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판타지집에 전우치가… 18세기 작가는 상상도 못 했겠죠

박해현 문학전문기자
입력 2019.08.14 03:00

강민수 교수… 美서 출간된 '고전 판타지 모음집'
톨스토이·카프카의 작품과 함께 한국 고전 '전우치전' 영역본 수록

고전소설 '전우치전(田禹治傳)'이 처음 영어로 번역되자마자 세계 판타지 문학의 고전 반열에 올랐다.

미국 유명 출판사 빈티지가 지난 7월 초 출간한 '고전 판타지 모음집(The Big Book of Classic Fantasy)'에 '전우치전' 영역본이 수록된 것. 번역은 강민수 미국 미주리 주립대 세인트 루이스 캠퍼스 역사학과 교수가 했다. 강 교수는 2016년 '홍길동전'을 영역해 전 세계 고전문학만 엄선한 '펭귄 클래식' 시리즈 중 하나로 펴낸 바 있다. 올해 초엔 영문으로 홍길동 연구서 '천하무적의 의적(義賊)(Invincible and righteous outlaw)'도 출간했다.

최근 서울에 온 강 교수는 "미국에선 1950년대 들어서야 판타지 문학 개념이 정립됐고, 최근엔 그 어느 때보다 판타지의 문학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며 "그러다 보니 판타지 문학의 근본이 될 고전을 모은 책이 나오게 됐는데, 미국 편집자들이 '전우치전'을 읽고선 너무 좋아했다"고 밝혔다.

전우치전, 홍길동전 등 한국 고전소설을 영어로 번역해 온 강민수 교수가 올해 초 미국에서 영문으로 출간한 홍길동 연구서를 들어 보이며 “홍길동이 한국 역사와 문화에 미친 영향을 분석했다”고 말했다. /오종찬 기자
이 책은 848쪽 분량이나 된다. 동서양 고전과 근대 단편 소설 중 환상적 이야기 90편을 실었다. 그림 형제의 동화를 비롯해 톨스토이의 '바보 이반', 카프카의 '변신', 고골의 '코' 등 내로라하는 대가들의 작품이 주류를 이룬다. '전우치전'은 유일하게 작자 미상이지만, 26쪽을 차지했다. 도술을 부리는 전우치가 둔갑하는 여우의 혼(魂)을 삼키고 도술을 익혀 자유자재로 변신하면서 좌충우돌하는 모험을 통해 지배 권력을 조롱하고, 억울한 백성을 돕다가 구름을 타고 세상에서 사라진다는 이야기다.

강 교수는 "18세기쯤 이야기 책을 팔아먹기 위해 이 소설을 썼을 이름 없는 작가는 훗날 자기 작품이 세계 판타지 문학의 고전에 오를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겠는가"라며 웃음을 지었다. '전우치전'은 정본이 없고 19종의 이본(異本)이 전해온다. 내용도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홍길동전'과 유사한 영웅 이야기를 지니고 있지만, 또 하나는 주인공 이름이 '전운치(田雲致)'라서 '전운치전'이라고 한다. '전운치전'은 '홍길동전' 영향에서 벗어나 도술 판타지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하지만 국문학계에선 '전우치'가 실존 인물이었다는 점을 중시해 주로 '전우치전'으로 불러왔다.

강 교수는 19세기 이후 출간된 '전운치전 경판 37장본'을 번역 텍스트로 삼았다. 강 교수는 "여러 판본 중 작품성도 높고 가장 재미있다"고 강조했다. 영역본 제목은 'The Story of Jeon unchi'다. 강 교수는 '이 아이는 꿈에서 보았던 동자이니 이름을 구름 운(雲)에 보낼 치(致), 운치라고 합시다'라는 소설 도입부를 'This child was seen in a cloud, so let us give him the name of Unchi, or cloud-sent'라고 옮겼다. 영역본은 주인공 이름대로 등록된 것. 강 교수는 "미국 편집자들은 전우치가 위기에 빠졌을 때 그림을 그려서 그 속으로 도망가는 요술을 가장 재미있어했다"고 전했다.



조선일보 A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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