.08.23 03:15

노동 개혁한 佛 마크롱, '소주성' 택한 文대통령
2년 지나 성적 매기니 일자리서 극적으로 갈려

장일현 여론독자부 차장

각국 정상이 참여하는 '토론 배틀'이 열린다면 일대일 맞수로 문재인 대통령과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제격이다. 두 사람 모두 2017년 5월 대통령이 됐다. 국민 잘살게 한다는 목표는 같겠으나 전략·정책을 놓고 정면 격돌할 것이다. 특히 경제 이슈가 그렇다. 이전 보수 정권의 모든 걸 깨뜨리려는 문 대통령은 좌파 정책을 밀어붙인다. 대표 상품은 소득 주도 성장. 좌파 정권을 무너뜨린 마크롱은 우파 정책을 강행한다. 핵심은 노동 개혁이다. 논리 싸움은 팽팽한 접전일 거다. 하지만 지난 2년간 일자리 성적표를 감안해 판정한다면? 심판들은 마크롱 승리에 표를 던질 것 같다.

미국 장·단기 금리 역전 등 'R(Recession·경기 침체)의 공포'가 전 세계를 강타한 지난주 프랑스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올 2분기 실업률이 전년 동기 대비 0.2%포인트 떨어져 8.5%를 기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10년 만에 가장 낮다. 뮈리엘 페니코 노동부 장관은 "많은 정규직 일자리가 창출됐다. 기업들이 채용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했다. 반면 한국의 일자리 성적표엔 먹구름이 잔뜩이다. 문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17년 7월 3.4%였던 실업률은 지난 7월 3.9%로 2000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고, 110만명에 달하는 실업자 수는 1999년 이후 최대치다.

2015년 말부터 2년간 유럽 특파원으로 근무했을 때 프랑스 일자리 기상도는 '잔뜩 찌푸림'이었다. 2016년 초 올랑드 대통령은 "고실업률은 극단적 테러리즘만큼 중대한 도전"이라고 했다. '국가 비상사태'라며 대규모 예산 투입 실업 대책도 내놨다. 나중엔 노동 개혁 정책도 추진했다. 하지만 실업률은 크게 낮아지지 않았다. 프랑스 국민은 새 인물을 원했다. 2017년 5월 프랑스 대선 때 만난 파리 택시기사 말이 귀에 생생하다. "수십년 동안 공화당과 사회당에 속았다. 이젠 안 속는다." 대선에서 프랑스 정계 양대 산맥이었던 공화당·사회당 모두 결선 진출에 실패했다. 언론들은 '앙시앵 레짐(구체제)의 몰락'이라 했다. 올랑드와 마크롱의 취임 때 실업률은 9.7%로 같았다. 이 수치는 올랑드 집권 말기인 2016년 말 10.6%까지 올랐다. 마크롱 취임 2년이 지난 현재는 8.5%다. 올랑드 재임 때인 2012~16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평균 0.82%, 마크롱 집권기인 2017~18년은 평균 1.9%(추정치)로 1.0%포인트 이상 높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올해 프랑스 성장률은 작년보다 떨어질 것이란 예상인데, 이런 악조건에서도 실업률이 계속 낮아지는 건 마크롱에게 아주 좋은 소식"이라고 했다. 우리나라가 경제성장률이 떨어지고 실업자가 많아진 이유가 세계 경기 악화 등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것과 무척 다른 모습이다.

'21세기 미국의 패권과 지정학'을 쓴 피터 자이한은 2030년까지 2차 세계대전 이후 탄생한 국제 질서가 모두 붕괴될 것이라고 했다. 미국이란 보안관이 사라지면서 무질서, 엉망진창의 세계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시기'가 온다고 했다. 이런 때일수록 지도자의 선택이 흥망에 이르는 시간은 아주 짧다. 도와줄 친구가 없기 때문이다. '백만매택 천만매린(百萬買宅 千萬買隣)'이란 말이 있다. 집은 백만금을 주고 사지만 (좋은) 친구·이웃은 그 열 배를 주고 얻는다는 뜻이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흥망성쇠가 있었다. 한때 잘살다 몰락한 아르헨티나·베네수엘라 같은 친구를 둘 것인가, 프랑스처럼 회생의 노하우를 전해줄 이웃과 가깝게 지낼 것인가. 선택은 우리 몫이다.



조선일보 A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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