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국익 지키는 외교 추진하라는 국민의 뜻"… 추가보복 임박

도쿄=이하원 특파원
입력 2019.07.22 03:00

[일본의 경제보복]
참의원 선거 승리로 정국 주도권 쥐어… 4연임 가시권 관측도

일본의 연립 여당인 자민당과 공명당이 21일 실시된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이날 저녁 선거 윤곽이 드러난 후 '한국에 정상회담을 요청할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에 "한국이 청구권 협정 위반 상황에 대한 제대로 된 답변을 가져오지 않으면 건설적인 논의가 안 될 것"이라고 언급함으로써 우리 정부가 입장을 바꾸지 않으면 강경 대응을 계속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아베 기세등등 - 일본 참의원 선거가 실시된 21일 일본 도쿄 자민당사에서 아베 신조(오른쪽) 일본 총리가 당선자의 이름이 적힌 현황판에 꽃을 부착하며 미소 짓고 있다. NHK방송은 이날 출구 조사를 바탕으로 자민당과 공명당의 연립 여당이 이번 선거에서 과반수를 확보할 것으로 예상했다. /AFP 연합뉴스
22일 0시 현재 연립 여당은 124석을 놓고 겨룬 이번 선거에서 무난하게 과반을 확보, 전체 의석(245석)에서도 과반수를 유지한 것으로 분석됐다. 그뿐만 아니라 자민·공명·일본유신회 등의 '개헌 세력'이 참의원 전체 정원 3분의 2에 달하는 164석에 육박할 가능성도 있다고 NHK가 전망했다. 마이니치신문 정치부의 중견 기자는 "자민당이 압승한 것은 아니지만 여당으로서의 기존 의석 수준을 확보해 영향력을 그대로 유지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이번 선거 결과를 바탕으로 개헌 드라이브를 거는 것은 물론, 2017년 개정한 자민당 당규를 다시 고쳐 총리 '4연임'을 노릴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아베 총리가 한국에 강공을 취할 것이라는 전망도 이 같은 분위기 속에 나오고 있다.

그가 이날 출구 조사가 나온 후 처음 가진 인터뷰에서 "(국민이) 안정된 정치 기반 위에 국익을 지키는 외교를 추진해 가라는 판단을 해 주셨다고 본다. 기대에 부응하고 싶다"고 말한 배경에는 한국에 대한 대응도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아사히TV 인터뷰에서는 한국이 한일 청구권 협정을 위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일 청구권협정은 한국과 일본이 전후 태세를 만들면서 서로 협력하고 국가와 국가의 관계를 구축하자는 협정"이라며 "이런 협정에 대해 (한국이) 위반하는 대응을 하는 것은 유감"이라고까지 했다.

당장 주목되는 것은 한국을 수출 심사 우대국(화이트 국가) 명단에서 제외하는 조치를 전격적으로 앞당길지 여부다. 아베 내각은 지난 1일 "한국에 관한 수출 관리상의 카테고리를 재검토한다"고 발표했다. 이와 함께 일본 외환법 수출무역 관리령의 '화이트 국가'에서 한국을 삭제하기 위한 정령(政令) 개정 의견 모집 절차를 시작, 24일까지 의견을 받고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인터넷 홈페이지와 이메일을 통해서 비공개로 의견을 받을 뿐 공청회는 개최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아베 총리가 26일 열리는 각의(閣議)에서 이를 최종 확정해 발표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일본이 수출 심사 우대 조치를 취하는 '화이트 국가'는 총 27국이다. 유럽에서 영국·프랑스·폴란드·체코·불가리아·헝가리 등 22국, 아메리카 대륙에서 미국·캐나다·아르헨티나, 아시아-대양주에서는 우리나라와 호주가 포함돼 있다. 일본이 그동안 화이트 국가에 포함된 나라를 제외한 적은 한 번도 없다. 한국이 일본의 화이트 국가에서 처음으로 탈락하게 되면 다른 나라의 수출 관리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일본이 화이트 국가에서 배제하면 전략 물자는 물론 무기 제조에 활용될 수 있다고 판단되는 모든 물품에 대해 수출 규제를 가할 수 있다. 현재 전략 물자로 분류되는 품목은 약 1100개. 화이트 국가라는 보호막이 사라지면 앞으로 일본 기업은 한국에 전략 물자를 수출할 때마다 일일이 허가를 받아야 한다. 아베 내각의 고위 관계자들은 이번 사태가 시작된 후 여러 차례 "한국이 전략 물자를 허술하게 관리해 왔다"고 주장해왔기에 쉽게 허가가 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캐치 올(catch all) 규제'가 본격화되는 것이다. 캐치 올 규제는 식품과 목재를 제외한 모든 품목이 전략 물자로 전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규제하는 것으로 그 대상이 무한대로 늘어날 수 있다. 도쿄의 한국 기업 관계자는 "지난 1일 발동된 반도체, 디스플레이 관련 수출 규제는 일부 대기업에만 피해가 가는 것이라면, 화이트 국가 배제는 한국의 모든 산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조치"라며 "워낙 광범위해 파급력을 가늠하기조차 어렵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는 화이트 국가에서 제외하는 것을 막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오랫동안의 준비 끝에 칼을 꺼낸 일본이 철회할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는다.



조선일보 A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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