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한미동맹, 안녕한가

조중식 국제부장
입력 2019.08.12 03:15

美 비용 드는 훈련 싫다는데 수십배 더 들 전쟁 뛰어들까
그러면서 중거리 핵 배치 거론… 한국을 이용 가치로만 보나

조중식 국제부장

한·미 동맹은 6·25 전쟁을 치르고 탄생한 혈맹(血盟)이다. 한국은 국군 14만명과 미군 5만4000명의 목숨값으로 지켜낸 자유 진영의 최전선이다. 미국은 그 희생의 가치를 지키려 해왔고, 한국은 그 값어치를 제대로 해냈다. 자유와 민주, 시장경제 가치의 살아있는 증거가 한국이다. 최빈국 한국이 자유 진영 속에서 11위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등장 이후 자유와 민주 가치로 결속된 이 가치 동맹이 흔들리고 있다. 미국은 더 이상 자유 진영의 보루임을 자임하려 않는다. 홍콩을 보라. 트럼프는 홍콩 시위를 '폭동'이라고 규정하며 "홍콩과 중국 사이의 일"이라고 했다. 인민해방군 투입까지 거론되고 있는데, 자유와 자치를 요구하며 일어난 홍콩 주민들을 외면했다.

미국은 최근 외교정책의 최대 역점을 부상하는 중국 억제에 두고 있다. 일본·호주·인도와 연합해 중국을 포위·견제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이다. 그 속에서 한·미 동맹이 차지하는 자리는 별로 없어 보인다. 북한을 제어하는 것은 몰라도, 중국을 억제하는 동맹으로는 한국의 역할도, 입장도 분명치 않기 때문이다.

일본은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인도-태평양 전략 자체가 아베가 트럼프에게 제안한 것이다. 일본은 지난 5월 남중국해에서 미국·인도·필리핀 해군과, 인도양에선 미국·호주·프랑스 해군과 합동군사훈련을 했다. 이달 초 방콕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는 미·일·호주 외교장관이 '3자 전략대화'도 따로 가졌다. 우리는 이쪽도, 저쪽도 끼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동북아 최전선을 휴전선이 아니라 대한해협으로 후퇴시키면 안 될 절대적인 이유가 있을까. 일본은 그것을 감당할 준비를 하고 있다. 군사력 평가 전문기관인 글로벌파이어파워에 따르면 올해 일본의 군사력은 세계 6위로 한국(7위)을 추월했다. 일본은 사실상 경항공모함을 이미 운용 중이고, 현존 최강 전투기 F-35를 147대 도입하기로 했다. 미국을 빼면 최다 보유국이 된다.

여기에 아베의 최근 움직임은 '한국 배제'를 겨냥한 게 아니냐는 의심을 하게 만든다.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와 화이트국가 배제는 단순히 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이라기엔 한국 제조업을 결딴내겠다는 의지가 너무 강한 내용이다. 한국 최대 수익 산업인 반도체의 목줄을 쥐고, 미래를 위해 투자하겠다고 발표한 파운드리의 싹을 자르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들이댄 이유가 '한국의 안보 전략물자 관리 부실'이다. 안보 동맹에서 한국이 불안하다는 이미지를 덧씌우려 한다.

미국의 변심은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압박하면서 연합훈련 때 폭격기가 괌에서 날아오는 비용까지 들먹인다. 급기야 미 대통령 입에서 김정은에 맞장구치면서 "나도 (한·미 연합군사훈련이) 마음에 안 든다. 돈 내는 걸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이 정도면 동맹이고 뭐고 없다는 거다. 돈 드는 훈련이 싫다는데, 그보다 수백 배 돈이 들고 희생이 따를 전쟁에 뛰어들려고 할까. 그러면서 중국 견제용 중거리 핵전력 아시아 배치를 거론하고 있다. 사드 문제로 중국이 융단폭격하듯 한국에 보복할 때 미국은 두 손 놓고 있었다. 이젠 사드보다 수십 배는 더 큰 난제인 중거리 핵전력 배치 문제를 우리에게 꺼내려고 한다. 미국은 동맹의 의무는 외면하면서, 갈수록 한국을 이용 가치로만 바라보고 있다.

북한은 남한을 타격할 미사일을 연일 쏘아대는데, 미국은 트럼프뿐 아니라 이젠 참모들까지 "단거리라서 괜찮다"고 한다. 우리는 이런 안보 환경의 변화를 감당할 전략이 서 있나.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안보 환경에서 살아남을 준비라도 하고 있나.



조선일보 A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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