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중동천일야화] 다시 뜨거워진 호르무즈… 이란, 미국보다 불리하지 않아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중동정치
입력 2019.08.19 03:10

하루 유조선 15척 지나… 반드시 이란·오만 해역 지나야 해
6개 걸프 왕정國 중 확실한 사우디 편은 UAE와 바레인뿐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중동정치
호르무즈해협이 다시 뜨겁다. 올 5월 아랍에미리트(UAE)의 후자이라항에서 벌어진 유조선 피습 이후 나포와 피격 사건이 이어지면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오만의 무산담반도와 이란의 라라크섬 사이의 폭 54㎞ 바닷길을 드나드는 선박들은 불안하게 항해하고 있다.

발단은 작년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적인 이란 핵 합의 파기였다. 이전까지는 평온한 바다였다. 작년 11월 미국이 대이란 제재를 전면 복원하면서 파고가 높아졌다. 7년 만이다. 2012년 이란 핵무장 가능성이 커졌을 때 미국이 강력한 이란 석유 금수 조치를 내린 이후 다시 위험한 바다가 되었다. 1979년 이란혁명 이래 이 바다의 위기는 주로 미국과 이란 사이에서 불거졌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혹자는 미국의 압박으로 고립된 이란이 벼랑 끝 전술로 호르무즈 봉쇄 위협 엄포를 놓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실상은 조금 다르다. 오히려 현 상황은 이란의 우세로 평가되기도 한다. 세 가지 면에서 그렇다.

먼저 바다다. 걸프 해역(페르시아만)은 이란의 바다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다의 남쪽, 즉 아라비아반도 연안은 사우디아라비아 등 6개 걸프협력회의(GCC· Gulf Cooperation Council) 왕정국가들이 잘게 나눠 갖고 있다. 반면 북쪽 해역은 전부 이란 영해다. 면적뿐만 아니다. 진입 길목인 오만 앞바다의 1차 통항분리대(TSS·traffic separation scheme)로 들어온 배는 크게 각도를 꺾어 곧바로 서부 통항분리대로 진입한다. 이곳 80㎞ 항로는 이란 관할 영역이다. 하루 대략 15척의 유조선이 반드시 지나야 하는 곳이다. 이란은 1958년 해양법협약 비준으로 호르무즈가 무해통항권 적용 지역임을 내세운다. 연안국이 자국 안보에 위해가 있다고 판단할 경우 항행 선박을 정선, 검색할 권리를 갖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법적 논쟁은 남아 있지만 석유의 보고이자 전략 요충지인 걸프 해역의 절반과 길목을 이란이 장악하고 있는 셈이다.

둘째, 걸프 해역 연안의 정치 역학 구도도 이란에 불리하지 않다. 이란을 공공의 적으로 규정하고 공조해왔던 GCC의 균열은 이란에 호재다. 특히 사우디와 카타르의 단교 사태는 단적인 예다. 이란을 주적으로 하는 사우디를 전적으로 편드는 걸프 국가는 현재 UAE와 바레인밖에 없다. UAE마저도 예멘 전쟁의 피로가 쌓이면서 사우디와 거리를 두는 모양새다. 카타르는 이란과 가까워지고 시아파가 40%에 육박하는 쿠웨이트도 이란 눈치를 보고 있다. 아예 종파가 다른 오만은 애초부터 중립 입장이다.

이처럼 공조가 무너진 걸프 왕실과 달리 이란은 역내에서 종파를 중심으로 세를 확장하고 있다. 두 갈래의 축이 도드라진다. 한 축은 소위 '시아파 초승달'(Shiite crescent) 개념으로 이란·이라크·시리아 및 레바논 헤즈볼라를 잇는 지중해 연결축이다. 다른 한 축은 이른바 '시아 편자' 지대(Shiite horse-shoe area)이다. 이란, 이라크, 바레인 시아파, 사우디 동부 시아파 밀집 지역을 이으며 걸프 해역을 감싸는 말발굽 모양의 확장망이다. 전자가 정치 집단을 구체적으로 잇고 있다면 후자는 역내 시아파 대중을 광범위하게 포섭하는 네트워크라 할 수 있다. 여기에 예멘 후티 반군까지 이란과 연계되어 있어 사우디는 이란에 포위되고 있는 형국이다.

셋째로 국제정치 환경 역시 이란에 꼭 불리한 상황만은 아니다. 미국은 일방적으로 이란 핵 합의를 파기하고 제재를 복원했다. 여전히 미국을 제외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4개국과 또 다른 서명 당사국 독일은 합의를 유지하고 있다. 이란 역시 일단 합의를 지키겠다면서 미국보다 도덕적 우위에 있음을 설파한다. 이란의 주요 석유 수출국 인도와 중국은 미국의 제재 복원에 반대 의사를 명시적으로 밝혔다. 미국의 2차 제재 압박 부담이 만만치 않은 가운데에서도 일단 이란에 우호적인 메시지를 발신한 셈이다. 미국은 이란을 위험한 나라로 몰아붙이고 있지만 유럽을 비롯, 국제사회의 공조를 얻지 못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이란 압박에 이스라엘이 가세하면서 아랍권의 반이란 전선 구축에 오히려 빨간불이 켜졌다. 아랍 이슬람권의 대중에겐 이란보다 이스라엘이 더 밉기 때문이다.

이처럼 호르무즈를 둘러싼 이란의 전략 환경은 2012년에 비해 그다지 나쁘지 않다. 지역 패권(hegemony)까지는 아니지만 확연한 우세(preponderance)를 확보하고 있다. 합의를 지킨다는 명분의 우위, 유럽의 지지, 반대 진영의 균열 등은 이란에 긍정적인 요소다. 다만 문제는 미국의 제재 압박으로 인한 이란 경제 붕괴 가능성이다. 외교적으로 버텨낸다고 해도 미국의 조밀한 제재망을 뚫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이란이 체제의 명운을 걸고 섣불리 호르무즈의 무력 봉쇄에 나설 가능성은 크지 않다. 호르무즈를 무력 봉쇄하는 순간 유럽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이란 지지는 유지되기 어렵다. 역내 우호 세력으로 남겨 놓아야 할 카타르와 쿠웨이트를 고사시키는 결과이기도 하다. 이란의 수입 물자도 호르무즈를 통해서 들여온다. 자국 최대 무역항인 반다르 아바스를 스스로 봉쇄할 수는 없다. 이처럼 이란이 섣불리 움직이기는 어렵다. 이 와중에 미국은 국제사회의 반이란 결속을 요구하며 호르무즈 항행의 자유작전을 위한 연합 호위체 구성에 나섰다. 동맹국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군사작전으로 안전해지는 바다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호르무즈는 페르시아 조로아스터교의 주신(主神) 아후라 마즈다의 다른 발음이다. '빛과 지혜의 신'이다. 조로아스터는 불을 통해 궁극적 신앙의 대상인 아후라 마즈다의 현현을 기다렸다. 오늘의 국제정치는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난세다. 호르무즈도 마찬가지다. 그 이름, 빛과 지혜의 신이 강림하지 않고서는 도무지 희망이 없는 것일까?


조선일보 A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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