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의 狂氣 꿰뚫은 처칠, 그래서 이겼다

김태훈 출판전문기자
입력 2019.08.17 03:00

독일 출신 작가가 쓴 처칠 전기
히틀러의 광기·극단적 성격 닮아… 둘다 전쟁을 사랑한 '스트롱맨'

처칠, 끝없는 투쟁

제바스티안 하프너 지음안인희 옮김|돌베개
336쪽|1만6000원

같은 테마를 다양한 버전으로 듣는 감상법이 음악에만 해당하는 건 아니다. 2차 대전 승리의 주역 윈스턴 처칠(1874~1965)도 수많은 전기를 통해 독자와 만났다. 이 책은 그중에도 처칠에 의해 잿더미가 된 독일 출신 작가가 쓴 전기라는 데서 우선 눈길을 끈다. 저자 하프너는 나치의 박해를 피해 1938년 영국에 망명했고 옵서버에서 언론인으로 일했으며 나치 독일 패망 후 독일 특파원으로 귀국한 특이한 이력을 지닌 인물이다. 대중적인 사랑을 크게 받는 역사 교양서 작가이기도 하다.

청년 기병장교의 화려한 등장, 1차 대전에서 해군장관으로 겪은 쓰라린 패배와 실각, 보수당과 자유당을 철새처럼 넘나든 정치 이력, 2차 대전에서의 위대한 승리와 그 후 너무도 의외였던 총선 패배 등으로 요약되는 처칠의 삶을 저자는 '투쟁'이라는 키워드로 해석한다. 처칠의 삶이 극단적인 투쟁으로 점철됐다는 점에서 심지어 그가 무너뜨린 히틀러와 닮았다고까지 단언한다.

저자에 따르면 처칠은 '정치가로서 전쟁을 한 사람'이 아니라 '전쟁을 하기 위해 정치를 이용한 사람'이다. 더 나아가 역사는 처칠을 파시즘과 싸워 이긴 인물로 규정하지만 실상은 처칠만큼 파시즘에 가까운 서방 인물도 없다고 봤다. 저자는 처칠의 맞수였던 로이드 조지, 스탠리 볼드윈 등 전직 총리들에 비해 처칠이 너무도 어리숙한 정치인이었다고 평가한다.

1944년 파리 해방 후 드골(오른쪽) 장군과 함께 파리 개선문 앞을 행진하는 처칠(왼쪽 맨 앞) 영국 총리. /돌베개

처칠과 그의 전임 총리 체임벌린에 대한 비교는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이다. 체임벌린이 히틀러에게 놀아난 것은 그가 명석하지 못했거나 겁쟁이였기 때문이 아니라 히틀러와 다른 종류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체임벌린은 1차 대전 때 잃어버린 땅을 되찾으려 했던 정치인 히틀러의 처지를 이해했고, 그런 히틀러를 소련과 싸움 붙여 어부지리를 노린다는 전략적 목표를 갖고 있었다. 히틀러와 싸울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1차 대전으로 이미 만신창이가 된 영국이 또 한 번 전쟁에 휘말렸다간 파산할 게 뻔하다는 판단도 전쟁을 피하게 했다. 그 우려는 처칠 지휘 아래 2차 대전을 겪고 난 뒤 정확한 판단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체임벌린이 저지른 단 하나의 실수는 히틀러를 자기처럼 냉정하고 합리적인 정치인이라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히틀러는 광인이었다. 그걸 처칠은 알아봤다. "인간은 자기 내면에 있는 것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처칠 안에 히틀러적인 무언가가 있었다는 얘기다. 둘은 전쟁을 사랑한 스트롱맨이었고, 극단적인 성격을 지녔다. 처칠이 히틀러 덕분에 10년간의 야인 신세를 벗고 장관직에 복귀했으며 이어서 꿈에도 바라는 총리직에 올라 히틀러를 파멸시킨 것은 그런 의미에서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처칠이 현직에서 물러날 때마다 그를 가장 괴롭힌 것은 무위도식한다는 자괴감이었다. 1차 대전에서의 실패로 내각에서 쫓겨났을 때 처칠은 자신을 '심해에서 수면으로 끌려나와 머리가 터질 지경이 된 심해어'에 비유했다. 그는 엄청난 긴장, 중대한 결정, 심장을 짓누르는 책임감이란 압력이 필요한 물고기였다. 1945년 7월 선거 패배로 총리직을 내놓을 때, 이미 고희를 넘긴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이제 제대로 해 보자"였다. 6년 뒤 처칠은 총리직에 복귀했다. 1953년 6월 뇌졸중으로 쓰러지자 의사는 주변에 그의 죽음을 준비하라고 했다. 하지만 처칠은 4주 뒤 지팡이를 짚고 일어섰으며 10월엔 보수당 전당대회에 나타나 연설했다.

1955년 4월 5일 영원히 공직을 떠난 뒤 마지막 투쟁 상대는 죽음이었다. 1962년 대퇴부 골절 사고를 당했을 때 그는 88세였다. 신문사들은 위대한 영웅을 떠나보낼 부음 기사를, 정부는 성대한 장례식을 각각 준비했다. 하지만 그는 두 달 뒤 깁스를 한 모습으로 들것에 실려 병원을 나섰다. 구경 나온 사람들은 처칠이 지은 엷은 미소에 탄성을 쏟아냈고, 그가 평생 해온 것처럼 승리의 V를 그리기 위해 손가락을 펴려 애쓰는 모습을 보며 숙연해졌다. 그는 퇴원 후 3년을 더 살았다. 영면에 들면서 처칠이 남긴 말은 "모든 게 너무 지루해"였다고 한다.


조선일보 A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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