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곳을 넘어, 이젠 '도시의 거실'로

영주=채민기 기자
입력 2019.07.22 03:00

[도서관의 진화]
한형우 교수가 설계한 선비도서관, 2~4층 자료실 내부계단으로 연결

호서대 건축과 한형우(58) 교수는 스스로 운 좋은 건축가라고 말한다. 서울 서대문 이진아기념도서관(2005)과 경북 영주선비도서관(2017)을 연달아 설계한 일을 두고 하는 말이다. 소박하고 수수해도 누구나 기쁘게 쓰는 건물이 건축가에겐 보람이다. 공공 도서관이 딱 그런 건물이지만 프로젝트가 적다 보니 한 건축가가 여러 번 맡는 경우를 거의 찾기 어렵다.

경사면을 계단이자 독서 공간으로 활용한 영주선비도서관 어린이 열람실 내부. 엄숙한 도서관에서 탈피해 누워서도 책을 보는 자유로운 공간으로 디자인했다. /사진가 김용관
최근 선비도서관에서 만난 한 교수는 도서관을 "도시의 거실"이라고 표현했다. 각자 방에 틀어박혔던 가족이 거실에서 만나듯 도시인들이 서로 마주치는 장소가 도서관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생활이 변하면 거실 풍경이 바뀌는 것처럼 지식을 습득하는 방식이 달라지면 도서관도 변한다. 닮은 듯 다른 모습을 한 서울과 영주의 두 도서관이 그 변화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진아도서관은 '책 읽는 곳'이다. 독서에 집중하도록 자료실 책상마다 스탠드를 달았다. 인터넷 시대 도서관의 역할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한 선비도서관은 '책을 느끼는 곳'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책과 책 사이에 거미줄처럼 얽힌, 눈에 보이지 않는 지적(知的) 네트워크를 느끼는 공간으로 설계했다.

촘촘한 목재 구조물로 한옥 처마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영주선비도서관 외관. /사진가 김용관
한 교수는 이 네트워크를 설명하면서 소설가 김영하의 글을 인용했다. "책은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개개의 책은 다른 책이 가진 여러 힘의 작용 속에서 탄생하고 그 후로는 다른 책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다."(산문집 '읽다') 단편의 정보는 인터넷으로 찾을 수 있지만 책을 통해 이어져온 지식과 사상의 흐름을 느끼고 지적 자극을 받기 위해서는 도서관이라는 공간이 여전히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 경험을 주려면 도서관의 핵심인 자료실 공간을 칸칸이 층층이 나누기보다 트는 게 좋다고 봤다. 선비도서관 2~4층에 자리 잡은 자료실은 내부의 계단으로 연결된다. 계단도 책꽂이로 둘러싸여 있어 '책과 함께한다'는 느낌이 어디서든 이어진다. 4층은 바닥 가운데가 뻥 뚫린 ㅁ자 형태를 하고 있어 3층과 하나의 공간으로 느껴진다. 한 교수는 "자연과학, 사회과학 하는 전통적 분류에 얽매이지 말고 여러 분야의 책을 자유롭게 탐색하자는 의미도 있다"고 했다.

외관 디자인을 도출한 접근 방식은 두 도서관이 비슷하다. 도서관이 자리 잡은 도시공원과의 연계성에 주목했다. 서대문 독립공원 안에 있는 이진아도서관은 서대문 형무소와 비슷한 붉은 벽돌을 외장재로 썼다. 주택단지의 작은 공원에 들어선 선비도서관은 울타리나 담을 둘러치지 않고 공원을 도서관의 마당처럼 끌어안았다. 전면(前面)에는 벽체와 살짝 간격을 두고 커튼을 드리우듯 목재 구조물을 촘촘하게 설치했다. 부석사·소수서원 같은 영주의 전통 건축에 대한 일종의 오마주(경의)로서 한옥의 처마를 은유적으로 차용했다.

세 번째 도서관을 설계하는 행운이 이어질지 알 수 없지만, 기회가 주어진다면 적당히 시끌벅적한 도서관을 짓고 싶다고 했다. 책도 읽지만 TV도 보고 이야기도 나누는 진짜 거실처럼. 선비도서관에서도 자유롭게 누워서 책을 보는 어린이 열람실 같은 곳에 그런 생각을 담았지만 전면에 드러내지는 못했다. 실내 정숙을 금과옥조로 삼는 도서관에서 이런 구상을 과연 실현할 수 있을까. 그의 대답은 간명하다. "스타벅스에서 이미 그렇게 하고 있지 않나요?"



조선일보 A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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