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기간 5년 끝났다고… 굶주리던 탈북 母子에 모두 무관심했다

윤형준 기자 류재민 기자
입력 2019.08.14 03:00

중국 동포와 결혼후 올해 이혼… 한국 물정 어두웠을 가능성 커
탈북민 지원 '초기 정착'에만 집중… 경찰·구청 등 이후엔 손 놔

생활고에 시달리다 6세 아들과 함께 숨진 탈북 여성 한모(42)씨의 월셋집에서 발견된 통장 속 잔고는 '0원'이었다. 통일부도 13일 "한씨 모자(母子)가 사각지대에 놓여 관리가 잘되지 않았던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며 "탈북민 지원 체제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지 다시 한 번 파악해 보겠다"고 했다. 초기 정착 지원에만 집중된 현행 탈북민 정책의 문제점이 이번 참사를 불러왔다는 지적이 나온다.

◇탈북 5년 지나면 사실상 지원 어려워

관악구청에 따르면 한씨는 하나원에서 퇴소한 2009년 말 관악구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탈북민은 정착 초기 5년간 경찰과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을 받는다. 지자체 거주지 보호 담당관이 각종 행정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고, 경찰 신변 보호 담당관이 신변 안전을 상담해준다. 실제 한씨도 이런 지원 속에 1년 만에 성공적으로 정착했다. 2010년에는 소득이 늘어나며 기초생활수급자 상태에서 벗어났다.

한씨 가족은 2013년 경남 통영으로 주소지를 옮겼다. 한씨 남편이 조선소에서 일하며 가족을 부양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조선 경기가 급격히 꺾이면서 한씨 가족은 2017년 8월 중국으로 이주했다. 한씨가 한국에 되돌아온 것은 작년 9월. 아들과 둘이서만 봉천동 임대아파트에 전입신고를 했고, 이듬해 1월 남편과 협의이혼을 했다. 구청 관계자는 "전입신고 당시엔 기초수급자 신청을 하지 않은 것으로 볼 때 이혼으로 한씨 경제 사정이 급격히 나빠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아이의 낙서만 덩그러니… - 탈북 여성 한모(42)씨와 그의 아들 김모(6)군이 굶주리다 숨진 채 발견된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한 임대아파트 내부. 김군이 숨지기 전 그린 낙서들이 보인다. /배미래 조선비즈 인턴기자

하지만 한씨에게 2009년과 같은 지원은 없었다. 그나마 경찰에서는 통영에서 한씨를 담당했던 신변 보호 담당관이 한씨 귀국 소식을 듣고 지난 2월 상경해 한씨를 찾아갔지만, 한씨가 접촉을 피하자 더는 찾지 않았다. 구청·경찰 관계자들은 "정착한 지 10년이 넘은 탈북자까지 계속해서 돌봐줄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했다. 하지만 탈북민들은 "한씨가 한국에 온 지 10년 가까이 지났다곤 하지만, 중국 동포였던 남편이 사실상 생계를 도맡아 왔고, 탈북 이후 상당 기간을 중국에서 보냈기 때문에 한국 물정에 어두웠을 수 있다"고 했다.

이혼한 한씨에게 수입이라곤 정부가 매달 주는 아동수당 10만원과 양육수당 10만원이 전부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나마 올해 3월에는 김군이 나이가 만 6세가 되며 아동수당 10만원도 끊겼다. 그로부터 약 3개월 만에 한씨는 여섯 살 아들과 굶주림 속에 숨졌다.

◇여전히 경제난 시달리는 탈북민

통일부는 '2018 북한이탈주민(탈북민) 정착지원 실무편람'에서 '전입 시기를 불문하고 지역 내 모든 북한 이탈 주민을 대상으로 지역 적응을 지원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경찰·지자체와 별개로 통일부 산하 남북하나재단은 위기 상황에 놓인 탈북민에게 긴급 생계지원비(연 1회·최대 100만원)를 지급한다.

하지만 수혜 대상 발굴 책임을 진 '하나센터' 역시 한씨 가족의 위기를 찾아내는 데 실패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한씨는 기존의 이탈 주민 정착 지원 체계 내에서 받을 수 있는 혜택도 받지 못했다"고 했다. 탈북민 사회 일각에선 "현 정부 들어 탈북민에 대한 무관심이 확산된 결과"라는 비난도 나왔다. 탈북민들은 "경제적 어려움이 정착에 가장 큰 장애물"이라고 말한다. 지난해 시행한 정착 실태 조사에서 탈북민 9.2%는 '공과금을 제때 내지 못한 적이 있다'고 했고, 9%는 '병원비 부담으로 진료받지 못한 적이 있다'고 했다. 더 나은 '남한 생활'을 위한 지원 방안으론 24.9%가 '취업·창업 지원'을, 12.3%는 '직접 소득 지원'을 희망했다. 특히 남한 거주 기간이 5년 이상인 탈북민은 5년 미만인 탈북민에 비해 "경제적으로 어려워 생활에 불만족한다"는 응답이 약 5%포인트 높았다.


조선일보 A12면
헬스조선 상례서비스

오늘의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