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유·함성 동시에 쏟아진 '잘츠부르크'의 문제작

잘츠부르크=장일범 음악평론가
입력 2019.08.16 03:01

[모차르트 첫 오페라 이도메네오]
99주년 맞은 유럽 最高 음악축제
천재 지휘자·괴짜 연출가 만나 그리스 신화 주제로 만든 오페라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막이 내리고, 지휘자 테오도르 쿠렌치스(47·작은 사진)가 나와 인사하자 객석은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연출가 피터 셀라스(62)에겐 '우우~' 야유를 쏟았다. 지난 12일 저녁(현지 시각) 유럽의 대표 음악 축제인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모차르트가 스물다섯 살 젊은 나이에 썼으나 자신의 오페라 중 최고라 확신했으며, 올해 축제의 최대 화제작이기도 한 '이도메네오'에 대해 청중이 보인 엇갈린 반응이었다. 하지만 셀라스는 함박웃음을 지은 채 이런 빈정거림마저도 즐겼다.

클래식계 두 '앙팡테리블(무서운 아이)'인 셀라스와 쿠렌치스의 만남은 연출보다 음악이 판정승을 거둔 공연이었다. 99주년인 올해 페스티벌의 주제는 '신화'. 조국의 수호 성물을 빼내어 사랑하는 남자 이아손에게 건넨 메데이아,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오이디푸스 등 그리스 신화 속 인물들이 밤낮 무대에 오르는 가운데 이 오페라는 바다의 신 넵튠, 크레타의 왕 이도메네오, 아르고스의 공주 엘레트라 등 비극의 인물들이 끝 모를 갈등으로 치달았다. 이도메네오가 바다 위에서 자신의 함대와 함께 폭풍우에 휘말리자 해신에게 살려달라고 기도하며 '크레타에 도착해 처음 만나는 사람을 제물로 바치겠다'고 약속하는 이야기. 그러나 그가 최초로 마주한 이는 자신의 아들 이다만테였다. 암전된 공연장에서 쿠렌치스가 손전등을 들고 입장한 뒤 지휘를 시작했다. 이도메네오가 풍랑에 난파할 뻔한 상황을 웅변해줬다.

그리스 아테네에서 태어난 지휘자 쿠렌치스는 네 살에 피아노, 일곱 살에 바이올린을 시작한 음악 신동이었다. 스물두 살이던 1994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 입학해 전설의 스승 일리야 무신에게 지휘를 배웠다. 2011년 모스크바 동쪽의 공업 도시 페름의 오페라극장 감독이 되더니, 무지크에테르나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기존의 문법을 뒤집는 공연과 음반을 내놓아 음악계에 충격을 던졌다. 마약에 취한 듯 신들린 몸짓으로 열정적 지휘를 선보이는 그는 이번 축제에서 자신의 '무기'가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로 바뀌었는데도 모차르트의 극음악을 밀고 당기는 데 천재적 능력을 발휘했다. 아프리카계 미국 테너 러셀 토마스는 보통의 모차르트 테너들과 다르게 힘찬 목소리로 이도메네오를 노래했다. 트로이 공주 일리아로 분한 중국 소프라노 팡잉은 아름답고 고결한 음성으로 빛났다. 그러나 여자가 부르는 남자 역인 이다만테의 아일랜드 메조소프라노 폴라 머리이는 음성이나 기교 모두 평범해 생기를 주지 못했다.

오페라 '이도메네오'의 한 장면. 아버지 이도메네오의 손에 죽게 된다는 걸 안 이다만테는 절망에 빠져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다(편집 효과를 위해 가로 사진을 세로로 세웠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엘레트라(왼쪽)는 일리아(가운데)와 이다만테가 서로 사랑한다는 걸 알고 배신감에 분노한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진정한 주인공은 페름에서 온 무지크에테르나 합창단이었다. 어떤 언어, 어떤 시대 음악이든 빼어나게 소화하도록 훈련된 이 경이로운 합창단은 군복 또는 환자복을 입은 크레타와 트로이 시민들로 나뉘어 드넓은 무대를 누볐다. 셀라스의 연출은 무대에 거대한 풍선 같은 투명 설치물과 LED 조명을 많이 써 철 지난 SF 영화를 보는 듯했으나 합창은 천상급이었다. 2막 첫 부분에서 아르고스인들과 크레타인들이 객석 맨 앞에 한 줄로 서서 부르는 장면이 특히 좋았다. 두 명의 댄서가 폴리네시아 춤으로 격랑과 평화를 상징하며 대미를 장식한 점도 감동적이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쿠렌치스의 지휘는 소절과 프레이즈마다 가슴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이날 밤은 일리아 역 팡잉의 것이었다"고 평했다. '이도메네오'는 오는 19일 마지막 공연을 한다.




조선일보 A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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