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색 곰'과 이번 여름을 나고 있다

한은형 소설가
입력 2019.08.10 03:00

[아무튼, 주말- 한은형의 애정만세]

동화책 ‘세상 끝에 있는 너에게’에는 여름을 함께 보낸 새를 그리워하는 오렌지색 곰이 등장한다. 곰은 세상 끝에 있는 새에게 편지를 쓴다. 편지는 기묘한 형식의 글이다. 편지의 주인공과 떨어져 있어야 편지를 쓸 수 있는 기본 조건이 성립한다.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편지를 쓰고 싶어진다. 편지를 쓰는 동안 다른 것들은 모두 지워지고 오로지 받는 이에 대한 생각만 커진다. / 모래알 출판사
분홍색 참외가 나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러고는 분홍색 참외가 나오는 네루다의 시를 떠올렸습니다. '아름다운 건 갑절로 아름답고 좋은 건 두 배로 좋다'라는 문장이 있는 시입니다. (…) 그제야 알 것 같았습니다. 분홍 참외는 그 남자의 상상 속에 있는 게 아니라 세상 어딘가에 실제로 있을 거라고요. 네루다가 보았든 보지 않았든, 있는 겁니다. 세상의 어딘가에는 분홍 참외가 자라고 있고, 그걸 가꾸는 손이 있고, 그 참외를 깎는 여자가 있다는 생각만으로 콧등이 환해집니다. 그건 분명히 있는 겁니다. 만져보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작가들과 함께 낸 여행 산문집 '작가가 사랑한 여행'에 실려 있는 글이다. 여기 실린 작가들의 산문이 하나하나 매력적이어서 그들과 같이 산문을 실었다는 게 기뻤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더반, 베트남 하노이, 러시아 크라스키노, 인도양 모리셔스, 미국 플로리다의 키웨스트…. 이름만으로도 설레게 하는 나라와 장소가 내 곁에 놓여 있다는 것도. 시간이 꽤 지난 일이어서 선명하지는 않지만, 이 글을 쓸 때 나의 구상은 단 한 가지였다. '경어체로 쓰고 싶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그러고 싶었다. 경어체를 어떻게 살릴지 고민하다 편지 형식으로 쓰기로 했다. 그러니까 수신인이 있는 글이다. 나는 편지이자 산문인 이 글에서 그 수신인을 '당신'으로 부르기로 했다. 실제로는 한 번도 불러본 적이 없는 호칭이다. 그러니까 내게는 완전히 문어체 호칭.

그 글을 쓰다가 알았다. 편지라는 건 참으로 기묘한 형식이라는 걸. 일단, 수신인과 떨어져 있어야 편지를 쓸 수 있는 기본 조건이 성립한다.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편지를 쓸 기분이 배가된다. 그런데, 편지를 쓰는 동안의 내게는 다른 것들은 모두 지워지고 오로지 수신인만 남는다. '수퍼 울트라 익스트림 줌 렌즈' 같은 것으로 저 멀리 있는 세계의 당신을 내 쪽으로 당겨온달까? 당신이 담겨 있는 현실이나 배경 같은 건 아웃 포커싱된 채로 말이다. 또 그렇게나 커진 당신께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무척이나 커진다. 그래서 내가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려고 애쓰게 됐다. 내 편지 속에서 이상화된 당신의 마음에 들려고 이런저런 것들을 떠올리게 되었었다. 그러다 '분홍 참외'도 등장하게 되었던 것이다. 동시에 체념과 절망도 있었다. '당신'은 내 편지를 못 받을 수도 있고, 내 편지를 받고도 뜯지 않을 수 있다. 또, 건성으로 읽을 수도 있고, 읽고 쓰레기통에 버릴 수도 있다. 이런 생각을 하니 한없이 낮아지는 기분이었다.

편지 이야기로 글을 시작한 건 얼마 전에 편지 형식으로 된 동화책을 봤기 때문이다. 엄청난 책이었다. 읽은 지 두 달이 다 되어 가는데 읽을 때처럼 상기되는 걸 보면. 이 책의 표지에는 큰 나무들로 이루어진 숲과 오렌지색 곰이 있다. 나무가 얼마나 큰지 오렌지색 곰은 강아지처럼 보일 정도다. 이 오렌지색 곰이 그리워하는 새에게 쓰는 편지로만 된 책이다.

새와 곰은 지난여름을 함께 보낸 사이. 곰이 새를 얼마나 그리워하는가 하면 새가 있는 곳으로 가려고 한다. 문제는 그들이 꽤 멀리 있다는 것. 새는 곰이 있는 곳으로부터 세상 끝에 있다. 왜냐하면 새는 겨울을 나기 위해 따뜻한 남쪽으로 갔기 때문이다. 곰은 지금 겨울나기 준비를 해야 한다. 땅굴을 파거나 밤 같은 걸 모으는 일을. 그런데 곰은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새를 그리워하는 것만으로도 바쁘니까. 새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한 자신을 어쩔 줄 모르는 곰은 새에게 편지를 쓴다. "그러면 꼭 네가 곁에 있는 것 같으니까." 이 글 옆에는 이런 그림이 있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한쪽 팔로 머리를 괴고 누워 있는 곰. 우산 모양으로 생긴 뾰족한 잎이 달린 나무. 나처럼 드라이한 사람조차 그 사랑스러움에 흠뻑 젖게 한 이 책 제목은 '세상 끝에 있는 너에게'. 고티에 다비드와 마리 꼬드리가 글을 쓰고 그렸고, "사랑하는 새에게 끊임없이 편지를 보내는 다정한 곰처럼 편지 쓰기를 아주 좋아했"다는 이경혜가 옮겼다. 나는 이 책의 역자가 한국어를 아주 잘 쓰는 사람이라는 걸 책장을 넘길 때마다 느낄 수 있었다. 부사 하나, 조사 하나를 새기느라 한 장을 넘기는 데 아주 오래 걸렸기 때문이다.

두 번째 편지에서 곰은 새에게 가기로, 그러니까 세상 끝으로 가기로 결심한다. 친구를 걱정하는 오소리와 비버, 여우는 길을 떠나는 친구에게 선물을 준다.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개암나무 열매와 고사리 베개와 그들이 살고 있는 호수 그림을. 선물을 수북한 털 속에 넣어 가겠다는 곰은 너희와 이곳이 그리울 때면 선물을 보면서 달래겠다고 한다. 길고 긴 여행을 떠난 곰의 모험이 시작된다. 커다란 나무들이 도열해 있는 숲에서 곰은 도깨비가 나타날까 무서워하고, 뱃사람이 던진 그물에 걸려 바다에 빠지나 탈출한다. 세이렌이 뱃사람을 홀려 그물이 느슨해졌던 것이다. 이런 부분을 보면서 우리가 얼마나 인간 중심적 생각에 젖어 있는지 생각해보게 됐다. 덩치가 큰 곰이라고 해서 겁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 곰도 인간을 무서워할지 모른다는 것. 또, 뱃사람을 홀려 배를 난파시킨다는 세이렌이라는 전설 속의 존재에 대해서도. 인간을 해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물고기를 구하기 위해 세이렌이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것. 신이 이 세상을 흔드는 것은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는 것. 신의 무심함은 신의 잔학함의 증거일지도 모른다는 것.

또 이런 다정하고 사려 깊으며 유머러스한 곰의 마음을 느껴보는 일은 이 책을 읽는 큰 즐거움이었다. "나는 아주 상냥한 고양이와 함께 까치나무즙을 먹고 있어. 내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자기 집에서 좀 쉬다 가라고 붙들지 뭐야?(…) 내일은 늦잠을 잘 거야. 난 좀 그래야 해." "깨고 보니 내가 잔 구덩이 근처에 산딸기랑 머루 덤불이 있는 거야. 아직 자고 있는 손님들을 위해 아침식사를 맛있게 준비해야겠어. 너와 함께 많은 것을 나누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

까치밥나무즙, 물총새, 머루 덤불, 스라소니, 피레네 산맥, 개울, 목마름, 나무 둥치, 코코넛즙…. 이런 단어가 나올 때마다 한참을 보았다. 동화책에 나오는 나무, 열매, 과일, 과자를 가리키는 고유명사들을 보면서 설렘으로 가슴이 터질 듯했던 어린 나로 되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얼마나 그 세상에 닿고 싶었는지, 그것들을 손에 움켜쥐고, 맛보고 싶었는지!

조선일보 Y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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