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책을 말한다] 잃었지만 잊지 않은 것들

김선영·서울아산병원 의사
입력 2019.08.17 03:00
김선영·서울아산병원 의사
아버지는 마흔여섯에 암 진단을 받고 1년여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그가 어머니와 쓴 병상 일기가 사후에 출판되었지만, 고등학생이던 나는 차마 그것을 읽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집에 남아 있지 않았던 그 책을 인터넷에서 검색해 어느 헌 책방에서 주문해 읽기까지는 22년이 걸렸다.

그동안 나는 종양내과 의사가 되었다. 많은 동료 의사들은 종양내과 의사에게 묻는다. 열심히 치료해도 환자가 죽는 허망함을 어떻게 견디느냐고. 많은 환자는 종양내과 의사에게 섭섭해한다. 왜 희망은 주지 않고 죽는다는 얘기만 하느냐고.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묻는다. 환자들의 삶이 예전보다 더 나아졌느냐고. 부모님의 병상 일기는 그것을 돌아보게 해주었다. 환자들의 삶은 의학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통스러우며, 죽음 앞의 더 나은 삶을 돕는 우리의 일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을.

일기 속에서 슬퍼하고, 불안해하며, 대체 요법을 찾아 헤매고, 외로워하는 부모님의 모습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내가 매일 만나는 환자들과 닮았다. 바삐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 같은 병원이란 공간에서 그들에게 적절한 도움을 주는 것은 쉽지 않다. 그들의 슬픔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으리라는 것도 알고 있다. 다만 비극을 겪는 것은 당신만이 아님을, 당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를 주고 싶었다. 병원은, 의학은 여전히 부족하지만 당신의 원망과 슬픔을 받아 안으면서도 그 자리에 서서 묵묵히 일할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부모님 일기를 통해 돌아보는 과거, 그리고 수많은 삶과 죽음을 마주치는 나의 현재를 이 책 '잃었지만 잊지 않은 것들'(라이킷)에 담았다. 마지막 장은 아이들을 키우면서 비로소 알게 된 부모 된 기쁨과 슬픔으로 마무리했다. 독자의 마음이 잠시나마 푸근해질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조선일보 A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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