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한국화의 붓 맛

김상엽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팀장
입력 2019.08.14 03:00
김상엽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팀장
서양화는 캔버스, 동양화는 종이에 그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캔버스는 유화를 그릴 때 쓰는 특수 천의 일종이다. 원래는 면이나 마직물로 만들었으나 요즈음에는 화학섬유로도 만든다. 캔버스는 그림물감의 유지체로서 몇 번이고 거듭 칠할 수 있다. 서양화는 그림물감 위에 그림물감을 쌓아가는 방식이기 때문에 X선 촬영을 해보면 밑그림이 드러나곤 한다. 이에 반해 동양화는 덧칠이 용납되지 않는 종이에 그려지며 먹과 종이의 교감에 의해 작품이 완성된다. 종이 위에 먹으로 하나의 점이나 선을 그리는 것은 종이의 성질을 먹으로 움직이는 행위라 할 수 있다.

붓을 잡아본 사람은 붓이 얼마나 예민한 존재인지 경험했을 것이다. 붓의 완급 조절, 강약에 따라 화면은 완연히 달라진다. 붓을 잡는 힘, 붓을 움직이는 속도에 따라 화면은 변화되고 먹의 농도, 종이 종류의 차이 등에 따라 대상의 묘사와 표현은 현격히 차이가 난다. 동양화 제작에서 종이와의 교감은 작품의 성패까지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다.

재료의 차이를 통해 동양화와 서양화는 이렇게 쉽게 비교된다. 그러나 각론에서 차이가 있다. 조선 후기의 산수화가 겸재 정선은 '인왕제색도' 등에서 종이에 옅은 먹을 칠한 후 그 먹이 마르면 몇 번이고 덧칠하는 이른바 적묵(積墨) 방식으로 바위와 숲을 표현했다. 우리의 한지는 두껍고 질겨 먹을 몇 번이고 덧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과 일본의 종이는 얇은 데다 먹을 잘 빨아들이고 쉽게 번지기 때문에 붓을 빠르게 움직여야 하고 덧칠이 불가능하다. 우리의 옛 그림이 강인하고도 거친 붓 맛을 느낄 수 있는 데 반해 중국과 일본의 그림이 속도감 있고 감각적으로 그려진 것은 이처럼 재료의 문제가 크다. 그림만 놓고도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이렇게 다르다. 하물며 동양과 서양의 비교가 간단할 수 없다. 탁월한 비교문화론을 만나기 어려운 이유는 비교 대상 문화의 본질을 꿰뚫는 지식을 갖기 어렵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조선일보 A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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