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현 정부의 '자사고 폐지' 정책을 반대한다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입력 2019.08.17 03:00

[아무튼, 주말- 김형석의 100세일기]

아내가 발병하기 몇 달 전이었다. 같이 여행을 하다가 "가장 행복했던 때가 언제냐"고 물었다. 아내는 "미국 시카고를 방문하면서 (당신의 제자인) 서울 중앙학교 졸업생 7명이 하루씩 자기 가정에 머물도록 초대했을 때"라고 답했다. 나도 공감했다. 대학 때 제자들도 외국에서 만나면 정중하게 대해주기는 하지만 집에 와 머물러 달라고 할 만큼의 친밀감은 느끼지 못한다.

국공립학교 졸업생보다는 사립학교 출신이 애교심이 강한 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평양에서 다닌 숭실은 물론 숭의여중, 광성중학, 정의여중 등 사립학교는 모두 서울에서 그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숭실대학도 그렇다.

일러스트= 이철원
언젠가 이화여고 서 교장에게 "딸 넷을 졸업시켰는데 표창을 안 해주느냐"고 농담을 한 적이 있다. 서 교장은 "서울시 모 교육자는 딸 여섯을, 감신대의 Y목사는 딸 다섯을 보냈다"고 대답해 함께 웃었다. 미국에 사는 대광중·고등학교 졸업생들은 1년에 한두 분씩 은사를 미국으로 초대하곤 했다. 서울에서는 오래전부터 배재, 보성, 중앙, 휘문 중·고등학교가 대표적인 사립학교였다. 그 학교들은 제각각 훌륭한 인재를 키웠다. 국권을 회복하는 데도 그들의 노력이 컸다.

미국은 교육의 다양성으로 위대한 사회를 육성했다. 지금까지도 주립학교보다도 사립학교의 혜택을 더 많이 누리고 있다. 러시아, 중국, 북한에는 사립학교가 없다. '모든 국민은 같은 목적과 방법으로 살아야 한다'는 이념교육 때문이다.

내가 대학에서 가르칠 때 고3 학생들에게 특강을 해준 경험이 여러 번 있다. 요청해 온 학교는 모두가 사립학교였다. 학생들의 인격과 장래를 위해 관심이 컸던 것 같다.

현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자사고 문제가 교육의 장래를 위한 큰 과제로 부상하며 사회적 관심을 받고 있다. 나도 오래전 전북 전주의 상산고로부터 초청을 받아 강연을 간 적이 있다. 그때 학교장과 선생님들의 열성을 보면서 대한민국에서 모범적인 고등교육의 길잡이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정부는 그런 학교를 통제하기보다는 대외적으로 알려주어 다른 학교에 좋은 영향을 주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대학 입시 제도를 개선하는 책임이 더 중하다고 보는 것이다.

이 정부는 고등학교까지는 의무교육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사립학교가 점차 없어지기를 원하는 것 같다. 전국의 학생들에게 일률적으로 평준화된 교육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더 좋은 교육을 하는 사립학교를 없애자는 사고와 정책은 정신·문화적 후퇴와 사회적 다원성을 해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현 교육부는 교사와 스승의 정신적 가치관까지도 통제해 획일화시키려는 우를 범할지 모른다. 그것은 '사랑이 있는 교육이 세상을 행복하게 만든다'는 천리(天理)에 어긋나는 길이다. 참다운 스승이 사라진다면 우리 교육계에 무엇이 남겠는가.

조선일보 B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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