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앙가주망의 뜻을 아는가

손진석 파리 특파원
입력 2019.08.03 03:10
손진석 파리 특파원

조국 서울대 교수가 청와대 민정수석을 맡았던 걸 '앙가주망(engagement)'으로 표현했다는 소식에 지난해 파리 시내에서 만난 프랑스 소설가 알렉시 제니가 떠올랐다. 고등학교 생물 교사였던 제니는 마흔여덟이던 2011년 첫 소설을 출간했다. '프랑스식 전쟁술'이란 그의 작품은 '사고'를 쳤다. 프랑스 최고 권위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받았다.

제니는 1950년대 독립을 요구하는 알제리에서 프랑스군이 8년에 걸쳐 100만명을 죽인 알제리 전쟁을 섬뜩할 정도로 구체화했다. 그는 "프랑스 지식인들이 알제리 전쟁을 현대사의 치부로 여겨 입을 다무는 금기에 도전했다"며 "알제리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편견을 깨뜨려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꿔보려 했던 것"이라고 했다.

앙가주망이란 지식인의 적극적 사회 참여를 말한다. 제니처럼 부조리한 현실에 맞선 용기와 고뇌가 필요하다. 개념을 구체화한 사람은 장 폴 사르트르다. 스스로를 사회 속에 던져 넣는 '자기 구속'으로 지성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 앙가주망이라 했다. 자유와 진실을 억압하는 압제에 맞서 부당함을 바로잡자고 호소해야 앙가주망이다. 사익은 배제해야 빛난다. 문호 에밀 졸라는 1898년 유대인이란 이유로 간첩 누명을 쓰고 종신형을 받은 드레퓌스 대위를 위해 '나는 고발한다(J'accuse)'는 글을 썼다. 작가로서 얻은 명성을 군부를 고발하는 데 쓴 자기희생이 있었다. 프랑스 사회에 울림이 컸고, 드레퓌스는 풀려났다. 앙가주망의 표본이다.

조 교수는 "평생 연구 작업을 실천에 옮기는 것과 다르지 않다"며 스스로 앙가주망을 실천했다고 했다. 그러나 학자가 권력이 주는 자리를 얻어 공부한 걸 써먹었다고 해서 앙가주망이 될 수는 없다. 아전인수이자 자아도취다. 조 교수는 힘에 맞서지 않았고, 반대로 힘을 행사하는 일을 했다. 민정수석이라는 사정 기관과 대통령을 이어주는 길목에 선 사람이다. 감투와 권세를 등에 업은 것이 지식인의 양심 어린 행동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의아하다. 앙가주망 실천이 목표였다면 관직을 맡기보다 학자로 머무르는 것이 오히려 운신 폭을 넓혀주는 것 아닌가.

졸라가 드레퓌스를 구하는 글을 썼듯 앙가주망을 실천하려면 손해를 무릅쓰는 선도적 제언으로 사회에 경종을 울려야 한다. 조 교수처럼 무대에서 영화를 누리고 퇴장할 때 그동안의 행보를 정당화하기 위해 편의상 동원하는 용어가 앙가주망이 될 수는 없다. 보수 성향인 다른 교수가 후일 청와대 수석을 맡으면 조 교수는 그때도 앙가주망이라며 찬사를 보낼 수 있을까. 똑같이 현실 정치에 참여했지만 다른 이들은 '폴리페서'이고 자신은 앙가주망을 실천한 주인공이라는 이중성에 실소를 금할 수 없다. 교수가 고관대작을 꿰찬 걸 앙가주망이라며 자화자찬했다는 걸 알면 지하의 사르트르가 통탄할지도 모른다.



조선일보 A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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