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맹 판결문보니..."조국 가담한 '사과원'은 사회주의 국가 건설 노린 이적단체"

박현익 기자 백윤미 기자
입력 2019.08.13 17:19
‘사노맹 사건’ 가담 논란... 曺 후보자 당시 판결문 보니
法 "‘사노맹’은 반국가단체, 산하 ‘사과원’은 이적단체"
"조국, 알면서도 가입해 사회주의 국가 건설 동조했다"
"남편 사노맹 아니다"...과거 부인 기고한 칼럼도 등장

조국 법무장관 후보자가 13일 오전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종로구 사직로 적선현대빌딩으로 출근하고 있다. / 연합뉴스
조국 법무장관 후보자가 남한사회주의노동자연맹(사노맹) 관련 사건에 가담한 사실을 두고 논란이 뜨겁다. 지난 12일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국가 전복(顚覆)을 꿈꿨던 사람이 법무장관이 될 수 있는가. 사노맹은 무장봉기와 사회주의 혁명 달성을 목표로 폭발물을 만들고 무기 탈취 계획을 세우며 자살용 독극물 캡슐을 만들었던 반국가 조직"이라고 비판한 데 대해 조 후보자는 13일 "(사노맹에 대해) 할 말은 많지만 인사청문회 때 충분히 답하겠다"고 했다.

이날 조 후보자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남편은 사노맹에 가입한 적 없다. 학술적인 도움을 줬을 뿐"이라고 주장한 1993년 당시 칼럼도 다시 한 언론에 등장했다. 조 후보자는 울산대 교수시절인 1993년 6월 사노맹 관련 사건에 가담했다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1995년 대법원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됐다.

조 후보자가 사노맹 관련 사건에 어떻게, 얼마만큼 가담한 것일까. 그의 당시 판결문을 통해 짚어봤다.

1990년 말 남한사회주의 노동자동맹(사노맹) 사건 관련, 서적 등 국가안전기획부에 압수된 물품들./조선DB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이 입수한 조 후보자의 국가보안법 위반 항소심·상고심 사건 판결문을 보면, 조 후보자는 1990년부터 1993년까지 사노맹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하는 연구단체인 ‘남한사회과학원(사과원)’에 가입해 이적 표현물을 제작, 판매하는 행위에 가담한 사실이 인정됐다. 당시 ‘최선생’ ‘고선생’ ‘정성민’ 등의 가명(假名)으로 활동했다. 사과원에 대해 재판부는 "단순한 사회주의 이론에 관한 학술·연구단체가 아니라 반제·반독점민중민주주의혁명을 통한 노동자계급 주도의 사회주의 국가건설을 주장하는 정치적 단체로,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라고 했다.

조 후보자는 1990년 사노맹 핵심 인사들을 만나 ‘사과원’ 설립에 동참할 것을 여러차례 권유받고서 정식가입은 곤란하다고 거절했지만, ‘사과원’의 기관지 편집은 돕기로 했다. 이때부터 사과원 운영위원회에 참석해 기관지인 ‘우리사상’ 창간호 발행에 참여했다. 그해 11월 2000부를 제작·판매한 ‘우리사상’ 창간호에는 이런 내용이 실렸다.

"가혹한 탄압을 뚫고 진군에 진군을 거듭한 남한 노동자계급과 ‘노동해방’ 혁명진영의 투쟁론과 자본가계급에 대한 적대의식, 그리고 투쟁력을 개방주의적 세력의 도전을 봉쇄하고 ‘노동해방’ 혁명과 노동자계급의 굳건한 결합을 이루어낼 유력한 무기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혁명적 노동해방’의 가치를 대중화하기 위해 남한 사회주의자는 다음과 같이 싸워야 한다.

첫재, ‘노동해방’ 주의의 권력을 더욱 굳건하게 수호하고 강화시킨다.
둘째, 다양한 상태로 존재하며 투쟁하는 대중의 구체적 조건에 정확히 결합하여 광범한 대중들 속에 노동해방 주의의 기치의 전파를 이루어 낸다.
셋째, ‘노동해방’ 혁명진영간의 공동사업을 지역, 전국 단위에서 전면적으로 확대한다.
넷째, 국가보안법, 사회안전법 등 ‘혁명적 노동해방’ 사상의 전파와 활동의 자유를 금지하는 제반 악법에 대한 철폐투쟁을 조직화한다."

조 후보자는 그해 7월 사과원 운영위원들로부터 강령연구실장 겸 운영위원을 맡아달라는 제의를 받고 이를 승낙했다. 이후 사과원 운영회의에 참석해 ‘우리사상’ 창간호 평가와 함께 다음 2호 발간 문제를 논의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국가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점을 알면서 반국가단체인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활동에 동조할 목적으로 구성된 ‘남한사회과학원’에 가입했다"고 했다.

남한사회주의 노동자동맹(사노맹) 관계자들이 제작한 유인물 /조선DB
"사회주의 노동자 정당은 반미·민족해방, 반파쇼·민주주의 혁명을 통한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자신의 전략으로 삼는 정당이다. 남한 사회에서의 혁명은 무장봉기에 대한 고려없이 승리를 기약할 수 없다."

조 후보자가 본격적으로 참여해 만든 ‘우리사상’ 제2호는 이듬해 1월 2000부, 2월 3000부가 제작됐다. 이들은 사회주의 노동자 정당의 임무로 첫째, 노동자계급의 의식화, 둘째, 노동자계급의 조직화, 셋째, 노동자계급의 동맹세력의 획득, 넷째, 혁명적 정치투쟁의 지도, 다섯째, 국제 사회주의 진영과의 연대 등을 제시했다.

또 당 건설운동을 제1단계, 정파간 신뢰형성 및 공동사업 기반 구축기(92년1월~92년 상반기), 제2단계, 정파간 연계체계 구축 및 공동투쟁의 시기(92년 상반기~92년 하반기), 제3단계, 당의 부분기관 창설 및 공동실천의 전면화 시기(92년 하반기~ 93년 중반기), 제4단계, 당 건설을 위한 준비기관 건설의 시기(93년 중반기~93년 하반기), 제5단계, 사회주의 노동자 정당의 결성 시기 등으로 계획했다. 그러면서 "1994년 봄까지는 기필코 사회주의 노동자 정당을 건설하자"고 했다.

1995년 대법원 재판부는 조 후보자와 검찰의 상고를 모두 기각하며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피고인 조국이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목적으로 하는 ‘사노맹’ 활동에 동조하는 이적단체인 ‘사과원’에 가입하고 그 설립목적과 주장이 담긴 표현물을 제작, 판매한 행위는 헌법이 보장한 양심·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 결사의 자유의 범위에 속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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